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 대구에서 살았다. 친가는 강원도 삼척에 있었고, 설날이 다가올 때쯤이면 우리 가족은 삼척에 갔다가 설날이 끝나면 다시 대구로 돌아오곤 했다. 당시 아빠에게는 자동차가 없었고 우리 가족은 기차를 타고 오고 갔다. 명절이었기 때문에 기차에는 마련된 자리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어떤 가족은 마땅한 자리가 없어 좌석과 좌석 사이에 나있는 작은 공간에 신문지를 깔아 자리를 마련했다. 그곳에서 쉬는 건 보통 어린 자식들이었고 부모는 우두커니 서서 가곤 했다. 우리 가족도 그런 가족 중에 하나였다. 기차표 티켓팅에 실패하고, 기차에 탈 수는 있지만 자리에 앉을 수는 없는 반쪽짜리 표를 뒤늦게 구매했던 걸까. 아무튼 설날에 삼척으로 향하거나 대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나와 동생은 신문지를 깐 바닥에 앉아있거나 누워 있었다. 눅눅하고 어두웠다. 나와 동생은 좌석과 좌석, 그 사이에서 꾸벅꾸벅 졸곤 했다. 달리는 기차의 진동에 더해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따뜻한 열 같은 게 거기에 있었다.
그때의 시간이 한참 지나면, 우리 가족은 어느새 삼척에 도착하거나 대구에 도착하곤 했다. 대구에서 삼척으로 향할 때는 보통 이른 아침에 출발해서 한낮에 도착했다. 반대로 삼척에서 대구로 향할 때는 저녁에 출발해서 새벽에 도착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삼척에서 대구로 향하던 때를 유독 버거워했다. 대구 기차역에서 택시를 탔다가 집 근처 대로변에 내릴 때 특히 그랬다. 1월 겨울의 새벽 추위가 정말 무섭게 몰려왔기 때문이다. 아득히 내몰리는 기분. 이 추위로부터 벗어날 길이 도무지 없을 것 같다는 예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그 모든 걸 버텨야만 하는 그 시간을 끔찍하게 생각했다. 졸음은 진즉에 사라졌고, 나는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엄마 아빠 손을 세게 잡았다.
온몸에 잔뜩 힘을 주고 버티다가 마침내 집에 도착하면,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며칠 비워서 아직은 차가운 방에 이제 막 보일러를 틀어 바닥 어느 한구석이 느릿느릿 따뜻해지면, 거기에 옹기종기 손을 얹고서는 추위야 가셔라, 온 가족이 주문을 외울 때. 새벽은 거의 끝나가고 따뜻해진 방바닥에 이불을 펴고 누워 파랗게 밝아지는 창문 사이를 어렴풋이 바라보다가 잠든 줄도 모르게 아주 잠들 때. 다음날 느지막이 눈을 뜨면 새벽의 시간이 너무 거짓말 같았다. 나는 이제 안전하고 괜찮다, 추위는 아주 지나가 버렸다, 그런 안도감이 밀려왔고, 종종 그때를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떠올릴 때가 있다.
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