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인사이트
팝업 스토어는 팝업창처럼 특정 장소에 짧은 기간 동안 운영하는 매장을 말한다. 홍보를 목적으로 브랜드를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인데 단순히 제품만 진열해둔 곳이 아니라 브랜드 철학 전반을 소개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많은 팝업 스토어가 무료로 운영되며 게임처럼 재밌고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려고 노력한다.
구글이 작년 6월에 연 Google Home Mini Golf는 미니 골프를 즐기는 매장이다.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글이 골프라니. 낯설게 느껴진다. 사실은 스마트 스피커로 제어하는 스마트 홈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실감 나게 전달하려는 의도다.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골프 코스를 완수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구글 어시스턴트와 상호작용하며 제품의 효용을 체감한다.
무형의 제품인 인공지능 비서를 골프 게임을 통해 가시화한 것이다. 형체가 없어 어떤 제품인지, 뭐가 좋은지를 잘 실감할 수 없던 인공지능 비서를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게이미케이션 전략으로 소비자를 몰입하게 한다.
‘구글 어시스턴트의 어떤 기능이 좋더라’가 아니라 골프 게임을 기억에 각인시키는 거다. 기술에 관심 없는 소비자는 구글 어시스트의 기능은커녕 인공지능 비서 자체에 관심이 없다. 이들을 대상으로 인공지능이라는 낯선 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보조하는지를 보여준다. 기술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팝업 스토어는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거의 매일 팝업 스토어를 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지 않는 이유는 보여주기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품을 보여주고 사용해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없다. 상품이 범람하는 소비사회에서 기억에 남지 않는 마케팅은 무의미하다. 많은 브랜드가 부정적인 이슈로라도 논란을 만들려는 이유다.
오늘은 팝업 스토어의 좋은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세 사례는 모두 공짜인 듯 공짜가 아닌 매장이다. 차고 넘치는 브랜드 틈에서 그리고, 발에 채는 팝업 스토어 중에서 조금이나마 눈에 띄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뉴발란스는 오는 4월 28일 버진 머니 런던 마라톤(Virgin Money London Marathon)의 공식 후원사가 됐다. 스포츠 브랜드와 마라톤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매년 나이키, 아디다스 등 굵직한 브랜드들이 마라톤을 개최한다. 직접 개최도 아니고 후원이라니 뻔한 마케팅처럼 보일 수 있지만, 팝업 스토어를 통해 뻔하지 않게 소화했다.
마라톤 후원과 연계해 1월 24일 오픈한 팝업 스토어, The Runaway는 마라톤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펍이다. 시원한 맥주는 힘든 일과를 마치고 가장 생각나는 메뉴 중 하나다. 단 이곳은 열심히 달린 자만 마실 수 있다. 달린 거리가 곧 화폐가 되기 때문이다. Strava라는 앱을 통해 도전 과제를 받고, 열심히 달리면 디지털 신용카드 개념인 Runaway Card에 적립된다. 마라톤 개최 일을 목표로 꾸준히 연습을 시키는 셈이다.
마라톤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진입 장벽은 높다. 평소에 운동하지 않던 사람은 도전하기 힘든 종목이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훈련이 필요한 게 마라톤이라는 종목의 특성이다. The Runaway는 마라톤이라는 뻔한 마케팅 소재를 신선하게 다루는 동시에 사람들과 지속적인 접점을 마련한다. 마라톤 훈련을 구실로 계속해서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어떤 브랜드가 마라톤 후원을 했다더라’라는 제삼자의 인식이 아니라 ‘뉴발란스와 마라톤 훈련을 했다’는 기억과 경험이 오랫동안 남게 된다.
https://www.thedropdate.com/news/new-balance-the-runaway
두 번째는 세제 브랜드 에코버의 The Rubbish Café. 플라스틱 대란을 계기로 거의 모든 글로벌 기업이 친환경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에코버도 2020년까지 재활용 가능한 병으로 패키지를 교체하겠다고 선언한 수많은 기업 중 하나지만, 에코버가 운영했던 팝업 카페만큼은 눈에 띈다. 이곳에선 에코 셰프인 Tom Hunt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을 수 있는데, 결제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대신한다. 재활용 병에 에코버의 세제를 담아올 수도 있다.
친환경 이슈가 워낙 크다 보니 관련된 기발한 사례가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이런 사례들은 대체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재활용에 참여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한다. 에코버 역시 이 지점을 고민했고 뻔할 수 있는 친환경 정책을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 잘 표현했다.
마지막은 미국 식품 제조사 크래프트 하인즈. 얼마 전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이 35일 만에 종료된 바 있다. 대부분 직장인이 그렇듯 모든 업무가 중단됐다 해도 아예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셧다운이 해소됐을 때를 대비해야 하기도 하고, 통상적으로 하던 일은 계속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민원을 처리하는 공무원들이 업무를 중단하면 피해가 일반 시민에게까지 확대된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셧다운으로 임금은 안 나오는 상황이지만 공무원들은 계속 나와서 일했다. 한 달이 넘게 지속되다 보니 가계 재정에 타격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Kraft Now Pay Later는 피해를 본 공무원을 위한 무료 팝업 스토어였다. 하지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Pay Later) 음식을 무료로 가져가는 대신 셧다운 사태가 해결되면 무료로 받은 식료품의 가격만큼 기부할 것을 권장한다. 도움 받은 만큼 베풀라는 것이다.
사실 피해를 본 사람에겐 무료로 지원해주는 게 통상적이다. 많은 기업은 피해 현장에 구호 물품을 보내거나 기부하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한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Kraft Now Pay Later 매장도 마찬가지지만, 콘셉트 하나로 차별화한다. 나중에, 사정이 넉넉해졌을 때 기부를 통해 지불하라는 메시지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무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팝업 스토어가 된다. 또, 직접 도움을 받은 공무원들에겐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준 브랜드로 매우 친밀하게 기억된다.
세 사례에서 공통적인 것은 사용자의 경험 혹은 행동과 연관 지어 팝업 스토어를 운영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중하다 보면 보여주는 것에만 급급한 팝업 스토어를 만들게 된다. 브랜드와 예비 소비자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경험이 필요하다. 보고, 만지고, 먹는 등 단순 경험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로부터 특정한 행동을 끄집어내야 한다. 팝업 스토어의 경험이 브랜드 경험이 아니라 ‘내’ 경험, 즉 소비자의 개인적 경험과 연결되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