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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피지기 Feb 07. 2023

자녀를 채무자로 만드는 나르시시스트 부모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왜 자녀를 채무자로 만드는가?

 '자식은 전생에 빚쟁이(채권자)였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부모가 자식을 키우려면 자기가 가진 것을 많이 내줘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약간 다르다. 겉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속으로는 '내가 너(자녀)를 이만큼 고생하며 키웠으니 너도 당연히 나중에는 나에게 보답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꼭 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정말 돈일 수도 있고, 관심일 수도 있고 노동력일 수도 있고, 권력이나 명예일 수도 있고 전부 다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정당한 '기브 앤 테이크'같으나, 엄밀히 말하면 자녀가 부모에게 낳아달라고 한 것도 아니니 내가 주었다고 해서 반드시 받아야 하는 관계도 아니다. 오죽하면 요즘에는 '낳음 당했다.'라는 말도 나올까.


나르시시스트라고 해서 무조건 자녀를 학대하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녀에게 지원을 해주고 공을 들이는 나르시시스트 부모도 있다. 그렇지만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지원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반드시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의도가 깔려있고, 그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쩔 줄 몰라한다. 자녀를 압박하고 잔소리를 해서라도 반드시 자신이 기대한 바를 자녀가 달성해 줘야 한다.


한마디로, 자녀의 성장을 위한 지원이 아니라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원하는 것을 뽑아내기 위한 '투자'의 개념으로 보면 된다. 그런데 그 '투자'는 자녀가 원해서 받는 투자가 아닌 경우가 더 많고,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원하는 것에 '묻지 마 투자'를 한다. 투자해 달라고 사정한 것도 아닌데 부모 마음대로 투자를 해놓고 '내가 투자를 했으니 당연히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내놔야지!'라는 마음으로 닦달한다.


나의 경우, 엄마는 내가 시켜달라고 하지도 않은 과외와 학원에 등록해 놓고 '오늘부터는 여기에 가야 한다.'라고 일방통보하셨다. 나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었고 나의 일이었지만 엄마에게 있어서 나는 의논의 대상도 아니었다. 내가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5살부터 각종 학습지를 시작으로 바이올린, 피아노, 미술, 서예, 컴퓨터, 수영, 레크리에이션 스포츠활동, 교회, 웅변, 영어, 한자, 독서논술 등을 이미 초등 졸업 전에 다 배웠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국영수과 종합, 단과 학원, 개인과외 등을 받았다. 지금 내 나이가 40대 초반인데 나이 치고는 일찍부터 사교육을 많이 받은 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엄마가 교육열이 높아서 그렇게 다양한 것을 어려서부터 배웠으니 너무 부럽다, '라고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렇게 다양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너무나 성격이 내성적이었다. 자신감은 지하를 뚫었다. 왜 그럴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에게 채권자 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다양한 것을 가르쳐도 교육은 조급하면 망한다. 그런데 느긋한 채권자가 흔치 않다. 채권자는 내가 꿔준 돈을 못 받을까 전전긍긍다. 특히 만기가 가까워지면 더 그렇다.


반면 채무자는 어떨까? 채무자 중에 마음이 편안하고 느긋하며 자신감 넘치고 자존감 높은 사람이 흔할까? 아마 드물 것이다. 빚쟁이한테 쫓기는 채무자는 마음이 불안하고, 빚을 못 갚을까 봐 두렵다.

 

빚이 많은 사람이 부러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아마 빚을 내서 갖춰진 나의 외적인 모습만 보고 '아, 부럽다 저 사람. 부모 잘 만났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내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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