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나 축구나 올림픽 경기를 할 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홈에서 경기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것을 홈 어드벤티지(home advatage)라고 한다.
홈구장에서 하는 경기는 분명히 원정경기에 비해 이점이 있다. 익숙한 환경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모르는 정보를 내가 알고 있을 수 있고, 익숙함에서 오는 정서적 편안함도 얻을 수 있다. 또한 든든한 다수의 팬들의 응원을 받을 수 있어 정서적으로 큰 힘이 된다.
그런데 만약에 홈구장에서 응원을 받는 게 아니라 홈팬들이 '오늘 경기 지기만 해봐. 내가 똑똑히 지켜 볼거야.'라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심지어는 자기 팀 선수를 비난하고 야유를 보내고 욕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아마 선수는 홈구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서적인 이점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홈팬들이 진짜 내 팬이 맞나 의심스러울 것이고 심리적으로 고립되고 외로울 것이다.
오늘 점심을 먹고 밀린 빨래를 개면서 자주 보는 김창옥 교수님의 영상을 보다가 퍼뜩 든 생각이다.
영상에서 물론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얘기는 아니었는데 홈구장에서 비난받는 야구선수 이야기를 예시로 드는 부분에서 나는 또 이렇게 나르시시스트와 연관지어 딴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홈구장에서 비난받는 야구선수가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르겠구나!'하고 말이다.
실제로 있었던 야구선수에 대한 일화였는데 재일 한국인이었던 '장훈'이라는 선수의 실화라고 한다.
장훈 선수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재일한국인이었다. 뛰어난 야구실력 덕분에 일본으로의 귀화 제의를 받았는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자 홈팬들도 그가 타석에 섰을때 '조센징'이라며 비난하기 시작했는데 잠잠해지자 그가 관중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맞습니다.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이 말을 남기고 장훈 선수는 장외홈런을 날렸다. 인생에서 홈어드벤티지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더라도 받아들이고 나의 갈 길을 가라. 홈어드벤티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것이 더 훌륭하다는 내용의 강연이었던 것 같은데 나르시시스트쪽으로 생각이 빠지고 아이들 하원시간이 되면서 강연을 다 듣지 못했다.
여기서 홈구장, 구단은 그 사람이 자라온 '원가정'을 말한다. 원가정은 한 사람에게 든든한 지지와 격려, 정서적 안정을 주는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데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있는 가정은 그렇지 않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를 둔 사람들은 나의 원가정이 어떤 구단이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 홈팬들이(가족구성원들) 악성 안티팬처럼 욕을하고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야유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침묵을 지키는 관중이었다. 침묵하는 이유는 경기의 결과에 따라 그들이 취해야할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결과가 좋고 이길 것 같으면 응원(응원이라기보다는 잠깐 기뻐하고 다음 경기에는 더 잘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지면 투덜거리고 비난하면서 떠난다. 극성 안티팬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양반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겁이 많았던 나는 그 침묵도 무서웠다.
홈관중이 안티팬처럼 행동한다면 베테랑 선수라고 할지라도 당황스러울 것이다. 결코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르시시스트의 자녀는 이렇게 평생을 살아왔다.
홈팬한테까지 욕을 먹을 바에야 내 소신대로 행동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내가 속한 구단이 어떤 구단인지 생각해보자. 내가 속한 구단이 홈관중들 뿐 아니라 감독, 코치, 동료선수 할 것 없이 모두 서로를 헐뜯고 이기면 자기의 공이고 지면 다른 사람 탓을 하는 곳이라면 내가 떠날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애석하게도 나는 머리로는 떠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최근이고 육아도움을 받고 있는 처지라 아직 정리를 못해 부모님 곁에 남아있다. 그래도 나의 부모님이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만으로도 심리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나를 키워주신 분들인데...
아마 이 생각이 내 원가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도 외적으로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 먹을 것을 챙겨주고 옷을 빨아주고 집이 더러우면 치워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다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잘 생각해보면 굳이 꼭 내 부모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이 일들이 쉽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정서적인 부분을 서포트해줄 수 없다.
부모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내 부모가 어떤 것은 해주셨지만 어떤 것은 해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감사할 부분은 감사하며 부모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 더 나아가서는 나의 정서적 영역을 부모가 침범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는 오롯이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