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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한호랑이 Sep 15. 2021

[작사의 시대 9기] 당신의 색은?

9/1)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가요? 그 색과 관련된 추억을 말해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색은 베이비 핑크색입니다. 한없이 여성스럽고 순수하면서도 화사한 색이라서 좋아합니다. 근데 저는 베이비 핑크 색의 그 어떤 아이템도 없습니다. 어울리지 않다는 걸 알아서죠. 전 피부도 까만 편이고 행동도 큰 선머슴 스타일이라 그런 색을 때 안 묻히고 감당할 수 있는 깔끔한 사람이 아닙니다. 베이비 핑크는 순수하게 동경만 해왔던 색입니다. 


근데, 지금의 제 남편과 두 번째 만남 때, 이 남자가 이 색 옷을 입고 나왔어요. 첫 만남은 컴컴한 이자까야에서 좌식 테이블에서  만나서 통통한 줄 몰랐는데 햇살 밝은 날 베이비 핑크 폴로티에 페도라를 쓴 이 남자가 너무 구렸어요!! 아기 돼지 베이브 같더라고요. 그리고 이 남자가 급하게 멋 낸다고 미처 그런 건 신경 못 썼는던건지 뭔지 맙소사!  베이비 핑크 티셔츠 위로 너무 심하게 유두가 튀어나온 거예요. 베이비 핑크 셔츠 위에 저 선정적인 두 개 점이라니.. 저도 참아야 했는데 성깔 급한 저도 못 참고, 이 남자 근처에 다가가가는 것도 힘들어하며 이거 너무 보기 흉하다고 말해버렸어요. 


말하는 찰나, 저도 후회했어요. 아니 싫으면 싫은 거지 내 주제에 왜 주제넘은 말로 사람을 무안케 했을까 하고요. 이 사람은 나름 신나서 멋 내고 온 건데 내가 뭐라고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지적질인가. 내 무례함을 어떻게 변명하고 사과하지, 근데 진짜 저건 못 봐주겠는데 어떡하지 하고 혼돈의 카오스 고민하고 있는데 이 남자가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닮아서 그래요.
이해하세요.


상상도 못 한 그 능글맞은 말에 전 웃음이 터졌고 순간 머리에 높새바람이 불듯 시원해졌어요. 엄마 닮아서 유두가 큰 걸 어떡하겠냐고, 계속 보면 부끄러워 더 커지니 이쪽 보지 말라고 사람 좋은 웃음으로 농을 던지는 (아기) 돼지 같은 남자. 방금 전까지 너무 구려서 어떻게 밥 먹기 전에 헤어지지 고민했는데 그 순간 이 남자한테 반합니다. 나보다 큰 사람이다, 이 남자는 나를 받아줄 물침대다. 뾰족한 내가 그 어떤 공격으로 지랄해도 나를 안아서 압도할 남자다. 사나운 공격을 웃음으로 툭 돌려 막는 태극권 고수 같은 남자..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그 순간, 경험도 없고 안목도 없던 저는 반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베이비 핑크 하면 그날의 제 남편이 생각납니다. 이전에는 이 색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색이라 생각되었는데 이젠 이 색은 저에게 능글맞고 유쾌하고 야하고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면 또 저랑 꽤 어울리는 색 같아요. 


+ 그 티셔츠와 페도라는 시댁에서 불 때울 때 태웠어요. 추억은 추억이고 안 되는 건 안되는 거죠. 꼴도 보기 싫어요. 유두 큰 거 농담도 이젠 더러워요. 미친놈같음 진짜 그 소리 또 할 때.


+ 근데 이 에피소드를 나중에 어떻게 노래에 더하죠?


그때 내 남편의 차림은 세르지오 멘데스 내한했을 때 차림 그대로. 공연 기획사 다녔던 오빠가 공연 같이한 세르지오를 너무 좋아해서 저 패션에 감명받아 저렇게 똑같이 항상 입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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