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신중할수록 손해
일종의 다짐에 가까운 글인데, 일을 한 지 오래되다 보니 무언가 결과물을 내보일 때 정제된 상태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너무 날 것의 상태도 좋지 않지만 자꾸 다듬으려고 하다 보니 결과물을 하나씩 내보일 때마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더군다나 요즘 트렌드와도 거리가 있긴 하다.
유튜브 채널인 MoTV를 즐겨보는데 현실 조언 시리즈 영상에서 월간 디자인 편집장이 '신중할수록 손해'라는 말을 사용한다. 나의 상황에 딱 맞는 말이다.
브런치를 연재하기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왠지 글 하나하나를 굉장히 잘 써야 할 것만 같아서 초기에 쓴 글은 몇 개를 삭제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다행인 건, 요즘 일정이 비교적 빡빡한 편인데 이 와중에 브런치북 공모전을 참여하려다 보니 고민을 줄이고 당장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신기한 건 또 그렇게 글을 올리다 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덕분에 지금은 일하기 싫을 때 생각나는 대로 글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다른 사람들의 브런치 글들도 몇 개 읽어보았는데 생각보다 짧은 글을 쓰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알고 나니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가볍게 산다는 것이 생각 없이 산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질 때, 그것을 덜어내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프리랜서 생활 10년이 넘어가는 지금, 서서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가닥이 보인다. 지금 생활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9시-10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뒹굴거리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고, 오후 늦게 커피와 함께 일을 시작한다. 때로는 친구를 만나고, 때로는 전시나 뮤지컬을 보고, 그 외에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면서 살고 있다. 회사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획해서 하는 일들을 하다 보니 내가 하는 일을 힘들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적응만 한다면 회사 밖 생활이 훨씬 쉽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돈을 벌기 쉽다는 게 아니라 진짜 내 삶을 찾아가기 쉽다는 이야기다. 물론 적응하고, 어느 정도 능력만 갖추면 회사 생활보다 돈을 버는 것도 쉽다.
코로나 시기에 재테크 영상을 많이 본 것도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그전까지는 생활비에 대한 압박이 심했고, 이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심했다. 재테크 공부를 한 이후에는 노동 시간과 비례해서 돈을 벌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단순한 예·적금을 벗어난 방식들을 알게 되다 보니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더 넓은 세상이 보이는 만큼 이전보다 인생의 난이도가 낮아진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은 유튜브도 만들어보고 싶은데 어떤 식으로 제작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크게 성공시키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