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참 좁다"
살다 보면 한 번쯤 전혀 다른 루트로 알게 된 사람이 알고 보니 나랑 지인이 겹치는 경우가 있다. 때론 정말 우연한 장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흔히 세상 참 좁다고 표현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가끔은 외국에서도 종종 일어나곤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쪽 업계가 좁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인 것 같다. 세상도 좁은데 우리나라, 하물며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좁을까.
군대 역시 마찬가지다.
전국 여기저기 퍼져 있지만 직업군인에게 군대는 참 좁은 곳이다. 거기다 같은 병과 사람들만 따지면 훨씬 좁아진다. 그래서 부대를 옮겨도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사람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대학교 4학년 겨울방학.
살면서 겪게 될 마지막 방학이라 생각하고 부모님께 임관 후에 갚겠다고 돈을 빌린 후 유럽으로 여행 간 적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학군단 친구들이 여행을 떠나던 시기였다. 축구를 좋아해서 주로 축구경기가 있는 국가들을 위주로 돌아다녔는데 스페인을 여행하다 바르셀로나 한인민박에서 이틀 머무른 적이 있다.
낮에는 관광을 하고 밤에 민박으로 돌아와 같이 머무는 사람들끼리 말을 좀 섞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한창 술을 마시다 그 사람들 중 한 명이 끼고 있던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금반지에 녹색 큐빅이 박혀있는 게 한눈에 그가 나처럼 임관을 앞둔 후보생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참고로 임관반지는 다른 출신 장교들도 맞추는데 큐빅 색깔이 다르다. 육사는 빨간색 큐빅, 3사는 파란색 큐빅, 학사는 보라색, 간부사관은 검은색을 사용한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하고 즐겁게 술을 마셨고 다음 날엔 얼굴도 못 보고 각자 여행길을 떠났다.
그리고 한 달 뒤 처음 임관하고 포병학교로 가는 기차에서 내리면서 그와 마주쳤다. 그때는 외국에다 술기운이 있었던 탓에 친하게 굴었지만 막상 한국에서 보니 어색했고 가벼운 인사 정도만 했는데 재밌게도 그는 나와 같은 학급에 속해 있어 초군반 교육을 받는 동안 친하게 지냈었다.
물론 야전에 나가서 연락을 하지는 못 했지만 군대에 있다 보면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포대장할 때는 휴가 가서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친구 중 한 명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는데 당시 포대에 있는 병사가 그 친구와 학교 선후배 관계라서 사진을 보고 놀라서 나에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 다행히 평범하게 사진을 찍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평소에 놀던 대로 미친 사람처럼 사진을 찍었으면 난감할 뻔했다.
장기근무를 하다 보면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던 사람을 다른 부대에 옮기고 만나는 일은 흔한 일이다. 그래서 전 부대에서 사고 쳤던 일이 건너 건너 퍼지는 일도 흔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처음 자대 배치받았을 때 대대장님은 전역이 얼마 안 남은 짬 중령이었는데 성격이 나쁘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한창 때는 대대장을 하면서 작전과장을 3명이나 보직 해임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3명을 갈아치우고 살아남은 분이 당시 우리 연대장님으로 계셨었다. 사람들은 대대장님 밑에서 버틸 정도였으니까 연대장까지 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연대장님은 우리 대대를 별로 안 좋아하셨다. 그래도 우리 대대장님이 선배이다 보니 대놓고 뭐라 하진 못 했지만 대대장님이 휴가라도 가시는 날에는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털기도 했다.
이렇게 직업 군인들은 돌고 돌다 보면 만났던 사람을 또 만나는 게 흔한 일이다. 따라서 좋은 인연을 만들면 나중에 반갑게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것이고 악연을 만들면 만들수록 나중에 고달파진다.
군대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나보다 을의 위치에 있다고 언제까지 을이라는 법은 없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도 위치도 변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마주칠지 모른다.
대대장님이라고 자기가 데리고 있던 후배가 먼저 진급해서 연대장으로 올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