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인 Nov 01. 2023

<내 일로 건너가는 법>, 김민철

 '워라밸'이란 단어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 중 하나였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하는 이 단어는 개인의 사생활이 직장과 업무로부터 얼마나 지켜지는지를 말한다. 이 단어가 널리 사용된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에서 그 균형이 지켜지기 않아왔음을 의미한다. 연간 노동시간이 OECD 상위권에 있다는 뉴스가 익숙한 이 나라에서 워라밸은 개인이 챙겨야 하는 요소이고 기업 입장에서 우린 다르다고 홍보해야 하는 요소인 것이다.

 

 김민철 작가님의 책 <내 일로 건너가는 법>은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일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해 쓴 책이다. 이제 우리는 조직에 헌신하고 업무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지 않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평생직장이란 말은 사라졌고 실제 이직하는 이들의 비율도 많이 높아졌다. 이제 각자가 자신의 삶과 커리어적인 성장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더욱 잘 살기 위해서는 직업과 조직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의 일들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고 조직이 주는 안정감도 무시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은 저자가 맺고 있는 일과의 관계 그리고 그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들에 대해 쓴 책이다. 회의, 실패, 리더십 등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이 지켜오고 있는 가치관과 원칙들을 풀어낸다. 일하는 동안 끊임없이 침범하는 회사와 타인들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치열한 싸움들이 묻어난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질문은 조금 더 확장됐다. 과연 나는 일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본래 일에서 자아실현과 성장을 찾는 낭만주의자에 가까웠다. “직장에서 남는 건 돈과 승진뿐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반발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우린 모두 직업인이라는 표현을 읽었을 때 머리가 띵해졌다. 나도 모르게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생존이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생긴 물질적인 여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돈은 나의 삶을 지켜주는 방어막이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세계들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직업이 내가 안정적으로 설 수 있는 기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나 또한 현실과 낭만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나는 나를 어떤 미래로 데려갈 것인가?’ 요즘 나를 지배하는 고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커리어적인 걸 넘어서 삶 전반에서 드는 질문이다. 더 이상 정해진 길도, 따라갈 표본도 없는 상황에서 나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외롭고 불안하게 했다. 회사에서 성장을 찾고 좋은 팀원들과 협업해 시너지를 내는 모습을 상상하는 내가 별종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 책과 작가님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실제 그것을 실현하는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내 생각과 감정을 지지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감정에서 멈춰서는 안 된단 사실이다. 작가님 같은 팀장님과 이런 분위기의 팀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 팀에 들어가는 일도 지극히 가능성이 낮고 그 팀에 들어간다 해도 생각했던 것과 다를 것이다. 결국은 내가 그런 사람으로 바뀌고 그런 팀이 될 수 있도록 빚어가야 한다. 실패로 무너지지 않기, 피드백을 나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상대를 믿어주기 등등 이 책에서 이야기한 원칙들을 나도 조금씩 지켜나가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을 완독 하며 얻은 숙제다.


 물론 이 책의 이야기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것들이 모든 직장에서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라는 환경이 문화나 제도, 사람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앞서 말했던 근로시간이나 이런 사회문제 등을 생각하면 너무 개인의 영역으로 이야기한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마인드셋이나 원칙 등의 측면에서도 해결하고 토론해 볼 영역들이 있다 생각해 보완적으로 생각하면 좋을 거 같다.



+) 번외로 말하자면, 이 책의 ‘안대 차고 건너가기’라는 챕터가 좋았다. 작가님은 미생에서 회사 구성원의 비리를 내부고발한 이후의 장면과 대사를 인용한다. 내부 고발 이후 경직되고 뒤숭숭해진 사무실 분위기 속에서도 주연 중 한 명인 오 과장은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회사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정치, 공작, 어려운 인간관계 등 업무 외의 장애물이 난무한다. 하지만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그는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일로서 대응한다. 작가 또한 이에 덧붙여 결국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고 자신의 패는 배신이나 정치가 아니라 일이라 말한다. 그리고 결국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오래가고 신뢰를 얻어낼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준다. 그게 좋았다. 나 또한 딱히 그런 깜냥도 되지 않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고지식한 사람이라 아군을 만난 느낌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시 한번 ‘회사는 일을 하러 가는 곳이고 그러니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되새겼다.


“Life itself will let you know.” (인생이 알려줄 거야.”) 너무 애쓰지 말고, 재미가 있으면 재미있는 대로 강물에 몸을 맡기는 거야. 그게 아니면 그건 그때 또 생각하면 되는 거지. 그러다 어떤 강둑에 도착하게 되면 그때 또 거기서 답을 찾아보면 되는 거지. 지금 모든 답을 다 알려고 애쓰지 마. 인생이 알려줄 거야.
하지만 회사원이기 때문에 광고를 더 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윤여정 씨도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은 예술가가 아니라 직업인이라고. 그래서 대사 한 줄도 절박하게 씹어 삼켜서 연기해야만 했다고. 성실하게. 완벽하게. 이 일은 내 직업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_마이클 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