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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zelnut Jul 27. 2020

동의

   나는 다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나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수녀님의 얼굴 표정을 주름 하나까지 기억한다. 나에게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는 끝끝내 오지 않을 것 같던 순간이 드디어 찾아왔을 때 나는 그거 멍하니 현실을 구분조차 하지 못했다. 너무도 바라왔던 순간이라서 당황스러움 말고는 느낄 여력조차 없었다. 내게도 가족이 생기다니.


   처음 만난 부모님의 얼굴은 인자했다. 검은색 세단이 미끄러지듯 우리 보육원에 들어왔을 때 나는 왜인지 모를 생경함을 느꼈다. 주말이면 봉사자들이 봉고차를 타고 오기도 하고, 간간이 친구들, 언니 오빠들이 우리 곁을 떠날 때 각양각색의 차들이 대문을 통해 들어왔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태우러 온 그 차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역시나,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순간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훗날 내가 겪게 될 일들을 어렴풋이 알았던 걸까? 오랜 세월 눈치만 키워온 내가 초인적인 힘으로 미래를 내다 보고 느낀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몇 해는 그저 좋았다. 내가 더 이상 고아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도 누군가에겐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이, 주말마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잘 보일 필요도, 누군가 선택 받았을 때 억지로 박수 쳐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들이 기쁨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 외에 즐거움이 있어야 함을 나는 알지도 못했다. 가족이 주는 따뜻함, 아늑함, 안정감이 당연한 것임을, 그로 인해 내가 행복해야 함을 배운 적도 없었으니까. 그저 벗어나고 싶은 공간에서 벗어난 것만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고작 그 짧은 인생에 있어서 간절히 바랐던 단 하나의 목표, ‘선택’에 그저 동의했고, 나에게서 일어날 모든 일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낭떠러지였으니까.


   나를 데리고 온 부모님은 좀처럼 내게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두분 모두 바쁜 삶을 살고 계셨다. 맞벌이에, 그저 그런 살림살이, 빠듯했던 통장 사정.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입 하나 늘어난 것이 그 분들께는 꽤나 벅찬 부담이었을 것이다. 단지 보조금을 넉넉히 받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파트를 분양 받는 데 꽤나 이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 수를 늘리는 데 이용할 요량으로 사용한 편법은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었을 테다. 나는 그저 서류상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느끼고, 생각하고, 보고, 듣는 사람이었으니까. 


   다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주말마다 오는 봉사자 분들은 언니 오빠를 한참이나 지켜봤다. 1, 2년은 주말마다 만나고, 주중에 잠깐씩 함께 외출도 하고 결국에 아예 짐을 챙겨 집으로 데려가는 수순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그 전의 몇몇 아이들은 얼굴도 보지 못한 부모들에게 선택 ‘당했다.’ 수녀님들도 이상하게 여기기는 했지만 보육원에서 더 이상 그 많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없었기에 께름칙한 상황이라도 선택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선택에, 그 모든 상황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다시 보육원에 홀로 찾아온 나를 보며 수녀님은 억지로 눈물을 삼키셨다. 나는 참을 눈물도 없었다. 누군가의 편리함을 위해 몇 번이고 버려짐을 견뎌내야 하는 나의 삶에 나는 동의한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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