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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그래퍼 Jan 17. 2024

뇌출혈, 알코올 중독, 폐렴, 간경화가 한 번에...

쌓여 있던 감정을 소화하기 위해 쓰는 글 (2)

아버지의 뇌출혈 소식을 듣고, 짐을 싸서 친정으로 올라가던 날이었다.

당시 난 일을 쉬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금전적으로는 가족들을 도울 수 없으니 시간이라도 보태고자 했다. 그래서 병원에서 아버지 곁을 지켜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내가 그 일을 하리라 마음먹고 서울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그러나 출발 뒤에 뒤늦게 동생이 아버지의 간병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정은 이러했다.

토요일 밤 응급실에 실려 갔던 아버지는 계속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가 월요일에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되었다. 아버지가 뇌출혈 환자이기 때문에 낙상 위험이 있어서 반드시 1:1 간병이 필요하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당시 보호자로 등록되어 있던 내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과 협력하는 간병인 업체 리스트를 알려주었다. 당장 아버지를 1:1 간병할 간병인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동생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 추석 전까지 연차를 낸 상태였다. 동생은 병원이 공유해 준 리스트에 있는 업체들에 하나하나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추석 연휴 직전이었기 때문에 간병인을 보내줄 수 있다는 업체가 단 한곳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추석 연휴가 끝날 때까지 약 일주일 동안 동생이 아버지를 간병하기로 (혼자) 결정하고 병원에 갔다. 동생은 나에게 힘든 일을 맡기기 싫었던 것이다.


일주일 치 짐을 싸서 친정에 도착한 나는 당초 출발할 때의 다짐이 무색하게 추석 연휴 전인 수요일까지 3일간 그저 친정집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도 하루에 한두 번은 병원에 방문하여 동생을 만나 간병에 필요한 물품들과 옷가지, 그리고 엄마가 해준 반찬을 전해주었다.


간병인이 구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가족 간병을 시작했지만, 막상 동생이 가서 아버지의 상태를 보니 가족 간병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아버지는 가족사진을 봐도 누가 누구인지 잘 알아보지 못했고 심지어 간병을 직접 하는 나의 남동생을 보고도 본인의 남동생, 그러니까 나의 작은 아버지인 줄 안다고 했다. 의사에게 때로는 본인의 남동생이라고, 때로는 조카라고 소개한다고 했다. 동생이 알려줘서 가입한 뇌질환 환우 가족 온라인 카페의 글들을 보니 이렇게 인지가 좋지 않을 때는 가족 간병이 낫다고 하더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족 간병을 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게 잘 한 선택이었다.


하루에 한두 번씩 병원에 가서 동생에게 물품들을 가져다줄 때마다, 둘이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중간중간 동생이 아버지 병실에 가서 잘 계시나 확인해가면서. 매일 만났지만 만날 때마다 동생의 할 말은 차고 넘쳤다. 아버지의 상태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뇌출혈과 알코올 중독, 폐렴, 간경화 증상을 동시에 겪고 있어서 약도 치료도 복잡했다. 그렇게 동생으로부터 아버지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일단 아버지의 뇌출혈은 속에서 터진 것이 아닌, 넘어지거나 어딘가에 세게 부딪쳐서 생긴 외상성 뇌출혈이었다. 그래서 거동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뇌의 전두엽을 다쳤고, 인지 기능도 떨어졌다. 이게 일시적인 것일지 아니면 영구적인 것일지는 3~6개월은 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폐렴도 있었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가던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평일을 친할머니 댁에서 보내고 난 후 집에 돌아오신 날이었다. 동생이 보기엔 이미 그때부터 아버지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본인이 넘어졌는지 부딪쳤는지 전혀 기억을 못 하지만, 우리는 정황상 아버지가 치매를 앓는 친할머니 댁에서 보냈던 평일 중에 외상성 뇌출혈이 발생할 만한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아버지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지만 엄마와 동생은 처음엔 약간 몸살 기운이 있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건가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평소처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아버지가 앉은 자리에서 대소변을 보는 등 이상 증세가 있어서 남동생이 급히 119에 신고했다. 이미 뇌를 다친 상태에서 식사를 하다 보니 음식물이 식도가 아닌 기도로 넘어가면서 폐렴이 왔다. 그래서 4시간 간격으로 간병인이 네뷸라이저를 사용해 폐렴 치료를 도와야 했다. 말이 4시간 간격이지, 그 말은 새벽에도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인지가 안 좋아서 상황 파악을 못 하는 환자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가만히 누워 네뷸라이저를 하게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또 다른 큰 문제는 알코올 금단 증상이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진단을 따로 받은 적은 없지만 10년 이상 오랜 기간 매일 술을 드셨다. 그러다 병원에 갑작스럽게 입원하게 되면서 강제적으로 술을 입에 대지 못하는 상황이 오니 알코올 금단 증상이 왔다. 섬망이 심해서 간병인이 잠깐 자리를 비우거나, 밤에 자야 하는 시간에는 반드시 두 손을 침대에 묶어 두어야 했다. 그렇게 해도 입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밤마다 이상한 소리를 떠들어서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이 잠을 못 잘 지경이 되어, 결국 밤새 다른 곳에 혼자 격리되기도 했다.


오랜 기간 알코올에 절여진 아버지에게는 간경화도 있었다. 다행히 초기였다. 간경화는 완치가 안 되고, 계속 진행되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병이다. 뇌출혈로 인해 병원에 오면서 뜻밖에 간경화를 초기에 발견하게 되었다. 다만 이 역시 문제가 되었다. 간 약이 추가되는 건 둘째치고, 아버지가 고열이 있을 때 해열제 같은 걸 쓰면 간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얼음팩을 양쪽 겨드랑이나 목뒤에 끼워서 열이 내려가도록 해야 했다. 이렇게 간에 부담이 되는 약은 줄이거나 피해야 했기 때문에 치료 과정이 더디게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질병과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니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단지 뇌출혈이라고만 알고 있었을 때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동생은 병원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며 아버지의 간병을 했다. 게다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아버지가 입원 중이던 대학병원에서는 한번 간병을 맡으면 그 기간동안에는 외출도 할 수 없었다. 동생은 간병 기간동안 꼼짝 없이 병원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리고 추석 연휴가 끝난 뒤부터는 장녀인 내가 동생과 교대하여 1:1 간병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고된 간병 생활에 나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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