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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인 Nov 05. 2023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_마이클 슈어

선한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것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라는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 중 하나다. 언제부터였는지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반추하고 더 좋은 방향을 고민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써왔다. 그 마음이 당위인지 욕망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좋은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오히려 일을 망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이 마음을 외면하고 마땅치 않은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마음은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했다. '다시 좋은 사람이 되어보자.' 이 책 또한 그런 마음에서 꺼내 들었다.


 자기 행동을 두고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다고? 그냥 대충 살자고? 그것은 도저히 옳은 길이라고 할 수 없다. 세상에 마음 쓰이는 일이 하나라도 있다면 자기 행동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은 나 자신의 도덕 철학 여행 기록이자 실패를 인정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에 대한 기록이다. 실패는 시도하고, 배우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데 꼭 필요하면서도 유익한 부산물이다.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_마이클 슈어


 이 책은 철학 이론서보다는 철학 실용서에 가깝다. 하나의 이론을 깊게 들어가거나 삶의 지침으로 삼으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는 칸트의 '의무론'을 따르기도 하고 다른 상황에서는 공리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이에 더해 삶을 윤리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을 권하지 않는다. 도덕적 성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루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 이야기한다. 만약 우리 삶이 타인의 행복을 위한 헌신만으로 가득 차고 도덕적 틀에 맞추는 것에만 사용된다면 우리 존재가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주체이고 도덕은 수단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조각들을 쥐어주고 각자의 조합을 취할 것을 권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좋은 삶'일까? 이 책을 꺼내든 사람들에게 가장 궁금한 질문일 것이다. 저자는 그 기준점으로 윤리 철학 이론들을 끌고 온다. 서양 윤리 철학 이론 '빅 3'로 뽑히는 덕 윤리, 의무론, 공리주의 외에도 실용주의, 계약론, 실존주의 등을 다룬다. 친절하게도 우리가 겪는 윤리적 고민들을 제시하고 각 관점이 어떻게 판단할지를 보여주며 각 이론의 강점들을 제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는 덕에 다가가는 것은 본래 시행착오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본인에게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가르치고, 공리주의는 모든 사람의 행복이 동등하다는 신념으로 엘리트주의를 무너뜨리고, 의무론은 감정이나 상황에 타협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이러할 가르침 속에서 나는 특정 상황에서 어떤 이론이 끌리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책은 여기서 더 나아가, 도덕적으로 살기로 했다면 겪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들을 다룬다.  '선한 행위를 하는 데 상한선은 어디일까?', '착하게 사는 건 피곤한데 안 하면 안 될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조직이 비윤리적 행위를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이 그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포기하도록 만드는 질문들이다.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빙의해 윤리적 삶을 살기로 했다면 윤리적 실패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다시 시도하고 더 나은 실패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그러한 불편한 감정들을 마주하고 내 행동을 점검할 것을 권한다. 그런 꾸준한 시도가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드라마 <굿 플레이스>가 내 인생 드라마 중 하나인 것에 더해, 이 책 또한 내 인생 책이 될 것 같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의 괴리 속에 괴로움을 느끼던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드라마 <굿플레이스>를 보면 악마가 사람을 벌주는 방법으로 선한 사람들만 있는 천국에 평범한 사람 홀로 남겨두는 방법을 사용한다. 완벽한 사람들 속에 넣어둠으로써 스스로 자기 존재의 불완전성을 강하게 느끼도록 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선한 삶을 살고자 하지만 매번 실패하는 인간의 고통을 극대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또한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처럼 매번 선한 삶에 실패하지만 다시 시도하지 않은가? 이 책은 그러한 모순을 끌어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잘 살 방법을 고민하는 책이다.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누군가는 행복한 시시포스'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모순이 있을지라도 포기하거나 ‘전체적이고 분열되지 않은 존재로서의 감각’인 도덕적 완결성을 이뤄가는 작업을 그만두면 안 된다. 모순을 발견하면 되돌아가 더욱 파헤치고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필요하면 처음 그은 선을 지우고 다른 곳에 선을 다시 그려야 한다. 우리 자신의 완결성 체계 안에서 일어나는 모순 덕분에 우리는 자기 신념과 윤리를 이해하고, 나 자신이 누구인지 진정한 결정을 내리도록 다시 한 번 시도할 기회를 얻는다. 명확한 해답도 없고 경험으로도 할 수 없으며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한 이론상의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 순간이 바로 실패의 진정한 가치를 볼 수 있는 때다. 언젠가 스스로 맞불을 놓을 수밖에 없는 그런 결정을 내릴 것이다. 문제를 더 많이 곱씹고 더 많이 생각할수록 그로부터 더 많은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_마이클 슈어
관심사가 단 한 가지인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다. 그 관심사가 도덕적 완벽함이든 수영이나 백파이프 연주든 마찬가지다. 인간은 개성과 고유하고 독립적인 특성을 갖춘 한 존재라는 점 때문에 사랑하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새로운 경험을 해나간다. 인간이라는 작은 정원에 고유함의 씨앗을 심고 길러내려는 마음이 없다면 과연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이 윤리에 관한 것일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_마이클 슈어
너 자신을 알라.  지나치지 말 것.  솔직히 말해 이러한 ‘삶의 조언’ 시리즈가 존재해 온 이래 지난 2,400년간 이 두 가지를 이긴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너 자신을 알라. 네가 누구인지 생각하고 무언가를 할 때면 그것이 옳은 결정인지 자신을 점검하라는 뜻이다. 네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마음쓰는 것이 무언신지 기억하고 온전한 존재로서 너 자신을 이해하며 그에 맞는 삶을 살라는 거야. 지나치지 말 것. 무엇이든 지나치면 일을 망치고 만다. 친절이나 관대함, 용기 같은 덕을 쌓되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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