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성장하는 직장인의 자기 위로
문득 넷플릭스에서 앤서니 보데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로드 러너>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사는 남자로 꼽히기도 했던 201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셀럽. 앤서니 보데인의 성공과 최후를 다룬 자전적 다큐멘터리입니다. 다양한 주제로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유튜브에서 조승연 씨가 정리해 주었던 내용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Newness Seeking
Addictive Persnality
현대사회에서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성격적 특징은 위 두 가지로 꼽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새로움을 추구해 나가고 스스로 성장해 가는 성격의 소유자. 그리고 무언가에 관심이 생겼을 때, 끝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는 중독적 성격의 소유자. 이 두 가지 특질을 골고루 갖춘 사람들이 주로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다고 조승연 씨는 정리를 해 주시더군요.
앤서니 보데인은 특히 이러한 성격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이러한 성향의 뒤편에 불안을 함께 지니고 있는 점이라고 합니다.
앤서니 보데인은 일 년 중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셰프 출신인 그는 세상의 새로운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지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가발전을 거듭하며 음식뿐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를 아우르는 여러 방면에서의 인플루언서로 성장해 나가게 됩니다. 놀라운 커리어 성장의 뒤편에 남들은 모르는 불안이 점점 커져 갔고, 많은 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그의 삶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방식으로 마무리 되게 됩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듯한 부와, 명예, 네트워크, 삶의 방식을 가진 그였지만 그가 가진 어떤 것도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지 못한 듯합니다.
앤서니 보데인의 삶의 방식과 그 성과로서의 ‘성공적으로 보이는’ 결과물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쉽게 상상하기도 힘든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그를 불안의 그늘 아래 가두게 만든 것이었을까요?
어떻게 하면 불안을 느끼지 않는, 혹은 불안이 적은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공황장애 증상으로 잠시 정신과의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상상도 못 했던 불편한 느낌(불안감과 두려움)에 휩싸여 도저히 병원을 찾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치료를 통해 이를 조금씩 극복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에게 공황장애의 trigger가 되었던 상황은 글로 쓰자면 참 평이하기 그지없는 ‘업무 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 누적’이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제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되더군요. 저도 역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 구성원인지라, 조승연 씨가 지적했던 위의 두 가지 특징에 상당히 가까운 가치관을 가지고 이를 추구하며 살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계속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고 그 안에서 내 것으로 만들어 성장해 나가려 노력하고,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일들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이에 끝까지 몰입해 나가는 것. 어찌 보면 누군가의 ‘성공의 비결’에나 나올 법한 이러한 사고방식과 행동들이 결국은 나를 충만하게 하기보다는 나를 시험하고 극단까지 몰아가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 때는 내 몸에서 보내는 경고신호를 크게 한 번 듣고 난 후에서야 였습니다.
한 동안은 나의 체력과 정신력이 약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스트레스 강도나 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운동이나 명상에 집중해 보려 한 적도 있습니다.
운동과 명상은 물론 아주 좋은 습관이고, 앞으로도 나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 반드시 익숙하게 해 두어야 할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직 부를 추구하며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목적에 치중해 인생을 살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말처럼 위안을 주는 말도 없습니다. 결국 나의 성장의 결과물이란 것이 축적한 ‘부’만큼이나 깔끔하게 정의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명예, 사랑, 우정 등등 좋은 가치들이 많고 모두 애써 추구해도 좋을 만한 인생의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한 많은 인생의 가치 중에서 ‘부’는 어느 정도 명확하게 수치화할 수 있고 심지어 비교도 용이한 지표입니다. 그렇기에 더 나를 우월하게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죠.
그렇다면 역시 ‘부’를 하나의 삶의 기준점으로 두는 것은 꽤 뚜렷한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듯합니다.
그동안의 불안과 불만은 이런 ‘부’의 축적에 대해서 한 가지 척도로만 단순히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얼마나 부자인가’ 하는 척도 말이죠. 여기에 이제 ‘언제 부를 축적할 것인가’ 하는 점만 살짝 더해 보았습니다.
어마어마하게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 누군가는 주식으로, 누군가는 부동산으로, 누군가는 코인으로 소위 말하는 ‘떡상’을 이루었고 벼락부자가 되었다 합니다. 그들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의 ‘부’는 지금 그만큼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많은 부분 위안이 됩니다. 여기엔 한 가지 전제가 덧붙여져야 하긴 합니다.
많은 돈을 가진 것은 그만큼 작은 것에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라는 마음의 전제 말입니다. 단순한 자기 합리화, 못 가진 자의 변명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먹을, 갖고 싶은 책을 살,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정도의 부는 가지면 좋겠지만 보통 우리는 그보다 훨씬 큰 부를 원합니다. 수억의 통장 잔고, 수십억의 부동산 이런 것들 말이죠.
아마도 죽을 때까지 누군가는 이루었다는 수십억의 자산가가 되지는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월급을 받아 조금씩 저축해 나가다 언젠가는 아이패드 프로를 덜컥 충동구매도 하고, 조금 더 오래 모으다가 언젠가는 꿈꾸던 오토바이도 사 보고 하는 이런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행복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돈이 너무 많아서 언제든 아무 때나 사고 싶은 최고로 좋은 모델의 오토바이를 당장 살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그건 별로 설레지가 않거든요.
불만과 불안은 갖지 못한 것과 갖지 못할 것 같은 것들로 인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갖지 못한 것, 그리고 앞으로도 갖지 못할 것 같은 것들에 대해 조금 더 여유 있게 유통기한을 늘려 주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오늘 내가 가진 것들에 조금 더 행복하고, 내일 조금 더 가질 수 있는 것에 설레며 사는 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 많이 오르지 않은 연봉이나, 생각보다 덜 나온 성과급, 내 월급보다 더 빨리 오르는 짜장면 값에 초조해하며 자위의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진짜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꿔 더 많은 행복을 느껴 보려고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거라고 해 두겠습니다.
Ja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