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김창옥 교수님의 강의를 유튜브로 보고 있는데 거기에서 '억울한 이타주의자가 되지 말고 건강한 이기주의자가 돼라'는 말이 나왔다. 그 강의를 듣다가 둘 중 어떤 사람이 나르시시스트에 더 가까울까 하는 생각에 골똘히 빠져서 글로 남겨 본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지만 만약에 부모를 고를 수 있다면 건강한 이기주의자와 억울한 이타주의자 중에 어떤 사람이 나의 부모였으면 좋겠는가?
아마 거의 대부분이 '건강한 이기주의자'라고 답할 것이다.
건강한 이기주의자와 억울한 이타주의자 중에 누가 더 나르시시스트에 가까울까?
굳이 꼽자면 '억울한 이타주의자'가 나르시시스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나르시시스트가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이 불행해지기 위해서이다. 나만 빠져 죽기는 억울한 물귀신과 비슷한 심리상태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는 것이 나르시시스트의 최고의 행복(행복이라기보다는 쾌락에 가깝다.)이다.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처음부터 다 악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희생자였을 수도 있다. 계속 희생하고 타인을 위한 이타심을 한없이 발휘하다가 고장이 난다.
예전에 어린이집에 둥이들을 데려다주는데 하필 그날 짐이 많았다. 둥이들 가방 두 개에 이불이 2개 들어있는 이불가방에 기저귀까지 있었다. 원장님이 짐을 받아주셨는데 너무 많아서 계속 드려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원장님이 다 달라고 하셔서 넘겨드렸다가 결국 중심을 잃고 넘어지셨다. (물론 원장님이 나르시시스트라는 말은 아니고 쉬운 설명을 위해 예로 든 상황일 뿐이다.)
아마 나르시시스트가 이런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그들보다 강한 누군가의 짐을 자꾸 떠맡아야 했다. 그들은 한계치를 넘은 짐까지 떠맡다가 넘어지게 됐다. 그런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서있거나 걸어 다니고 뛰어다기까지 하니 질투도 나고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옆에 서있는 사람을 자꾸 걸고 넘어뜨리거나 짐을 얹어서 자기처럼 넘어뜨리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 때문에 넘어지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재미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넘어져있으면 내가 얼마나 희생하다가 이렇게 넘어졌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호소할 수도 있고 동정표를 얻어 도움이나 관심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면 나만 넘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도 든다.
이제는 넘어져 있는 상황이 더 익숙해서 일어날 생각도 못하므로 일어날 수 없다.떠맡을 짐이 없어져도 스스로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이 넘어지면서 다른 사람들까지 같이 다쳐도 그들은 자신이 넘어진 것이 가장 억울하고, 다른 사람들의 상황까지 걱정할 겨를이 없기 때문에 사과하지 않는다.
나를 넘어뜨리려는 사람이 있다면 도망을 가고 멀어지는 게 최선이다. 떠나기 어렵다면 적어도 그 사람의 손이 닿기 어려운 곳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자신의 짐을 계속 떠맡기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넘어지기 전에 내려놓아야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의 행복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이 행복해질 생각도 없다. 참된 '행복'이라는 것의 의미 자체를 모른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능력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