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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그래퍼 Jun 06. 2021

서른 백수 그 이후 서른둘 막내

만 서른에 쓰는 일기 - 서른 일기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새 직업을 향한 도전과 동시에 결혼을 준비하며 백수생활을 하던 서른, 그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원하던 분야로 취업을 했다. ‘사진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전 직장을 퇴사한지 딱 1년 만이었다. 그렇게 ‘포토그래퍼’라고 적힌 내 명함을 받았을 때 참 설레면서도 묘한 기분이었다.


Photo by JESHOOTS.COM on Unsplash


사실 서른 일년 동안은 내가 원하는 일에 매진 할 수 있도록 나 자신에게 주는 어른방학으로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변수가 생기고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듯이 나는 또 조급한 마음에 사로잡혀 취업을 서두르고 말았다. 원래는 그 다음해 상반기까지 천천히 준비해보려고 했지만, 소득 없이 지내는 생활을 참지 못하고 어느새 빠른 취업을 절실히 바라게 된 것이다. 결국 대중교통으로 왕복 4시간 거리에 있는 회사에 합격한 뒤 그곳을 다니기로 결정해버렸다. 내 수중에 여유 자금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무리한 결정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통근하기 적당한 거리에 있는 회사에 취업할 때까지 좀더 기다릴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1년 꽉채운 백수생활과 결혼으로 인해 통장 잔고가 거의 바닥이었기에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새 직업 생활을 마치 극기훈련하듯이 시작했다.

업무강도가 높고 업무량도 많이서 가뜩이나 야근이 잦은데 왕복 4시간을 통근하려니 집에 밤 11시 넘어서 들어가서 아침 5시에 일어나는 게 일상이 됐다. 일 자체는 적성에 잘 맞고 재미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빡빡한 생활패턴만이 아니었다.


Photo by Francisco Moreno on Unsplash


입사 후 5개월동안 동료 5명이 해고 당하는 걸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정신적인 압박을 참 많이 받았다. 같이 입사했던 동기가 한달만에 잘리고, 같은 팀 선임도 그 다음달에 잘려 나가고, 그후 몇달 뒤 3명이 하루아침에 한번에 해고됐다. 그동안 직장생활 하면서 직원이 스스로 퇴사하는 경우는 많이 봤어도, 원하지 않는 퇴사를 당하는 건 정말 드물었기에 이렇게 쉽게 사람을 자르는 환경이 충격적이었다.


내가 절실히 원해서 고된 업무와 왕복 4시간의 통근을 겨우 견디고 있는 거였기 때문에, 나도 언제든 저들과 마찬가지로 잘릴 수도 있겠다는 위협감까지 더해지자 몸과 마음이 크게 위축되었다. 다음 차례가 나여서는 안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일을 더 잘해내려고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했다.


Photo by Glenn Carstens-Peters on Unsplash


이렇게 약 1년 가까이 회사 일에만 매진하고나서 어느날 뒤돌아보니 그동안 개인적으로 찍었던 사진은 거의 없고, 사진 실력도 입사 전에 비해 크게 늘지 않은 상태였다. 회의감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진짜 실력을 키우려면 회사 일만 하는 걸로는 부족하고, 회사 밖에서 시간을 내서 연습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회사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조금 더 버티면 상황이 나아지겠지’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다니는 동안 어느새 내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시점이 왔다. 그뒤 후임이 새로 들어왔고, 그 후임과 함께 몇달을 더 일하는 동안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1년을 다 채우지 않고 사직서를 냈다. 역시나 또 감사하게도 퇴사 후 약 2주 뒤 면접을 본 회사에 바로 합격을 했다.



서른 한살의 11월, 난 또다시 막내로 새 시작을 했다.

신기하게도 지금 다니는 회사는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 대중교통으로도 30분이면 가는 거리에 있다. 업무강도가 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되도록이면 정시퇴근을 하는 분위기이고, 직원을 아끼는 게 보인다. 일이 쉽진 않아도 매일 재미있게 하고 있고, 13살 이후로 처음 갖는 ‘집에서 보내는 저녁 시간’에 적응하며 여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이 회사에 다닌 후로는 한달에 한번씩이라도 주말에 개인적으로 사진 작업을 하며 조금이나마 연습을 하고 있어서 이점이 가장 만족스럽다.


서른 백수, 그 이후 알게 된 것 하나는

안 되려면 죽어라 애써도 안 되고,
잘 되려면 너무나 쉽게 풀린다


는 것이다. 너무 애쓸 필요 없다는 걸 이제 알겠다. 지나치게 애써야만 겨우 할 수 있는 일은 내 길이 아니다. 그정도의 피나는 노력을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는 게 있다'


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현재 상황이 마음에 안 들지만 당장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면,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라면 그때는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첫 직장에서 만났던 동료들 대부분이 고된 시간을 버텨 지금은 더 좋은 환경의 직장으로 이직해서 이전보다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왕복 4시간 거리의 회사에서 마음고생 하며 버텼던 시간도 헛된 게 아니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회사와 연이 이어질 수 있었다.


Photo by De an Sun on Unsplash



그래서 지나고보니 그 어느 것도 후회할 게 없다.

지금의 생활도 100%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제는 이전보다 좀더 인내심 있게 몇년 후에 새로운 때가 오기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서른 백수 이후 서른  막내로 다시 시작한  여정에서 나의 가장  성과는 이렇게 조급함 살짝 내려놓은 이다. 2~3  내가 원하는  실행할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물론 지금의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내가 그대로 원하고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래도 지금 하루하루 보내는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이제는 알기에, 서른  막내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 두근두근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만 서른의 마지막날 쓰기 시작해서 만 서른한살 생일에 올리는 글)





서른, 서른 하나, 서른 둘을 보내는 동안 당신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당신은 어떤 시간을 버텨왔나요?




지난 관련 글: 서른, 백수로 산다는 것, 새 직업에 도전하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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