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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Mar 11. 2023

<이런 날 그림책> 외로움을 가해하는 날

 『있잖아, 누구씨』 X  『나는 보이지 않아요』

<이런 날 그림책>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에 마음을 기대 울고 웃었던 날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에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시는 살아가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며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이며 본질이라 말한다.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말고,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으라며 냉정하게 말하다가도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가 너를 보고 있다며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하느님도, 새들도, 산 그림자도, 종소리도 외롭다는 시를 읽으면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낀다. 정리하자면 <수선화에게>는  혼자라 느끼는 이들을 위로하면서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이며 삶의 본질이라 말하고 있다.


  시를 몇 번이나 곱씹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 아니라 '외롭게 하는 사람'이 있기에 외로워지는 게 아닐까, 외로움은 인간이기에 당연히 갖는 감정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가해지는 상처가 아닐까,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나를 지지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외로움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기 전에 누군가를 외롭게 하지는 않는지 돌아보며 서로가 서로에게 온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도 채울 수 없는 결핍이라 해도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만 있다면 처절한 고통까지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말이다.  


  그림책 『있잖아, 누구씨』와 『나는 보이지 않아요』를 읽으면 나를 외롭게 했던 사람들과 내가 외롭게 만들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에 대한 미움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외로우니까 사람'이 아니라 '외롭게 하니까 사람'은 아닌지, 그게 인간의 본질은 아닌지, 잠깐 회의가 든다.


   

 


  일반적인 그림책이 40~50쪽 정도라면 『있잖아, 누구씨』는 136쪽이다. 두께도, 무게도 꽤 된다. 내용도 무겁고, 묵직하다. 표지 그림은 홀로 서 있는 고양이와 그의 그림자가 전부다. 다문 입술, 동그랗게 뜬 눈, 세로로 긴 동공을 보니 슬픈 것도 같고, 두려운 것도 같다. 고양이 앞에 드리운 그림자는 뒤표지로 이어진다. 하얀 여백에 자신의 그림자와만 연결된 고양이가 누구씨를 부르는 건지, 이 고양이를 누구씨라고 부르는 건지 알 수 없다. 표지를 넘기니 회색 면지에 고양이 사진 한 장이 있다.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무표정한 얼굴에 어딘가 얼어붙은 자세가 앞표지의 고양이와 똑같다. 사진 속 고양이 뒤로 알 수 없는 형체의 무늬가 있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어떤 의미가 있는 듯하다. 시계, 목걸이 등이 담긴 상자가 그려진 속표지를 지나니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왼쪽 장은 온통 백지이다. 오른쪽 장의 그림도 불필요한 배경을 생략하고 여백을 두었다. 그래서 벤치에 앉아 아이와 눈을 맞추며 카메라를 가리키는 엄마, 엄마의 무릎 위에서 입술을 벌리고 웃는 아이, 그 뒤에서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 아빠에게 집중할 수 있다. 다음 장은 앞 장과는 다른 분위기다. 9컷의 그림은 그동안 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앞 장에서 찍은 가족사진, 약봉지, 병원에 입원한 엄마, 현관에 놓인 아이와 아빠의 신발, 엄마의 영정 사진, 보석 상자, 엄청난 양의 소주병, 개수대에 쌓인 그릇들, 깨진 액자 속 사진 아래로 '괜찮아. 혼자여도 말이지.'라는 문장이 아프게 다가온다.  


  더는 다정한 아빠는 없다. 술에 취해 난폭한 아빠만 있을 뿐이다. 어린 '나'는 어두운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견뎌야만 한다. 집안일은 어린 '나'의 몫이다. 개수대에 키가 닿지 않아 의자에 올라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술병을 정리한다.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자신을 다독이며 아이는 함께 보단 혼자가 좋다고 말한다. 글은 그렇게 쓰고 있지만 그림은 그렇지 않다. 그림에서 아이는 혼자이기에 슬프고, 외롭다. 무리 속에 들어가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두렵기도 하다. 그러다 자신과 똑 닮은 녀석을 발견한다. 방 벽지에 생긴 얼룩이다. 면지에 있는 사진 속의 그 무늬다. 아이는 얼룩에게 '누구씨'라는 이름을 붙인다. 아이는 사실은 자신이 수다쟁이라며 누구씨에게 하고 싶은 말을 쏟는다. '나'는 누구씨와 책을 읽고, 엄마의 보석상자에 있는 액세서리를 하면서 함께 놀고, 누구씨에게 가족사진을 보여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나'는 누구씨가 너무 좋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씨를 믿지 않고,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운다. 그들에게 누구씨는 보이지 않기에 아무도 아이의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이에게 전보다 더 크게 화를 내고,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수군댄다.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이던 아이는 이제 괜찮지 않다. 자신이 남들과 다른 것 같아 무섭다. 아이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과 같아지고 싶어 누구씨를 버린다.


  이제 아이는 성인이 됐다. 생계를 위해 이력서를 쓰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토익 공부를 하고, 홀로 컵라면을 먹는다. 글은 또다시 '괜찮아. 혼자여도 말이지'로 시작해서 '나랑 똑 닮은 녀석을 발견했어'로 이어진다. 어린 시절과 같은 문장을 되풀이하면서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외로움은 계속되고,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때처럼 사람들은 우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이상하다고 여기고, '나'의 말을 믿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언제 화를 내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주인공은 지금도 함께보다는 혼자가 좋다. 글은 괜찮다면서 애써 자신을 다독이고 있는데, 그림은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홀로 있어 슬프고, 외롭고, 주눅이 든다. 그림은 여기에서 더 확장해 주인공뿐 아니라 모두가 혼자임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시선을 아래로 하고 각자 어디론가 걸어간다. 길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휴대폰만 쳐다본다. 같은 건물에 살고 있지만 서로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그들은 '나'에게 화를 낼 때만 뭉치는 것 같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이던 '나'는 이제 괜찮지 않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게,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게 너무 무섭다. 어둡고 좁은 원룸에서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생각한다. 그의 머릿속에 지난날이 스쳐간다. '나'는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으로 향한다. 어린 시절에 버렸던 누구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꽃들 사이에 한 소녀가 서 있다. 표지의 어두운 배경은 그 안에 담긴 꽃, 소녀, 행성 등을 돋보이게 한다. 아이의 커다란 눈에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담겨있다. 눈만 보면 장난기와 호기심이 가득한데 굳게 다문 입술까지 보면 슬픔을 참는 것처럼 보인다. 두 손을 등 뒤에 감춘 모습을 보니 경계를 하는 듯하다. 마음을 열지 못하거나, 마음을 닫은 계기가 있나 보다. 앞표지의 소녀와는 달리 뒤표지의 소녀는 무척 편안하고 자유롭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같은 아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다리를 벌리고 팔베개를 한 소녀와 약간 경직된 자세로 서 있는 소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나는 보이지 않아요』는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게 된 사하르의 이야기다. 표지 속 전혀 다른 느낌의 두 소녀가 동일인물인 사하르다. 사하르는 파도타기를 좋아하고, 우표 모이기를 좋아하고, 행성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즐기고, 우표에 새겨진 글자 속 의미를 찾고, 밤하늘 별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채우는 소녀인데 그것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하르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친구들이 사하르를 따돌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희미해졌다. 처음에는 소리도 지르고, 몸부림도 쳤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하르도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지 못하니 사탕을 훔쳐 먹을 수 있고, 영화관에 몰래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겉모습처럼 속마음도 텅 빌 것 같아 겁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시리라는 이름의 아이가 사하르를 알아보고, 관심을 갖는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순간부터 사하르는 희미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된다. 자신을 봐달라고 몸부림치던 사하르도 마음의 문을 닫는다. 친구의 사탕을 훔쳐 먹을 수 있고, 영화관에 몰래 들어갈 수도 있으니 나쁘지만은 않다고 한다. 『있잖아, 누구씨』의 '나'처럼 사하르도 괜찮은 척하지만 기체로 만들어진 해왕성처럼 될까 봐 두렵다. 사하르의 마음을 담은 그림을 보면 꽤 을씨년스럽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어슴푸레한 놀이터, 검고 푸른 바다, 눈이 계속 내리는 밤은 어둡고 적막하다. 잔인하게도 사하르는 작은 배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다른 돛단배에 있는 부엉이는 여유롭게 낚시질을 하고 있다. 거북과 돌고래도 사하르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웃으면서 헤엄을 친다. 눈이 내리는 깜깜한 밤, 등을 보이며 저만치 걷고 있는 사람과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있는 사하르를 보고 있으니 무심함이 얼마나 잔혹한지 새삼 알겠다. 


  사하르가 투명해지는 순간에도 그대로의 색을 간직한 게 있다. 사하르의 몸도, 옷도, 머리카락도 제 빛을 잃었지만 사하르가 신고 있는 부츠의 연두색은 내내 선명하다. 절대로 텅 비어 버리고 싶지 않은 사하르의 간절함이면서,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놓을 수 없는 사하르의 안간힘은 아닌지 생각한다. 사하르는 마지막 희망을 담아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봐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사하르가 힘겨워할 때마다 옆을 지키고 있는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매 장면마다 사하르와 함께 있다. 마치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에 나오는 가슴검은도요새와 같다. 사하르가 분노할 때도, 사하르가 슬퍼할 때도, 사하르와 시리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에도 고양이는 그 곁을 지키며 함께 아파하고, 웃어준다.  

 


  


  그렇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다. 『있잖아, 누구씨』의 '나'가 자신의 속마음을 누구씨에게 털어놓는다고 해서, 『나는 보이지 않아요』의 사하르 옆에 고양이가 있다고 해서 혼자라는 슬픔과 두려움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자신과 같은 종의 친구가 필요하고,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매일매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가 나를 지켜본다 한들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없고, 상대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있잖아, 누구씨』의 '나'가 다시 누구씨를 찾는 것도, 누구씨를 만나러 오는 동안은 괜찮다고 하는 것도 너무 아픈 일이다. 벽지에 생긴 얼룩에게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황이 또다시 반복된다는 게 참 가혹하다. 사하르는 시리를 만나 점점 뚜렷해졌는데 『있잖아, 누구씨』의 '나'는 답이 없는 벽에 기대 자신을 더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 '나'가 왜 우는지 알려하지 않은 채 비난하고, 자신들과 다르면 이상하다 치부하고, 주인공을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우는 무리 속에서 '나'는 점점 더 고립될 수밖에 없다. 책등과 이어지는 오른쪽은 직각이지만 책장을 넘기는 왼쪽은 둥글게 처리한 『나는 보이지 않아요』의 표지를 보면서 뾰족하게 솟은 아픔이 누군가와 어울리면서 둥글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있잖아, 누구씨』의 '나'에게도 시리 같은 친구가 나타나길, 이 땅의 외로운 이에게도 그러하길 바란다.






  글을 쓰는 내내 당신을 생각했다. 타인의 아픔에 관대하지 못했던 시절, 나는 당신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의 전화를 무시했고, 함께 있자는 애원에 가까웠던 부탁을 매몰차게 걷어찼다. '도를 믿습니까'라는 이들을 따라가서 절을 하고 돈까지 내고 왔다는 당신에게 화를 냈던 날, 외로워서 그랬다는 주눅 든 목소리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너무 외로웠는데 그들이 말을 걸어줘서 고마웠다는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당신이 짊어지고 있는 외로움의 무게를 알려하지 않았고, 그 무게를 같이 짊어지자고 할까 봐 차갑게 굴었던 날이 너무 미안했다.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누군가를 볼 때마다 '외로워서 그렇다'며 관대하게 넘어가던 당신의 모습이 아프게 다가왔다. 동시에 공감할 수 없는 외로움에 갑갑했고,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당신이 답답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외로운 이의 손을 덥석 잡아주지 못한다. 그래서 여전히 누군가에게 외로움을 가해하는 중이다. 그냥 살짝만 그 무게를 나누면 되는데 대체 뭐가 두렵고 싫어 망설이고 있는 걸까.



  

* 『있잖아, 누구씨』, 정미진 글, 김소라 그림, atnoonbooks 펴냄

* 『나는 보이지 않아요』, 안나 플라트 글, 리 쇠데르베리 그림, 권지현 옮김, 씨드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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