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물고기가 존재한다고 믿으세요?
작년 베스트셀러였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올해 연말이 되어서야 모두 읽었다. 좋아하는 유튜버 김겨울 님이나 이동진 기자님이 추천하신 만큼 꼭 읽어야겠다 마음먹었는데 많이 미뤄졌다. 그렇지만 읽으면서 지금 이 시점에 읽어 다행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 삶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차였기에 이 책의 내용이 더욱 와닿은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꽃말이 '책 내용을 스포 하지 마세요'라는 밈이 있을 만큼 추가적인 내용은 아래에 적으려 한다. 혹시 읽을 생각이 있으시다면 먼저 책부터 읽어보시는 것을 권해드린다.
스포주의 선
이 책은 어떻다고 한 줄로 정의하기 어려운 책이다. 책 소개에 따르면, 과학 전문 기자가 쓴 자전적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지만, 실제 읽었을 때는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이 있었다. 어느 부분은 한 과학자를 조명하는 이야기 같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과학 소설 아닌가 싶기도 했다. 소재 또한 과학자와 과학 이론을 다루는 듯하다가도 사랑, 질서 그리고 믿음 등 인문학적 요소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완독 했을 때 오히려 혼란이 커지는 책이었다. 그래서 그냥 이 책 자체가 장르인 책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특징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혼돈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가’ 하는 시기의 문제다. 이 세계에서 확실한 단 하나이며,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주인이다. 과학자인 나의 아버지는 일찍이 내게 ‘열역학 제2법칙’은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가르쳤다. 엔트로피는 증가하기만 할 뿐,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줄어드는 일은 없다고 말이다.
똑똑한 인간은 이 진리를 받아들인다.
똑똑한 인간은 이 진리에 맞서 싸우려 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_룰루 밀러 지음
당신은 혼돈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 어떤 마음이 드는가? 작게 보자면, 내가 물건을 정리하는 규칙이나 인간관계를 꾸려나가는 데 있어 세운 원칙이 한 번에 무너지는 상황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크게 보자면 내 삶을 지탱해 온 믿음들, 지식체계 그리고 소명 같은 것들이 한순간에 힘을 잃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이런 상황들을 상상하면 불안감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벗어나기 위해 혼돈 속에 있는 대상을 자기 나름의 틀로 다시 범주화할 것이다. 우리는 불확실성의 영역에 있는 것들을 질서와 통제의 영역으로 옮길 때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우리가 세운 틀, 기준선 그리고 체계는 결국 언젠가는 무너질 운명이다. 우리가 대하는 존재와 대상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범주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삶이 흘러가는 원리가 그렇고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이 그렇다. 알베르 카뮈의 책들에서도 나왔듯 인간은 무의미하고 나아가 부조리하기까지 한 존재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다른 존재들에 비해 특별하게 나은 점이 없으며 우주 안의 하나의 점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인간들이 세운 구분선이 얼마나 옳고 힘이 있겠는가? 이 책은 그러한 삶의 조건 하에서 인간은 어떻게 혼돈을 대하며 살아갈까에 대한 이야기다.
이러한 삶의 조건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보자면 내가 구축해 온 질서를 계속 견지하는 것과 혼돈을 받아들이는 것이 있다. 책은 이것을 긍정적 착각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로 바꾸어 표현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부분에서 아메리칸 드림이나 최근 이슈가 된 '그릿' 개념을 인용했다. 한동안 역경에 처했을 때 자신을 믿고 계속 끌고 나가는 이런 태도를 미덕으로 여겼음을 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정말 우리에게 성공을 약속할 것인가? 물론 약간의 낙관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만 과도함은 오히려 독이 된다. 자신의 상태와 자신이 맞닥뜨린 상황을 균형 잡힌 시선으로 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결국 한 순간 휩쓸릴 먼지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로빈스와 비어는 그들이 스스로 실망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즉 “단기적으로 혜택을 얻는 대신 장기적으로 비용을 치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서 기만은 나중에라도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장밋빛 렌즈의 힘에는 한계가 수반된다. 그리고 그 힘이 떨어지면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정말로 따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지음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은 이렇게 썼다. “쉽게 말해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 거창한 자기상을 확인받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비판당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며 자기를 비판한 사람을 사납게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지음
다시 질문은 이것으로 돌아온다. 앞에 나왔던 말에 따르면 인간은 보잘것없는 존재이고 삶 또한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일견 맞는 말이다. 알베르 카뮈의 책이 그랬듯, 이 책 또한 기존 우리가 믿어온 인간의 가치와 지위를 무너뜨렸다. 이 책은 진화론이라는 과학적 논리로 그 믿음 체계를 전복한다. 이로써 우리는 다시 우리는 혼돈을 맞이한다. 우리가 그렇게 가치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면 무슨 의미를 추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 삶을 이어나갈 새로운 활력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더 좋았다. 다시 인간의 가치를 재건하고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그 과정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앞에서 말했듯, 우리는 자연의 복잡성과 입체성을 온전히 인식할 수 없다. 그러니 그것을 평가하고 구분할 기준선을 찾아낸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혼돈 또한 맞서기보다 인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존재의 다양성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삶의 영역도 구분선 밖까지 넓힐 수 있다. 그런 존중, 연대, 사랑 등이 가능해질 때 우리는 그 자체로 가치가 발생한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우리는 연대하고 존중해야 한다.
다윈이 독자들에게 알려주려고 그토록 노력했던 점이다. 사다리는 없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다윈은 과학자의 입으로 외쳤다. 우리가 보는 사다리의 층들은 우리 상상의 산물이며, 진리보다는 “편리함”을 위한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_룰루 밀러 지음
천천히 그것이 초점 속으로 들어왔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나일론 실에 꿴 플라스틱 구슬들—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지음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_룰루 밀러 지음
카프카는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해”라고 말했다. 나에게는 이 책이 나의 내면을 깨뜨리는 책이었다. 불확실성과 혼돈을 견디지 못하는 태도,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도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모든 측면에서 나은 면모를 보여야 한다는 욕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흔들리는 모습까지 내가 가진 면모들을 돌아보게 됐다. 예전에 리베카 솔닛 책을 읽고 자연의 장엄함을 보면 인간이 저절로 겸손해진다 했는데 나는 과학이란 도구를 통해 이런 경험을 한 듯하다. 우주, 자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나 또한 먼지일 텐데 그렇게 오만한 태도로 일관한 것일까? 과학 공부도 조금씩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으로 나의 이런 면모들을 깨뜨렸다 하면 거짓말이고 그런 과정의 시작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신 분이라면 이 질문으로 글을 마쳐야 할 듯하다. 당신은 지금도 물고기가 존재한다 믿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