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대학은 어떻게 들어갔을까
우연히 사내뷰공업님의 새내기 다큐?를 보다가 나의 대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10년 전 나의 대학생활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었다. 지금이랑 크게 달라진 건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땐 아이패드도 없이 무거운 전공책들을 들고 다니고 인스타그램보다는 페이스북을 많이 사용하던 시절이라 조금은 달라졌을 것 같다. 이번 글은 맨땅에 헤딩으로 대학교에 들어갔던 후기를 쓰려고 한다.
내가 고3 때는 수시 6개 제한이 생겨서 총 6개의 학교를 넣을 수 있었다. 내신은 1.8 정도에 학교에서 회장, 학생회, 등등 많은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수시에 무조건 유리했다. 그때 한창 입학사정관 제도가 많이 도입되었고 수시로 거의 70퍼센트를 뽑을 만큼 비중이 컸다. 나는 조그만 동네 수학학원에 다녔고 ebs로만 공부했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대학교도 나오지 않으셨고 주변 친척 중에도 공부를 잘했던 사람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물어볼 어른도 없었다. 대학교를 잘 가고 싶은 열정이 넘쳤던 나는 네이버 카페 수만휘를 매일 뒤지며 정보를 찾았다. 여름 방학에는 코엑스에서 열린 대학교 입시 설명회에 친구랑 둘이 참가하고 상담을 받았다.
우리 고등학교는 산 중턱에 있는 이과는 8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자그맣고 아담한 학교였다. 서울에 있는데도 시골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그런 느낌이랄까. 학교 뒤에는 바로 북한산이 있었다. 공립고등학교라서 선생님들은 3,4년마다 바뀌었다. 선생님도 그렇고 학교에서도 딱히 학생들이 대학을 잘 가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자식 입학에 목숨을 매는 학부모들도 당연히 없었다. 학교 아이들 중 소위 양아치인 아이들이 참 많았다. 학교에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여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어린 나는 학교 화장실 환풍구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을 보고 깜짝 놀라곤 했다. 쉬는 시간마다 공부는커녕 열심히 화장을 고치는 애들이 훨씬 많았다. 학교를 꿇어 복학생이었던 문신 있는 오빠도 있었고 강전을 당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귀에 이어 플러그를 꽂고 공부에만 집중했다. 그렇다고 친구가 없던 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착한 몇몇 친구들도 있었다. 우리끼리 입학 정보를 서로 얻고는 했다. 급식 도우미를 하면 점심시간 전 수업도 빨리 끝낼 수 있고 밥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항상 했다. 그러다 보니 봉사시간이 고등학교 3년 동안 거의 200시간 정도 되었다. 야자는 자율이었다. 야자가 없는 학교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야자가 자율이다 보니 거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내 기억에 마지막 야자인 수능 전날에 야자실에 남아있던 학생은 5명 정도였다. 야자 감독도 부모님이 와서 지켜보는 시스템이었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우리 학교는 특이하게도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학교도 조그만데 거의 30명 정도는 자폐스펙트럼이나 소아마비가 있던 친구들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에도 장애가 있는 친구랑 친했던 경험이 있고 할머니가 다리가 불편하셨어서 거부감이 없는 편이었다. 그래서 친하게 지냈다. 학교 1층엔 장애인 친구들이 가는 교실이 있었고 나는 친구들이랑 점심을 먹고 나서 거기에 가서 많이 놀았다. 선생님이랑도 친해지고 공익으로 오는 사람이랑도 친하게 지냈다.
아무튼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었지만 내신을 따기에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고2 때부터는 이과끼리만 성적을 매기는데 80명 정도이다 보니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 실수 한번 까딱하다가는 바로 2등급으로 내려갔다. 특히 이과 전체 성적 말고도 과학중심반끼리 내신을 경쟁하다 보면 어떤 과목은 1등급이 2명밖에 없었다. 괜히 이렇게 작고 공부를 안 하는 학교를 지원했다는 생각을 3학년 내내 했던 것 같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했는데 혼자 작성하고 친했던 국어 선생님한테 첨삭도 받고 나름 열심히 했다.
아무튼 고3 1학기때까지 내신을 산정하니까 1.8 정도가 되었다. 엄청 좋은 대학교를 가기에는 부족했고 홍대, 국민대, 건대 정도인 느낌이었다. 그때 전교에서 5등 안에 들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눈이 너무 높아졌다. 나도 잘하면 sky에 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다. 내 마음속 원픽대학교는 한양대학교였다.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내신전형으로는 부족하고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잘했다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에 수시에 넣지는 않았다. 고1 때는 전국에서 오는 포항공대 캠프도 가고 고2 때는 서울대 캠프도 참여했었다. 각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만 참여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아마 내가 그중에 가장 대학교를 못 간 것 같다.
우리 학교에는 이과에 있는 애들이 훨씬 공부를 잘했다. 특이하게도 전교 5등 안에 있는 친구들은 그렇게 좋은 대학은 못 갔고 내신 3등급 대인 애들이 입학사정관 제도를 통해서 대학을 잘 갔다. 건대에서 그때 우리 학교 애들을 정말 많이 뽑아줬다. 심지어 내신이 거의 5등급인 애가 입학사정관으로 건대 서울캠에 들어갔다. 머리가 정말 좋은 친구 a와 열심히 하는 b가 전교 1,2등이었는데 그 친구들은 내신이 아마 1. 0x 정도였을 거다. a는 아버지가 의사셨는데 재수를 한 뒤에 의대를 들어갔다. b는 연세대 생명공학과를 입학했다. 그런데 그 뒤에 전교 3등 친구는 안타깝게도 화학공학과만을 넣어서 나랑 같이 과기대에 들어갔다. 우리 고등학교에서는 학원도 제대로 다니는 애들이 없었는데 그래도 입학사정관 덕분에 건대, 국민대, 과기대에는 많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인서울이 최고일까?
내가 대학교 입시에서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 당시 입시 제도를 잘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과를 정해서 거기에 맞게 입시를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가 쓴 6개 학과가 거의 다 달랐다. 나처럼 애매하게 좋은 내신을 가지고 학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수시 전문 학원이라도 가서 꼭꼭 활용했으면 좋겠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보니 나보다 내신이 훨씬 낮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학교를 잘 가려면 지금 어느 전형으로 대학을 많이 뽑는지 잘 알아보고 전략적으로 똑똑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공기업이나 등등 취업을 잘하고 싶은 목표라면 sky, 서성한정도가 아닌 이상 차라리 지방에 있는 국립대에 가는 것이 훨씬 좋은 것 같다. 공기업은 지방에 많은데 그 지역 사람들을 훨씬 더 우대하는 것 같아서 이럴 거면 왜 내가 기를 써서 서울에 있는 학교를 갔을까 후회도 많이 했다. 만약에 본가가 지방이라면 더더욱 굳이 비싼 자취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서울에 있는 것보다는 지방이 훨씬 낫다. 그리고 대학교 전형에도 오히려 지방에서 온 학생을 우대하는 경우를 봤었다.
지금은 아무리 인서울 대학교라도 취업이 워낙 힘들기 때문에 굳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 이름보다는 대학교 생활을 얼마나 잘하고 성적을 잘 받느냐가 훨씬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이 직업 분야에 열정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나처럼 별로 흥미도 없는 학과에 취업 잘된다는 말만 믿고 버팅기다가는 골로 갈 수가 있다.
대학교 합격 발표 날
과기대는 나의 6개 학교 중 가장 낮은 학교였다. 지금은 과기대가 정말 좋은 학교고 간 걸 후회하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과기대가 산업대학교에서 종합대학교로 바뀐 지 얼마 안 됐을 때고 국립대의 메리트도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과기대를 붙었을 때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나는 솔직히 홍대나 인하대도 붙을 줄 알았고 좀 더 유명한 홍대에 더 가고 싶었다. 다른 대학들이 다 떨어지고 나서 너무 착잡한 마음이 가득했었다. 과기대는 마지막 최종 발표를 11월 말에 해줬다.
그때 학교에서 수능 끝난 고삼들 모두 롯데월드에 데려갔다.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과기대 최종 발표가 났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나는 그전에 다른 학교들이 떨어지다 보니 과기대도 떨어질 것 같아서 결과 합격도 보지 않고 놀이공원이 끝날 때까지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고 집에 들어왔다. 집에 갔더니 언니가 파리바게트 케이크를 준비해서 합격 축하한다는 편지와 함께 준비를 해주었다. 나는 기쁘지만 기쁘지 않았다. 대학을 갈 수 있으니까 다행이긴 했는데 치열하게 살았던 거에 비해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주 건방진 생각이었지만) 언니가 내 주민등록번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네이버에 실시간 검색어로 과기대가 뜬 걸 보고 합격을 미리 확인했던 거였다.
합격을 한 뒤에는 아주 신나게 친구들이랑 놀았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재수를 하지 않았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갔다. 고등학생이라 알바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친구랑 청계천 등불축제 알바 같은 걸 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고민 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던 때였다. 매일 친구들 집에 가서 누워서 TV 보다가 수다 떨다가 미래에 대한 신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남자친구도 사귀어 본 적이 없었어서 최대 관심사는 남자친구를 어떻게 사귈 수 있을까였다. 그때 짜파구리가 유행이라서 많이 해 먹고 친구랑 서로 염색도 해주며 신나는 날들을 보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설레는 그 마음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처음으로 화장도 하고 귀걸이도 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 예쁘게 꾸밀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신나던지 그때의 내가 귀엽다. 꾸미는 것도 정말 못했고 옷 살 돈이 없어서 예쁜 옷도 없었지만 그때의 나의 순수함이 나를 빛나게 해 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