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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피지기 Jul 23. 2023

학군지 출신 교사가 학군지에서 근무해 보니...(1)

학군지에서 보낸 학창시절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1994년 말에 내가 살던 광역시에서 최고의 학군지로 이사를 갔다. 그곳은 강남의 대치동만은 아니지만 그 도시에서는 최고의 학군지이다. 지금까지도 그렇다고 한다.

이제까지 살아보지 못한 큰 평수의 아파트에서 처음으로 내 방이라는 것을 갖게 됐다. 남동생의 방보다 내 방이 간 더 작긴 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내 방이 생겼다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았던 것은 피아노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아빠가 승진하면서 차도 고급세단으로 바뀌었고 컴퓨터도 생겼고 에어컨도 생겼지만 나는 피아노가 생겼다는 게 가장 좋았다. 우리 가족들은 아무도 피아노를 칠 줄 몰랐기 때문에 피아노는 내가 독점할 수 있었다. 그리고 tv, 컴퓨터를 할 땐 엄마가 굉장히 예민하셨는데 피아노는 아무리 쳐도 뭐라 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피아노 실력은 많이 늘었는데 철이 없어서 아랫집 분들이 고생하시는 줄은 몰랐다.


이사 가서 그렇게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안 좋았던 것들도 있었다. 원래도 엄마는 내 성적에 무척 예민하셨는데 여기에서는 더 좋은 등수를 내기가 어려워졌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선 곳이라 학교도 다 큰 학교였고, 같은 반 친구들의 부모님은 의사도 있었고 최소 대기업이나 교사(지금의 교사보다는 예전 교사분들이 오히려 더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것 같다.)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 보니 다들 자녀 성적에 관심이 높았고 경쟁이 치열했다.

학군지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어이가 없었던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이었다.

첫 중간고사 일정이 갑자기 일주일 뒤로 미뤄졌다. 이유는 원래 중간고사 일정이 어린이날 다음 날이었는데 '어린이날 다음 날 시험을 보면 아이들이 어린이날을 즐길 수 있겠냐!'는 민원 때문이었다. 

학생인 내가 들어도 좀 황당하긴 했지만(중학생이 어린이인가?;;) 나도 중학교는 처음이라 원래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 민원의 최고 수혜자는 내가 되었다. 나는 성격이 극단적인 p로(INFP인데 iiiiiiiiiiiinffffffppppppppp) 완전 벼락치기 스타일인데 시험을 코앞에 두고 일정이 미뤄지는 바람에 일주일을 다시 미친 듯이 벼락치기를 했더니 중학교 첫 시험에서 전교 5등이라는(당시 내 입장에서는) 기록적인 성적을 냈다.

바로 전인 초등학교 6학년 성적은 반에서 10등 안에 겨우 드는 성적이었는데 전교 5등이면 이건 엄청난 거였다. 원래 전학오기 전에는 반에서 1,2등 했었는데 학군지로 전학을 오면서 갑자기 일시적으로 성적이 떨어져서 5학년 말부터 6학년까지는 인생에서 최고로 성적이 안 좋았었다. 그땐 엄마가 시험만 끝나면 당장이라도 지구가 망할 것처럼 한숨을 땅이 꺼져라 푹푹 쉬셨다.

그런데 전교 5등을 하면서부터 나는 지옥을 맛봤다. 엄마는 특목고를 목표로 하는 아이들 팀에 나를 넣어서 고액 과외를 시키셨다. 이제까지 내가 공부했던 것들과 수준이 너무 달랐던 데다가 숙제가 미친 듯이 많았다. 덕분에 나는 쉬는 시간도 없이 숙제를 하기는 했는데 그런데도 숙제가 밀리는 일들이 많아졌고, 다음 해에는  급기야 울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공부 때문에 힘들기는 했지만, 학교에서 5분 거리에 백화점이 있어서 나는 백화점 지하의 대형 음반매장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었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를 취미 하면서 클래식과 더욱 친밀해졌다. 나중에는 집 근처에 음악회장과 미술관도 생겼다. 문화생활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환경이었다.

중고등학교 선생님들도 대부분 좋으셨고 잘 가르쳐주셨다. 친구들도 크게 힘들거나 모난 부분이 없었던 것 같고 가정환경이 크게 어려운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대형 학원가도 가까이에 있어서 실력이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학군지에서 보낸 내 학창 시절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교사가 되어서 첫 선택을 학군지에 있는 학교로 골랐다. 그래서 오롯이 나의 선택에 의해, 내가 선택한 첫 근무지는 학군지에 있는 학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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