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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한호랑이 Sep 15. 2021

[작사의 시대 9기] 너에게 편지를 써

9/8) 내가 좋아하는 색에게 편지를 써보세요.

안녕 베이비 핑크야. 안녕 베핑!


내가 너한테  편지를 쓸 만큼 우리가 친하게 될지, 우리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생길 수 있을지 꿈에도 몰랐어.

항상 궁금하고 부러워하던 너였어. 난 너랑 안 어울린다고 너에 비해 난 못생기고 우악스럽다고, 널 좋아하는 만큼 나를 미워하게 되는 것 같아서 일부러 너와 거리를 두며 무관심하려 애쓰며 살았던 것 같아.


아기 돼지 같은 남편을 만나 너를 좀 더 내 편으로, 내 마음대로 편하게 생각하게 되었어. 너무나도 너 같은 남편을 만나고 그 사람이랑 어울려 살고, 때론 그 사람보다 낫다 싶은 우월감도 느끼고 또 핑키한 남편을 한심해할 때도 생기면서 널 조금은 편하고 만만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 나 웃기지? 동경하던 너의 별로인 모습을 발견하고 비로소 반가워하는 것 말이야.


하지만 아직도 널 내 위에 바로 덧대지는 못하겠어. 그래도 내가 이놈의 아들 다 키우고 좀 여유가 생기면 해보고 싶은 게 있어.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넌 항상 등장해.


난 말이야. 너의 그 고운 색을 끼얹은 캐시미어 니트에 뚝 떨어지는 아이보리 슬랙스를 입고 백화점도 다니고 공연도 다니고 비싼 식당에서 가격표도 안 보고 음식도 시켜보고 싶어. 일생 고생 없이, 고민 없이 곱게 산 부잣집 할머니처럼 말이야.


그리고 침대 시트도 실크나 사틴으로 부들부들거리고 살랑살랑거려서 조금은 야시시한 그런 감촉의 너의 색으로 바꿔볼 거야. 늦잠 자면서 한낮까지 침대에서 뒹구는 주말을 보내고 싶어. 아무 급한 일 없고 주어진 과제는 없는, 해야 할 일이라곤 잘 먹고 잘 쉬고 예쁘게 웃기만 하면 되는 백치미 사모님처럼 말이야.


웃긴다. 공주 같은 유년시절을 희망했다가 그게 안돼서 한 맺힌 할머니 꼴이 될 것 같다. 내 이 꼴을 내 남편과 아들이 가만 볼 리 없겠지.


여하튼 넌 나의 부끄럽고 민망하기도 한 솔직한 꿈이고 욕망이야. 난 알고 있어. 지금까지 또 앞으로 한동안 너와 난 계속 멀어져 있을 거야. 널 나 말고 다른 누군가로부터 발견하고 대리만족 정도나 느끼겠지.


하지만 그래도 날 완전히 놓지는 말고 나 좀 기다려줘. 내 일생 한 번은 핑크빛 부농부농, 사랑만 따박따박 받아도 충분하고 대견한 그런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그때 날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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