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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한호랑이 Oct 06. 2021

요가하면서 말이 더 많아지는 애는 나 하나겠지.

[점심요가일지] 요가하면서 말이 더 많아지는 애는 나 하나겠지.

지난 5월 내 생일 주간, (생일에 죽을 수 없으니)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 근처 이 요가학원에 등록했다. 5월은 불면증으로 생활의 질이 완전히 바닥을 칠 때였고, 잠을 못 자니 몸도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을 때였다.


 잠은 전혀 못 자 시체 같은 몸이었지만 내 일상은 내 사정을 봐주질 않았다. 진짜 말 그대로 매일매일 용천지랄하는 내 아들을 데리고 몸으로 놀아줘야 했고, 능력 좋은 동료들 사이에서 민폐 끼치지 않을 수준이라도 업무를 따라가야 했다. 그러려면 눈떠있어야 하는 시간엔 카페인이 다량으로 필요했다.


아침 점심 아메리카노 쪽쪽거리고 비로소 눈을 감아도 되는 시간이 오면 부엉이같이 형형한 눈을 반짝였다. 그런 밤마다 내 머릿속은 빈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박자에 맞춰서 무섭고 슬프고 억울한 생각이 쉬지 않고 떠올랐다. 그렇게 사나운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면 눈 못 뜨는 심봉사가 심청이를 손으로 찾듯 게슴츠레 머리 산발돼서 또다시 커피부터 찾았다.

불면증으로 영혼과 몸이
초토화.. 완전히 무너졌다


불면증으로 내 영혼은.. 말해 뭐해 깡그리 초토화, 완전히 무너졌다. 영혼이 붕괴되었다고 느낀 후엔 내가 그나마 과신하던 내 몸도 숨만 붙어있지 거의 죽어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목과 허리, 그리고 어깨죽지가 완전히 망가졌다는 걸 의사의 처방이 없더라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목에서 올라온 담으로 두통도 심했다. 입맛도 없고 커피만 마시니 피부도 예민해지고 변비도 심해졌다.


그리고 이번에 깨달은 것인데 나는 잠을 못 자서 몸이 안 좋으면 내 온몸의 점막이 약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단순히 코에 코딱지가 많이 생기는 건 줄 알고 장롱 속에 들어가 코에 손가락 넣는 4살 된 내 아들처럼 묘한 쾌감을 느끼며 콧속의 딱지를 신나게 해결했었다. 아니 요새 내가 왜 이렇게 코를 파지? 이놈의 집구석에 먼지가 많아서 이러나 싶었는데 그게 역시 다 코딱지 일리는 없었다. 코에 점막이 헐어 진물이 나오면서 딱지가 되는 거였고, 아물기도 전에 그걸 집요하게 가만두질 않으니 코가 다 헐고 코피가 났다. 나중에는 세수할 때 코에 비눗물이 살짝 들어가도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 되었다. 눈 건조증도 심해지고 질염도 심해지고 입안도 헐었다. 모든 점막이 헐거나 건조해지거나 염증이 생겼다. 아이구야.


나 아프고 힘들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절제가 안되고 말이 많아진다.

여하튼, 나 아프고 힘들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절제가 안되고 말이 많아지는데, 그래서 스스로 몸과 마음에 무언가 솔루션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집 근처 요가학원을 찾아봤다. 이렇게 죽어있는 것과 비슷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내 생일이 있는 5월에 이렇게 죽어가고 싶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을 서치 해봤다. 


춘쓰살롱. 선생님 성함이 춘희인가 보다. 심은하가 '춘희' 나오던 미술관  동물원 영화의 따뜻한 색감처럼 요가학원은 정말이지 내가 너무도 원하는 그런 밝고 단정한, 싱그러운 공간이었다. 이런 공간에서 조금씩  몸을 움직이고 편안히 숨만 쉬고 누워있어도 정말이지 비타민 수액을 맞는 효과일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마 이름이 '춘희' 선생님도 매력적이었다.  피부에 목소리와 말투가 차분하고도 단단했다. 뭐랄까. 조선 백자 같은 느낌?  어쩜 저리 깨끗하고 단정하게 생겼을까. 저런 표정과 목소리는 내공이 쌓여야 되는 거겠지. 요가를 얼마나 하신 걸까.  전에는  하시던 분이실까. 피부도 눈빛도 예쁘다. 공간을 이렇게 꾸민  보면 부지런하고 센스도 좋으가 보다. 부럽다. 좋겠다.  시작되는 멋진 여자 덕질.


오늘은 선생님이 얼마나 멋있을려나
구경가듯 시작한 요가

화요일 목요일 12시 일주일 2번 점심 수련을 시작하고 이제 4개월이 넘어간다. 내가 운동을 꾸준히 한 적이 없는데 요가 수련은 항상 좋은 마음으로 간다. 가는 것 자체는 너무 좋다. 아마도 그 공간과 선생님을 좋아하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나는 수업 내내 집중을 안 하고 자세에 최선을 안하고 있었나 보다. 사람이 일부러라도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발전이 없다. 안 되는 자세는 여전히 안되고, 자세 이름 들어도 들어도 잘 모르겠고, 지적받는 부분은 계속 지적받았다. 그리고 수련 내내 번잡한 생각들이 꺼지질 않는다. 계속 선생님 요가복 정보가 궁금하고, 운동할 때 무슨 브라 쓰는지도 궁금하고 팬티 자국 없는 속옷 정보를 물어보면 실례일까, 끝나고 점심 뭐 먹을지가 고민되고, 오전 회의에서 말실수한 것, 난 계속 밥벌이를 하면서 이런 요가 수련비를 내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도 사람인데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발전이 없다


"학교 의자 닦아주러 간다." 공부에 뜻이 없던 내 남동생을 보며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다.  기본적인 체력도 좋고 성실한 성격이라 매일 아침 남들보다 일찍 등교하곤 했는데 남동생은  공부엔 뜻이 없었다. 동생의 이런 모습을 엄마가 한심해하면서 하던 말이 계속 생각난다. 뭘 배워왔냐고 물으면 배시시 웃으며 말이 없어지던 내 동생. 공부는 아니지만 다른 반 선생님, 교실 수위 아저씨 일에 참견 다 하고 매일 아침 교실 문 따는 것에 의미 두던 내 동생.  


요새 요가에 대해 내가 그렇다. 열심히 다니고는 있지만 배움에는 그다지 성실하지 못해서 정작 이 요가 동작들이 몸에 흡수는 안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이런 상황에 대해 나는 괜찮다. 매사에 가성비 따지는 인간이 4-5개월 동안 발전이 없다는 이 상황에 대해 크게 문제시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나도 내심 놀랐다. 내가 내 몸을 위해서 시간과 돈을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좀 도취되었고, 어디 가서 "저 요가해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좋은 것이다.  어쩌면 나는 요가를 통해 몸 건강을 챙기겠다는 것보다, 요가라는 새로운 주제로 원래도 새로운 수다거리, 공상 거리가 생겨서 신났을 수도 있다.

-제가 요가를 왜 했냐면요

-얼마나 힘들었냐면요.

-여기가 왜 좋냐면요.

-여기 선생님은 어떤 분이냐면요

-공간은 이렇고요

-다른 수련생들은 이렇고요. 등등


요가 수련하면 다들 차분해지고 말도 줄던데 나는 아니다. 아봉이 안된다. (대학교 때는 별명이 아봉(아가리 봉)이었다. 학교 선배가 날씬하고 긴 머리였을 당시 내 뒷모습은 훌륭하다고 근데 내가 뒤돌아 입 열면 깬다고 제발 아가리 봉하고 있으라고 애정 어리게 지어준 별명이었다.) 요가하면서  말 많아지고  글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쓰는 인간은 나 하나겠지. 여전히 불면증으로 힘들어하고 체력이 안 올라오는데도 요가하고 있다고 나불대는 나란 인간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또 어느 날 요가 수련을 마무리 하는데, 선생님이 좋은 제안을 해주셨다. 더 내 몸과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수련을 위해서 요가 일지를 써보라고 하셨다. 쓰면서 발견하는 부분이 많을 거라고.

요가야. 내 입 좀 부탁해.

안 그래도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요가하면서 말 많고 글 많은 부끄러워서 참고 있었는데 오호 잘됐다. 이건 쓰라고 해서 쓰는 거다. 내 의지만 담긴 것은 아니니 부끄러움이 조금 덜어졌다.


그래서! 오늘부터 요가를 하고 있긴 하지만 전혀 안 늘고 있는 자가 요가로 입을 털어보려 한다. 선생님이 말씀 주신 요가 일기는 이런 게 아니겠지만 요가라는 주제로 또 한 번 나불대봐야겠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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