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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다정이 Oct 12. 2020

긴장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날이 있다. 개운하지 않은 채로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한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타고 20여 분간 이동한다. 사람이 많은 날이면 어깨가 조금 딱딱해진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두 정거장 전쯤 갑자기 뒷목이 뻐근해진다. 귀가 멍하고 시야가 약간 흐릿해진다 싶으면 아차 싶다. 빨리 어딘가에 주저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등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가끔 이렇게 쓰러질 것 같은 날들이 있다. 주로 지하철에서 이런 증상이 심해지는데.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갑자기 일어서거나 오래 서 있어서 머리에 피가 안 도는 걸까?’, ‘기립성 저혈압이 있는 걸까?’ 아빠에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 아빠는 자율신경계 이상이 의심된다고 했다. 우리 몸에는 위험을 느낄 때 긴장하게 만드는 신경이 있고, 또 그것을 이완시켜주는 신경이 있는데, 아무래도 후자가 작동을 제대로 안 하는 것 같다며. 우리 몸이 긴장하면 살짝씩 이완을 시켜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너무 심하게 이완시켜버려서 아예 정신을 잃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긴장을 많이 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이완하는 신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니. 아직 제대로 진단을 받은 것이 아닌데도 억울했다. 만약 긴장을 풀어주는 신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라도 긴장을 풀려고 노력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긴장은 도대체 어떻게 풀 수 있는 걸까. 프랑스에서 만난 나의 친구 아바스는 나에게 아직 어려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고. 어깨를 만져보면 너무 딱딱해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아바스는 나에게 아이스크림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장미 향이 나는 이란식 아이스크림을 먹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은 단기적인 처방에 불과했다. 한국에는 이란식 아이스크림이 없기도 하고. 아직 긴장을 풀어주는 다른 아이스크림을 찾지는 못했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으려면 결국 경험이 많은 것이 중요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지하철은 거의 15년 가까이 탔는데도 탈 때마다 긴장하게 된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불안해서 그런 것일까? 이런 생각에 인터넷에 ‘불안 장애’라고 검색해 본 적도 있다. 인터넷에서 한 심리학자는 불안을 극복하려면 손으로 주위에 있는 물건을 만지라고 했다. ‘내가 지금 내 주변에 있는 것을 컨트롤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지각하다 보면 내 생각에 빠지지 않고, 조금 더 물질적인 세계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 연습도 많이 해보았다. 한 손으로 다른 쪽 팔을 만지면서 괜찮다고 되뇌어도 보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특징을 하나하나씩 생각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졌다.


이렇게 정신적인 긴장을 푸는 방법을 조금 터득했고, 요즘은 몸의 긴장을 푸는 방법도 찾고 있다. 최근에는 요가를 시작했는데. 요가를 할 때면 어떤 자세에 성공하고 싶어서 몸에 힘이 가득 들어갈 때도 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면 오히려 동작을 오래 유지하기가 힘들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와서 힘을 풀어야 할 곳을 건드려주시는데, 몸에 힘을 빼고 나면 몸의 반경이 더 넓어진다. 어느 정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멈춘 뒤에 천천히 호흡한다.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소리를 내며 내쉰다. 숨을 내쉴 때마다 뻣뻣했던 몸이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몸의 긴장이 풀린다. 


긴장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올까 궁금할 때가 많다. 아마 죽을 때까지 약간의 긴장은 하고 살지 않을까 싶다. 만약 정말로 내 몸에서 긴장을 이완시켜주는 신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마 계속해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손으로 주변의 것들을 만지고, 호흡을 내쉬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소한 것을 찾고, 내가 있는 현재를 지각하고, 그리고 힘을 빼야 하는 순간을 아는 것. 이 세 가지가 나의 신경을 대신해주길 바랄 뿐이다. 





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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