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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Jan 14. 2020

북한이 핵 실험하면 일어나는 일들

군대에는 전투체육이라는 시간이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체력단련을 위해 체육활동을 하는 시간이다. (하지 않는 부대도 있다)

평소 체력단련 시간에는 간부들은 업무 때문에 참여를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간에는 당직근무자를 제외한 전 인원이 모든 업무를 제쳐두고 체력단련을 해야 해서 간부들도 온전히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전투체육이라는 이름답게 '5km 급속 행군', '단독군장 뜀걸음' 같은 고된 체력단련을 하는데 가끔은 자유롭게 구기종목을 하면서 단결활동을 하기도 했다. 

구기종목을 할 때면 간부들은 따로 모여서 전투축구를 하곤 했는데 매주 그렇게 하면 병사들이 연병장을 못 쓰게 돼서 가까운 축구장을 빌리기도 하고 겨울에는 부대 연못에서 얼음축구를 하곤 했다


*전투축구 : 많은 사람이 참여하다 보니 일반 축구와는 다르게 공을 2개 이상 넣고 하는 축구.

*얼음축구 : 얼음 위에서 하키 볼 같은 것을 발로 차서 골대에 넣는 게임이다. 전투화를 신고 하기 때문에 많이 미끄러지면서 재밌는 장면이 연출된다. 머리 보호를 위해 방탄헬멧을 착용한다



그러다 하루는 전투체육 시간에 스키장에 갔다 오자는 의견이 나왔다.(사실상 대대장님이 밀어붙인 거지만)

위수지역 내에 스키장이 있다곤 하지만 업무시간에 스키장을 간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혁명이었다. 물론 스키 같은 것을 타지 않는 간부들도 있기에 모든 간부들이 반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반기는 분위기였다. 혹시나 상급 부대에서 반려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라며 승인이 떨어졌고 우리는 전투체육+간부 단결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업무시간에 스키장을 다녀오게 됐다.  


2016년 1월 6일 아침.

전날 세워놓은 카풀 계획에 따라 간부들 차량으로 스키장으로 이동했다. 스키장에 도착하고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스키나 보드를 타는 사람을 위한 1번 그룹과 스키를 타지 않아 스키장 시설 내에 있는 목욕탕이나 시설들을 사용하는 2번 그룹이었다. 

보드를 몇 번 타봤기에 1번 그룹으로 갔고 종일권을 끊어서 중급자 코스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대대장님이랑 같이 올라갔었는데 내려오고 보니 대대장님이 안 보여서 얼른 먼저 내려온 다른 간부와 다시 올라가려고 리프트에 올랐다. 그리고 리프트를 타고 반쯤 올라가니 전화벨이 울렸다. 

대대장님이었다. 

혹시 먼저 올라갔다고 찾는 건 아닐까 싶었다.


"충성! 1포대장입니다."

"어~ 알파 지금 어딨어?"

"지금 리프트 타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누구랑 같이 있어?"

"정보과장이랑 있습니다."

"어 우리 복귀해야 할 것 같으니까 정보과장이랑 얼른 내려와"

"아... 예 알겠습니다."


자세한 이유도 듣지 않고 일단 알겠다고 하고 끊고 옆에 같이 타고 있던 정보과장한테 말했다.


"우리 복귀한다고 내려오라는데?"


정보과장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갑자기 왜 복귀하랍니까?"


정보과장은 갸우뚱하며 핸드폰을 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북한이 4차 핵 실험했다고 사단에서 복귀하라고 했답니다."


네이버에 들어가니 온통 북한 핵실험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보과장과 함께 김정은 개X끼를 외치며 마지막 보딩을 하고 내려왔다. 결국 야심 차게 진행했던 스키장 단결활동은 2번의 보딩으로 끝나버렸다. 

우리는 복귀를 하면서 2그룹이 오늘의 승리자였노라 한탄했다. 

이런 정보는 군내에서 전달되는 것보다 TV 뉴스가 더 빠르다. 그래서 지휘통제실에는 항상 YTN이 틀어져 있다. 


복귀를 한 뒤 크게 뭔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포상(화포가 대기하고 있는 곳, 적 포격 시 피해방지를 위해 넓게 분포된 유개호 안에 화포가 대기하고 있다)에서 대기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주구장창.

날씨도 매섭게 추운 겨울날, 밤낮으로 대기만 했다. 야간에는 너무 추워 한 번씩 화포에 히터를 틀어가며 체온을 녹였다. 한동안 식사도 포상에서 먹었다. 둘째 날 야간에는 장병들을 독려한다고 취사반에서 뜨끈한 어묵탕을 만들어줬는데 부대원들은 따봉을 남발하며 게눈 감추듯이 먹었다. 대기하면서도 초미의 관심사는 과연 주말 전에 대기태세가 풀리느냐였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군에서 당장 뭔가 대응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군은 비상대기를 하며 추가적인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천안함, 연평도 포격도발, 서부전선 포격뿐만 아니라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도 이렇게 대기를 했다. 이럴 때 사고 치면 가중처벌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게 된다. 

 

다행히 주말에는 대기태세가 완화되어 퇴근이 가능했지만 언제 부대에 들어가야 될지 몰라 주말에 오기로 한 여자 친구는 못 오게 했다. 그다음 주에도 일과는 계속 포상에서 대기하면서 주특기 훈련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이면 전투체육은 물론 체력단련도 하지 않는다. 대기 또 대기를 하다 다시 서서히 원래 생활대로 돌아간다. 



그렇게 대기를 하다 하루는 포상에서 불이 났다. 

상황실에서 통제하다가 부대원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포상을 순찰하던 중 멀리서 연기가 보였다. 처음에는 주변 민가에서 뭔가 태우는 건가 싶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울타리 밖이 아닌 우리 포상에서 나는 것이었다. 연기가 나는 곳으로 가니 아주 작은 불씨가 풀로 뒤덮인 포상 위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다행히 큰 불이 아니고 금방 끌 수 있는 작은 불씨였지만 순간 화가 났다. 포상에는 포탄이 있어 위험하니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누누이 얘기했는데 누군가 몰래 담배를 피운 게 틀림없었다. 범인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가장 가까운 포상에 있는 인원들을 불렀다. 

포상에서 포반장이 나오길래 불난 것을 보여주며 '여기서 담배 피우다가 불씨가 붙었으니 담배 피운 애를 찾으라'라고 하려고 했는데 불씨는 잠깐 한눈판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커져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고 건조해서 그런지 풀들은 좋은 땔깜이 되어 있어고 아까는 맘만 먹으면 발로 끌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발로 끄는 것보다 번지는 속도가 더 빨라져 있었다. 포반장에게 얼른 소화기를 가져오라고 했지만 불이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얼른 대대로 전화를 걸었다. 

상황은 순식간에 대기 상태에서 실 상황으로 바뀌었다. 대대원들이 오기 전에 포상에 있는 소화기 몇 개로 불을 끄려고 했으나 어림없었다. 

대대원들이 화재를 대비해 막사 현관에 비치해 놓은 등짐펌프와 포상에 있는 소화기를 죄다 끌고 와서야 겨우 불을 진압할 수 있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부대 전체에 불이 퍼질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북한이 4차 핵실험으로 인해 대기 중인 상황이었는데 이런 걸로 상급부대 입에 오른다면 좋을 것 하나 없었다. 아마 사단뿐만 아니라 군단에서도 내려와 우리를 교보재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교보재는 교육훈련을 할 때 사용하는 교육자료인데 어떤 사고로 인해 사건사례로 만들어지는 것을 교보재가 된다고 표현한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대대장님한테는 엄청 깨져서 그 순간 불을 우습게 보고 끌 생각보다 그걸 보여주며 범인 색출하겠다고 판단한 나새끼의 뺨따구를 치고 싶었다.   



모든 상황이 끝나고 봄이 되었을 때 불이난 자리로 가보니 한눈에 봐도 '여기부터 여기까지 불이 났었습니다'라고 말하듯이 주변에 풀들과는 다르게 푸릇푸릇한 풀들이 이쁘게 자라나고 있었다. 덕분에 그곳을 지날 때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있었던 그때를 떠올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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