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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zelnut Aug 06. 2020

시작은 카터 칼이 전부였다.

진실을 덮는 거짓들

먼지가 쌓여 있던 교실 바닥에 섬뜩한 핏방울이 후두둑 떨어진 것을 내가 제일 처음 발견했다. 사건 당사자도, 피해자도 아닌 그저 옆 분단에서 지루함에 고개를 떨구고 있던 내가. 나는 내가 목격한 광경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에 한 참을 멈춰 있었고, 핏방울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떨어지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나와 눈을 마주친 것은 손바닥을 부여잡은 피해자와 얼이 나가있는 가해자였다. 


사건의 진상은 이러했다. 그저 수업에 흥미를 잃은 두 남자 아이의 장난이 발단이었다. 뒷자리 가해자는 카터 칼에서 칼날을 넣었다 뺐다 장난을 치며 앞자리 피해자를 놀려댔다. 앞자리 피해자는 아무 생각없이 그저 친한 친구의 장난을 받아들여 그 카터 칼을 잡았다 놓쳤다 하며 히히덕 거리고 있었다. 별스럽지 않은 장난이었지만 수업 보다는 재미있었던 ‘보리보리쌀 놀이’는 점점 과격해졌다.


그저 칼날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피해자의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저 친구가 이번에는 놓칠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해자의 무심한 생각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장난 속에서 결국 누군가는 피를 봤고, 반장이었던 나는 어린 나이에 친구의 손바닥에서 피가 그렇게 많이 나는 상황이 덜컥 무서워졌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 모두를 구렁텅이에 빠뜨린 것은 그 찰나의 두려움이었다. 선생님이 알면 어떡하지? 어른들이 상처를 보면 뭐라고 하실까? 수업시간에 칼을 들고 있어도 됐던가?


순식간에 아이들끼리 귓속말이 오갔다. 용케도 그 심각한 순간에 아무도 큰 소리 내지 않고 선생님 몰래 작전을 짰다. 우선 가장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한 카터 칼을 사물함 뒤로 던져 인멸해버렸다. 그리고 기지를 발휘한 부반장이 화장실에서 훔쳐온 엄청난 크기의 두루마리 휴지로 피해자의 손을 동여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피가 많이 흘러나와 휴지가 엄청나게 필요했지만 우리 학교 두루마리 휴지는 크기가 엄청났다. 다행히 엉성한 붕대를 감은 것 마냥 어찌어찌 피를 숨길 수 있었다. 


차근차근 해결이 되니 아이들은 자신감이 붙었다. “그래, 숨길 수 있을지도 몰라.” 사실 상처가 나고 고름이 생길 것이고 고통이 따라올 피해자의 손바닥은 휴지 속에 그대로 방치됐지만, 왠지 모르게 학생들에겐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우선 장난이 평소에도 심하던 가해자와 피해자를 멀리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 마자 우리는 조금씩 자리를 바꿨다. 담임선생님이 자리에 예민하지 않으시다는 걸 천운이라고 생각하며. 피가 어느새 꽤 많이 고인 바닥은 누군가 대걸레를 가져와 열심히 닦고 잽싸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화장실로 달려가 피의 흔적을 지웠다. 


그저 피 한 두 방울 나왔을 때 보건실에 갔거나 선생님께 소리를 질러 응급차라도 왔으면 일이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들어야 할 꾸지람을 듣고 반성문 한 두 장을 썼더라면 친구의 손이 수술대 위에 까지는 안 갔을 지도 모른다. 너무 늦어버린 병원 행과 너무 청결하지 못했던 우리들의 수습은 친구의 손을 극한으로 치닫게 했다. 진실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았다. 오히려 진실이 밝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상황을 악화시켰고 모두를 공범으로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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