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공생, 로스쿨에 도전하다 (4)
로스쿨 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되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인도에 따라 내가 들리는 포털 사이트의 광고판에 로스쿨 입시 전문 업체가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대학은 수시 전형으로 입학했고, 그 이후로도 자격증의 권위가 약한 IT 스타트업계로 진출했던 나에게는 단지 시험 하나를 위해 수십만 원을 투자하는 게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연습 삼아 쳐봤던 시험('관광 리트'라고 부른다.)의 성적이 만족할 만큼 나오지는 못했던 관계로, 사설 업체의 도움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LEET 본시험의 응시 수수료 24만 8천 원을 포함하였을 때 지금까지 시험에 투자한 직접비는 120만 원쯤 되며, 세부 항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본시험 응시 수수료 × 2회(관광리트, 초시) = 496,000원
2024 메가로스쿨 실전 모의고사 5회분(시험지만) = 63,000원
2025 메가로스쿨 전국모의고사 7회분 = 552,000원
2024 법률저널 LEET 모의고사 = 50,000원
법학적성시험 문제해설 (2019~2023년도, 중고) = 30,000원
법학적성시험 안내서 (중고) = 9,500원
메가로스쿨 전국모의고사의 경우 조금 일찍 정보를 찾아봤다면 학교를 통해 단체 접수하여 할인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시기를 놓쳐 손해를 봤다. 또한 패키지로 묶으면 할인이 붙는데 처음에 간 보겠다고 1회차 모의고사는 단독 구매를 하게 되면서(단독으로 12만 원이다;) 조금 비싸게 산 감이 있다.
120만 원은 LEET 준비만을 위해 단독으로 투자한 돈이다. 주변에 아는 입시생이 없어서 내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많은 비용을 투자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가볍게 준비한 사람들 중에서는 많이 쓴 편이고, 본격적으로 준비한 사람들 중에서는 적게 쓴 편인 대충 중앙값 수준일 것이라 생각한다. 포릿(post-LEET)이라 하여 영어 성적, 각종 증빙 서류 발급 비용, 원서비와 증명사진, 면접용 양복 등등을 생각하면 합격하여 입학금을 내기 전에 이미 몇백은 때려박아야 하는 무시할 수는 없는 기회비용이다.
그 돈이 값어치를 했는지, 한번 정리를 해 보고자 한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출판한 책들을 뜻한다. 나는 동네 알라딘 서점에서 <법학적성시험 안내서(부제 : LEET 출제기관이 소개하는 시험 준비 방법과 문제해결의 원리)>를, 당근마켓을 통해 <법학적성시험 문제해설>을 구매하였다.
언어는 중의성을 갖고 있고 그로 인해 같은 말을 두고도 다른 해석을 하게 되는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법학적성시험은 언어를 소재로 한다는 특성상 출제 오류 시비에 쉽게 휘말릴 수밖에 없을 텐데 의외로 근 몇 년간은 단 한 건의 오류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교수님들이 꼼꼼히 검토한 만큼 사설모의고사 대비 실제 시험 문제의 질이 높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실제로 애매한 선지임에도 "가장 그럴듯한 선지 하나를 고르라"는 변명으로 본인들의 출제 의도를 변호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될 때도 있다. 수험자 입장에서는 이의제기의 승률이 낮기 때문에 공식 기관이 직접 작성한 출제 의도를 숙지하는 편이 안전하다.
책을 사서 읽어보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도움이 되었다고 느꼈지만, 무료로 공시된 <법학적성시험 시행결과 보도자료>를 훑어보는 것으로도 비슷한 수준의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어떤 책들은 내용이 알차서 두고두고 읽기 위해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반면, 단편적인 내용을 가진 어떤 책들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잠깐 읽어본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굳이 내 책장의 자리 한 켠을 내주고 싶지 않은 책들이 있다. (사실 서울을 전전하는 자취생이라 이사할 때마다 책을 옮기는 게 번거롭다.) <법학적성시험 안내서>는 솔직한 내 심정으로는 후자에 가까웠다.
대신 공식 <문제해설>은 두고두고 볼 만한 책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해설 자체가 명쾌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기출문제 오답노트를 할 때 내가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참고 자료이기 때문이었다. 출판된 책의 특성상 해설도 줄글로 되어있는데, 그 분량이 상당하다. "지문 1문단에서는 'A'라고 언급했고, 3문단에서는 'B'라고 언급했다. 따라서 'C' 선지는 옳은 답이 아니다." 같은 식의 인용이 가득하고 실질적인 의미는 적은 문장이 가득해서, 마치 ChatGPT로 생성된 글을 읽는 기분이었다. 만약 그런 짧고 명쾌한 설명을 기대한다면 동영상 강의의 형식이 더 적합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내가 사설 인강을 본 적은 없어서 증명은 못 하겠다.
공식 해설 말고도 인터넷을 찾아보면 수험생들이, 또는 자사를 홍보하기 위한 입시 업체들이 문제별 해설을 달아둔 자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네이버 블로그에 그런 글이 많다. 나는 초반에 구글링을 하다 보니 그런 정보를 많이 찾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물론 그 분들의 해석이 출제 의도와는 거리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되겠으나, LEET 시험을 실제로 풀다 보면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더라도 소거법 등에 의해 같은 답이 나오는 경우가 꽤 된다. 어떤 논거를 '주장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든 '주장과 배치된다'라고 생각하든 '강화하지 않는다'로 귀결될 수 있는 식이다. 그렇기에 <문제해설> 외에도 다른 사람의 해석을 찾아보면서(만약 LEET 스터디를 한다면 이를 통해서), "본인만의" 판단 원칙을 세워두는 것도 좋은 공부 방향이라 생각한다. 이 원리를 숙지한다면 사실 책을 굳이 살 필요도 없기는 하다.
기출문제와 공식 해설, 그리고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정보를 취합하는 것만으로도 그 양이 상당하기 때문에, 사설 모의고사를 풀어보는 것은 굳이 싶다. 전업으로 입시를 준비하거나 어쨌든 마음이 불안한 수험생들은 거의 모든 년도의 기출문제를 풀어본 이후에는 이른바 '양치기'라고 하는, 무작정 많고 다양한 지문을 읽어보는 전략을 수행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열정에 대해서는 존경스럽지만 나한테는 그 방식이 잘 맞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양치기 전략에 대해서는 늘 "사설의 논리에 적응하면 오히려 기출과는 다른 판단을 하게 될 수 있다"라는 비판이 따라온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사설 모의고사를 본다면 실제 시험장에서의 감을 익히되 문제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들 한다. 실제로 동감한다.
만약 전국모의고사를 여러 번 치르기에는 비용이 부담된다면, 실제 시험지 재질의 문제집을 구매해서 정확히 시간을 맞춰놓고 근처 스터디카페에서 OMR 마킹까지 시뮬레이션하는 '셀프 모의고사'를 반복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시험 며칠 전부터는 나도 7시에 일어나서 9시부터 시험을 치르는 연습을 해 보았다. 솔직히 실력 향상보다는 불안감 줄이기에 좋다. 만약 실수를 해서 시험을 망쳤다면 모의고사를 통해 본시험에서 그 실수를 막을 수 있게 된 것이고, 평소 퍼포먼스가 나왔다면 그 자체가 좋은 일이니까.
필자는 대표적인 로스쿨 입시 업체 두 군데(법률저널, 메가로스쿨) 모두의 모의고사를 쳐 봤으며 아래에서 언급한 사례가 구체적으로 어느 업체에서 발생했는지는 말하지 않고자 한다. 솔직히 도긴개긴이다.
사실 나는 전국모의고사를 일종의 헬스장처럼 다뤘다. 학기를 병행하는 와중에는 기출문제를 돌려볼 의욕이 안 섰기 때문에, 비싼 돈을 지불한 대가로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시험장에 가서 문제를 풀고 오는 방식으로 LEET 공부를 놓지 않는 것에 그 의의를 두었다.
문제의 질은 역시 좋지 않다. 어떤 모의고사 문항은 기출문제의 소재나 형식을 모티프로 하는 거의 패러디(parody)에 가까운 수준도 있고, 업체에서 공식적으로 문제 오류도 상당히 많다. 어떨 때는 논리퀴즈(모형추리) 유형 문항에서 선지에 올바른 답이 하나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본고사에서도 그렇지만, 사설 모의고사를 풀 때는 문제가 너무 안 풀린다 싶으면 그냥 제껴버리는 게 묘수가 아닌 정석으로 취급된다.
그래도 원점수(맞춘 문항 수)가 아닌 상대 지표(표준점수와 백분위)의 관점에서 보면, 전국모의고사를 통해 얻는 정보들은 의미가 있다. 대신 표본이 'LEET를 잘 보기 위해 수십만 원을 지불하는 사람들'이므로 실제 퍼포먼스에 비해서는 약간 낮게 나오는 감이 있는 듯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문항별 정답률이라든가, 본인이 취약한 소재가 무엇인지도 알려주는데 이런 정보도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전국모의고사의 꽃은 시험장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온갖 돌발상황에 있다. 근처에 있는 수험생이 볼펜이나 샤프가 아닌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필기하느라 들리는 찍찍 소리 때문에 집중이 깨지거나, 생각보다 밖에서 우는 매미 소리가 시끄럽다거나, 심지어는 언제는 시험장 근처에서 종교 행사를 하느라 시험 내내 바깥 공연장에서 하는 "아. 아. 하나, 둘. 하나, 둘." 마이크 테스트를 들으며 추리논증을 풀어야 했을 때도 있다. 사설 업체는 이런 부분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둔감한 사람이면 괜찮겠지만, 변호사를 목표하는 사람들 중에는 예민한 사람도 상당히 될 테니까 이런 때를 대비하여 스펀지 귀마개를 항상 챙겨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 사실을 배운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었다고 본다.
그 외에 문항 별 시간 관리 전략을 세우거나, '거꾸로 풀기' 또는 '중간부터 풀기'라든가, 시험 전 먹는 아침 메뉴와 쉬는 시간 간식 메뉴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든가 같은 사소한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연습하기도 좋다. 결론적으로 나에게는 순서를 섞어서 문제를 푸는 것은 별로 의미는 없었다. 그러나 사설모의고사는 비중이 낮아 수강생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논술' 과목은 아예 배제한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본고사때는 2교시 추리논증이 끝난 뒤 1시간 정도의 점심시간을 갖고, 2시간 가까이 논술을 치게 되는데 이때의 체력 안배를 어떻게 할 지도 신경은 써 두는 게 좋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모의고사를 7번씩이나 쳐 놓고서도 이번 시험에서 논술 답안지를 한 장 밀려쓴(1페이지가 아닌 2페이지부터 답안을 썼다)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사실 LEET 논술은 일반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시험은 아니기 때문에 초고를 버리고 보다 정제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기에 "오히려 좋아" 상태로 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남들 다 쓰고 멀뚱멀뚱 쉬고 있을 때 나는 시험 종료 5분 전까지도 열심히 끄적여야만 했다..
로스쿨에 입학하고 나서도 변호사가 되기까지 드는 학비와 사교육비가 너무 비싸다는 비판이 있다. 그리고 합격의 문을 지나기까지에도 나는 1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실력 향상은 독학으로 했고, 내가 낸 돈은 지식을 습득하기보다는 나에게 의욕을 주거나 불안감을 줄이는 심리적인 목적으로 활용되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만약 돈이 궁하다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다른 방식으로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여 자료를 스스로 찾아보고 취합하여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인의 상황과 선호에 맞춰 결정을 하면 될 일이다. 그런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