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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쨩 Mar 19. 2020

 #01. 제 환자라서 감사합니다.  

간호사 일기


그런 날이 있다.


언제 응급상황이 터질지 모르는, 그래서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어야 하는 직장터. 

사소한 실수라도 용납되지 않는 곳, 날 선 말들이 오고 가는 곳.

교대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과 수면장애, 식사도 하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는 근무 환경. 


병원에서 간호사의 체력과 마음은 지쳐가고…

자기 스스로는 도저히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할 때

그 누구의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할 때


환자와 보호자에게 간호사의 마음이 위로받는 그런 날이 있다.




퇴사하기 한 달 전,

번아웃 증후군처럼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점점 무기력해지더니 밥 먹을 의욕도 없어져 한 달새에 몸무게가 6kg이 빠지고, 몇 달째 숙면을 취하지 못해 늘 예민하고 곤두서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근무를 하러 갔다. 근무 시작 전 내가 담당할 환자들의 상태, 특이사항, 시술 스케줄 등을 확인했다. 


이 글은 그 날 내가 담당했던 환자들 중 한 분과 있었던 이야기이다. 

그 환자분은 내가 입사했을 때 이미 병동에 입원해있었던 장기환자로, 갓 입사했던 나의 모습부터 퇴사할 때까지 나를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 간이식 수술을 받고 평생 먹어야 하는 면역억제제로 인해 면역력이 저하되어 있던 환자분은

기관지, 폐에 쌓이는 분비물 등을 가래로 잘 뱉어내지 못하게 되면서 그 분비물들이 쌓여 폐렴이 되어버렸다.

폐렴을 치료하고 나면 간 기능이 저하되어 있고, 간 기능을 회복하면 다시 폐의 문제가 생기다가 이내 간이 기능을 못하게 되면서 간이식을 다시 하였다. 

재이식을 하고 퇴원도 하였으나, 염증의 재발로 다시 입원하였다. 급기야는 음식을 먹으면 기관지로 흡인(aspiration)이 되어, 위루형성술(gastrostomy)을 통해 위장에 직접 영양을 공급하였으나 이마저도 역류하여 폐에 들어가는 상황까지 되었다.


근무를 시작하고, 환자분에게 가서 인사하고 환자분의 상태를 살폈다. 

"안녕하세요 000 환자분. 저는 오늘 3시부터 11시까지 환자분을 담당할 000 간호사예요. "

"왔어?" 

무심하지만 농담도 툭툭 던지고 가끔 웃어주는 츤데레 환자분. 무심하게 "왔어?" 말하고 다시 TV로 고개를 돌렸다. 

몇 차례 병동 순회 후, 열이 나기 시작하면서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37.2도 미열에서 시작하여 시간이 가기 무섭게 39도까지 올라갔고, 호흡은 빨라지며 산소포화도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열로 인해 환자는 점점 의식을 잃어가면서 대답은커녕 환자분을 불러도 눈을 뜨지 못했다. 숨쉬기를 힘들어하여 몸에 있는 보조 근육 (accessory muscle)을 사용하여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상황에 맞게 간호를 해주고, 응급처치들을 했지만 불안한 생각이 계속 생겨났다.

 '이 환자분.. 이번에 중환자실 가면 다시 돌아오실 수 있을까?.. 이겨내실 수 있으실까?..'

지금이 이 환자분을 보는 마지막이 될까 봐 무서웠다. 사실 담당의사가 보호자분을 따로 불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었다. 손이 떨렸다. 

환자분을 당장 중환자실로 내려 집중치료를 받게 해야 하는데, 중환자실에 자리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중환자실에 자리가 생겨, 보호자분에게 갔다. 

지금 환자분의 상태를 설명하고 중환자실을 다시 가야 한다고 설명하는데 계속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환자와 보호자분이 불안하지 않게 앞에서 잘 안 우려고 하는데, 혹시나 정들었던 환자분의 마지막 모습일까 봐 눈물이 잘 참아지지 않았다.


"애기 간호사님.."

보호자 분도 눈이 빨개진 채로 내 손을 잡아주셨다. 내 뒤로 후배 간호사들이 많이 입사했지만, 보호자분에겐 갓 입사했던 내 모습이 아직 남아있었나 보다. 나를 애기 간호사라 불러주셨다. 

"애기 간호사님 괜찮아. 울지 마.. 애기 간호사님 잘했어. 고마워요.." 

보호자분의 위로를 받고 정신을 차렸다. 내가 지금 울면 안 된다. 

"000 환자분. 지금 우리 중환자실 가고 있어요."

"..."

환자분을 중환자실에 보낼 준비를 마치고, 이송 직원분과 함께 중환자실로 이송했다. 

그때까지도 환자분은 의식을 잃고 내 질문에 대답도 하지 못했다. 

중환자실에 도착하여 중환자실 간호사분들과 함께 환자분을 중환자실 침대로 옮기고, 마지막으로 환자에게 말을 걸었다. 

"000 환자분. 치료 잘 받고, 바로 와야 해요? 알겠죠?"

".. 응.."

환자분이 눈을 떠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다시 의식을 차리기 시작하신 것 같아 다행이었다. 


며칠 후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올라왔다. 그 환자분이었다.

"왔어." 

중환자실에서 병동으로 다시 왔다며 살짝 웃으며 무심하게 툭 내뱉는 인사말. 그 말 안에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느껴졌다. 


그 아프고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온 환자분을 보며 나 또한 힘낼 수 있었고

자신도 힘들텐데 많이 불안하고 힘들어하는 간호사의 손을 잡고 위로해준

보호자분에게 많은 위로를 받는 날이 되었다.




* 이식 환자에게 염증은 치명적이다. 우리 몸이 이식된 장기를 내 몸이라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면역억제제를 평생 복용해야 하는데, 면역력이 저하되어 있어 그 상태에서는 염증이 발병하기 쉬우나 치료하기는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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