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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다정이 Oct 25. 2020

얼음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에 *이런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자동문 앞에 섰는데 자동문이 도통 열릴 생각을 않는다는. 존재감이 없다는 게 그 이상 사무칠 수 없게 자동문은 오리무중이다. 주인공은 꽤 담담한 얼굴이지만.  


살면서 그런 적은 많았다. 자동문이 도통 열리지 않았던 적이. 앞에서 서성이는데도 자동문이 3초 이상 묵묵부답이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를 본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이 쪽팔리니까. 왜 나는 그런 것에 쪽팔려했을까. 내 존재감이 이다지도 미비하다는 걸 폭로당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알았다. 내가 두각이라는 말과 거리가 멀다는 걸. 그건 한편으로 편했다. 두각이 된다는 건 시선이 모인다는 것이고 시선이 모이면 나는 어쩔 줄을 몰라했으니까. 나는 두각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서 함몰되어 있지도 말아야지. 적어도 쟤가 여기 있었네? 그러게, 몰랐어. 이런 말은 듣고 싶지 않다고, '여기 있다'는 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고 싶다고 나는 바랐다. 하지만 자주 실패했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서 함몰되어 있었고, 어쩌다 움푹 파인 곳에 있는 나를 알아챈 사람이 소리 내어 말하면 여기저기에서 시선이 몰려들었다. 두각에 쏠리는 시선과는 다른 종류의 난감한 시선이. 나는 그 순간이 너무 싫었고 솔직히는 무서웠다. 내 미비한 존재감을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 존재감이라는 말은 공포와 맞물려 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누구도 모를 수가 있나, 그런데 그럴 수가 있다는 게. 어렸을 적에 얼음 땡 같은 놀이를 할 때면 특히 무서웠다. 놀이를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예감해버린다. 누구도 내 몸을 툭 치지 않는 미래를. 그 와중에 누군가 내 몸을 툭 치며 땡이라고 외치면 나는 안도했다. 나를 놀이에 '껴준다'는 그 느낌에 고마워했던 건, 내 기분의 디폴트가 소외감이기 때문일까. 미묘한 낭패감과 흥분이 뒤섞인 채로 나는 숨차게 달렸고, 잡힐 것 같으면 얼음을 외쳤다. 그리고 다시 기다렸다. 아무나 나를 건드려 주기를. '땡'이라는 말이 내 존재의 이유인 것마냥,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꼭 얼음 땡 놀이가 아니더라도, 특히 놀이를 할 때 나는 자주 긴장하며 무서워했다. 수건 돌리기 놀이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나 달리지 못한 날이면 집에서 울었다.


이제 서른 살이 훌쩍 넘었지만, 비슷한 일에 매번 비슷하게 상처를 받는다. 다행인 건 더 이상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걸까. 적어도 어떤 관계를 맺을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서 아주 함몰될 것 같으면 아예 피해버리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래서 그건 또 좋은 일일까.


"너는 엉뚱한 곳에 가서 '여기인가' 하고서는 땅을 파. 엉뚱한 곳이니까 아무것도 없겠지. 없으면 적당히 다른 곳을 파볼까, 생각할 만도 한데 그냥 계속 파. 그리고 결국에는 누구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깊게 땅을 파서는 그 안에 하염없이 있는 그런 사람 같아."


누군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지만(그러니까 나의 편협하고 고집스런 사고방식에 대한 것이었는데) 총체적으로 어쨌든 나는 그런 사람인 걸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튼 함몰된, 근데 그게  내가 직접 파서 들어간 구덩이일 수도 있는. 그렇다면 나는 정말 여러모로 절망적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네이버 국어사전에 함몰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았다. 비슷한 말로 멸망, 몰락, 파멸, 함락, 이런 것들이 나왔다. 이제는  혼자서도 땡을 외칠  있는 새로운 놀이가 필요하다.  




*글을 쓰고 나서 오랜만에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를 다시 보았다. 당혹스럽게도 자동문이 도통 열리지 않는 장면은 없었다. 다만, 주인공이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데 다른 사람이 주인공을 거의 없는 존재처럼 여기며 자리를 빼앗는(?) 장면이 있었다. 혹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주인공을 그냥 지나쳐버린다거나. 자동문 장면은 대체 어디서 본 것일까. 어떤 과정을 거쳐 내 머릿속에 그런 장면이 아주 구체적으로 생겨버린 것일까. 영문을 모르겠는 지금이다!





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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