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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루 Jan 09. 2018

[백수일기] #1. 나의 퇴사 이야기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은 없다. 

또다시 백수가 되며 나의 퇴사와 이직 이야기를 생각해보았다.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먼저 취업을 하기 전 대학생 시절, 점심시간 때 목에는 사원증을 걸고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며 단정한 정장을 입고 있는 회사원 언니들을 보며 '우와, 부럽다. 진짜 나도 회사에 다니고 싶어'라는 생각을 했었다. 무슨 회사가 학원인 줄 알았나 보다. 그들의 점심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던 것인지, 그들을 부러워했던 그 대학생 시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게다가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1시간 반 거리인데 통금시간은 오후 11시, 유독 엄하신 부모님 때문에 자취에 대한 로망은 커졌고 얼른 독립하려면 취업을 빨리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서른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집에서 살고 있지만... 미안하다. 20대의 나 녀석아...


누구보다 취직을 간절히 원했던 나는 대학 생활 중 인턴으로 근무할 수 있었고, 운이 좋게도 좋은 상사 분들 덕분에 막내라고 예쁨을 받고 자랐으며, 지금까지도 평생 친구로 지내고 있는 인턴 동기 언니들을 만나 퇴근 후 매일 같이 신나게 놀았다. 지금 생각건대 정말 인턴을 행복한 곳에서 했다. 6시 칼퇴근에 너무 좋은 상사, 동기들이라니... 꿈의 직장을 처음부터 만났다.


빛과 그림자라는 양면을 모르고 졸업하기도 전 취업을 했는데 잠깐 다녔던 회사는 어마어마했었다. 오전 8시 출근~오후 7시 퇴근. 이게 기본 근무 시간이었으며 일주일에 한 번을 제외하고 퇴근 후 재택으로 최소 2시간 근무를 해야 했다. 게다가 매주 주말에도 근무를 해야 했다... 


엄청난 근무량과 그에 비해 턱없이 적은 월급, 같이 입사한 사람들 중 2주, 1달 뒤 퇴사하는 이들도 많았다. 또한 그런 사례가 많았기에 따로 인수인계할 일이 많지 않았던 막내들은 당일 퇴사도 가능하였다. 바로 그 시간에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주말에 근무를 하며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엄마가 "짬뽕이라도 먹으면서 해..."라고 안쓰러운 맘에 짬뽕을 조금 덜어줬는데, 일을 하느라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때는 이미 짬뽕이 다 불은 후였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높은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닌데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이렇게 일을 해야 하나... 물론 열정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직장은 우리나라에서 찾기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여기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 달 만에 퇴사를 했다. 


한 때 진지하게 일이 하기 싫어 얘를 시키고 싶었다.

한 달 뒤 다니게 된 다음 회사는 행복했다. 좋은 상사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정말 배울 점이 많던 분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더 열정적으로 선배들께 배우고 그럴걸 하는 후회도 든다. 


하지만 회사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급변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회사의 수익과 퀄리티 있는 콘텐츠는 함께 상승할 수 없었나 보다. 물론 빠른 속도가 저퀄리티의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빠른 속도와 수익성 있는 기사를 쓰려면 어느 정도의 퀄리티는 포기해야 했나 보다. 


그리고 내가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시험 기간에도 '대장금'을 꼭 본방 사수해야 할 만큼 드라마를 사랑했고 '아는형님' 속 김희철처럼 간주 조금만 듣고도 "이거 이거 그 노래!"라고 할 정도로 연예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나였기에 이 분야에 있어서는 자신 있다고 느꼈지만 나보다 더 잘 하는 선배, 후배, 동기들은 많았다. 


특히 한 선배는 정말 최고의 열정과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선배를 보며 '나는 노력도 안 했다, 나는 애정을 갖고 있지도 않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소질이 없나 싶었다. 그렇게 그 회사를 퇴사하게 됐다. 


도쿄여행 마지막 날 저녁, 항상 시부야의 이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몇십분 동안 계속 쳐다보며 마음을 정리했다.

예전의 나는 지금과 달리 여행의 필요성에 대해 느끼진 못했지만 왠지 휴식을 할 때는 여행을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덜컥 도쿄행 티켓을 끊었다. 지금도 그렇고 퇴사를 하면 도쿄로 향하는 이유가 여기서부터 나온 것 같다. 우리나라와 뭔가 비슷하지만 다른, 그런 곳에 있고 싶었다. 


도쿄 여행 중 아는 선배의 이직 소개 겸 제안을 받게 됐다. 나는 단번에 좋다고 했고 귀국한 후 일사천리처럼 이직을 하게 됐다. 


새로운 포맷의 스타트업 회사는 신기했다. 임원을 제외하고 모든 직원끼리는 '~님'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전까지 선배에게 조금이라도 반박하는 것은 최고 죄악에 해당했는데 그 회사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못하는 사람이 바보였다. 그때부터 나와 20년 이상 함께 했던 직언세포가 다시 깨어난 것 같았다. 


"주말 잘 보내세요!"라고 말하며 주말에는 온전히, 다른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쉴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복이었다. 세상에 "주말 잘 보내세요"라는 말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나. 심지어 추석 연휴 직전에는 조기 퇴근도 할 수 있었다. 끼야호...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전 업무는 특성상 휴일에 더 바빴기 때문에 빨간 날 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정신 건강 상 상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였다. 내 직무는 분명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나는 3개월의 근무 시간 동안 세 번의 팀 이동을 하게 됐다. 그 회사에서 가장 많이 한 일 중 하나는 컴퓨터 설치였다.(책상을 많이 옮겼으니) 스타트업의 특성상 팀이 없어지고, 새롭게 배치되는 것이 일상이었다. 명확한 체계 안에 있었던 나였기에 스무스한 체계는 더욱이 힘들었다. 퇴사를 선언했을 때 모두가 이해한다는 분위기였다. 결국 얼마 되지 않아 내가 마지막으로 몸담던 팀은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상사 분들도 그만두시고...


아쉬웠던 근무 경험이었지만 뜻깊었던 경험이기도 했다. 음악과 영화 분야에 있어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평론가 분들이 상사기도 했고 지금도 연락하고 만나는 좋은 선배와 후배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언제 이 분들과 함께 일을 해보겠나. 아팠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책이 나오자 친구들은 너를 위한 책이라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두 단어 퇴사, 도쿄가 제목에 들어있다고. 

그리고 또 백수가 되었다. 신기한 게 이직은 기대할 때보다 기대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것 같았다. 우연히 아는 선배를 통해 한 회사를 소개받았고 다시 이전의 일로 돌아왔다. 소질이 없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나름의 보람을 느꼈다. 나를 친동생만큼 잘 챙겨주시는 선배들도 만났고 왠지 더욱 챙겨주고 싶은 후배들도 만났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인터뷰도 경험할 수 있었고 보고 싶은 영화도 많이 볼 수 있고 행복했다. 그런데 지치더라. 업무 외 스트레스받는 요소가 굉장히 많았다. 우연찮게 길을 걷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봤는데 색이 하나도 없었다. 왠 지친 사람 하나가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평생 아프지 않았던 배가 아팠다. 처음엔 소화가 안된 것이라 생각했는데 배가 너무 아팠다. 봉은사역에서 삼성역까지 걷는 동안 숨을 쉬는 것이 아플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빨리 병원에 가야 했는데 하필 당직이었어서 꾹 참았다. 내가 당직을 안 하면 누군가에게 민폐가 된다는 것도 미안했고 다시금 스케줄을 맞추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병원에 갔다. 반드시 3일 이상 입원해 항생제 주사를 맞아야 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입원을 하루 미뤘다.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내 일을 대신할 수도 없었고 대신하게끔 스케줄을 조정하느니 내가 하루 아프면 된다고 미련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심지어 입원 날까지 일을 하고 다행히 추석 연휴와 맞닿은 날, 퇴근 후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입원하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살면서 입원해본 적도 없었는데 스트레스로 인해 병을 얻고 입원을 하다니...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할까 싶었다. 


퇴원하며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자기 몸을 소중히 생각하세요." 별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슬플 수 없었다. 소중한 나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또 퇴사를 하게 됐다. 


퇴사 후 카페를 자주 찾게 됐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카페에서 이런 저런 글을 쓰는 것도 새로운 행복이다. 

여러분! 제 퇴사 모험담을 들어보세요! 이런 말은 절대 아니다.

쉬고 있는 요즘은 '내가 조금만 참을걸 그랬나...?'하는 후회가 들 때도 간혹 있다. 


그럼에도 퇴사를 한 것에 대해서는 결국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이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나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퇴사를 함으로 인해 나는 마음속에 있었던 일종의 병을 치유했다고 생각한다. 이전보다 훨씬 여유로워졌고 인상을 쓰는 일도 적어졌다. 또한 감히 잃어버렸던 초심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거나 보다 열정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과거에 지쳤던 나를 반성했다. 


많은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며 나 자신을 원망하고 싫어했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약간의 시간이라도 몸담았던 회사를 통해 나름의 여러 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좋건 나쁘건,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던 것이다. 정말 세상에 이유가 없는 일은 없다. 모든 일을 통해 우리는 깨달을 수 있고 다음에는 그 깨달음을 반영할 수 있으며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배우 천우희를 인터뷰했을 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자기는 일과 자신을 확실히 분리하려 한다고. 일의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의 행복도 잃게 된다면 그건 아니라 생각한다고 본인의 소신을 밝혔다. 일의 영역, 나의 영역은 분명히 나눠져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로 인해 나를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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