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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광호 Apr 04. 2024

[번역] <헤더는 엄마가 둘이야> 저자 후기

<Heather has two mommies>


후기


부모님과 선생님 들께 드리는 말씀


『헤더는 엄마가 둘이야』가 1989년 12월 처음 출판되어 나온 지도 이십 년이 지났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그 동안 세상은 참 많이도 바뀌었습니다! 이십 년 전만해도 제가 살던 작은 동네 뉴잉글랜드 시내를 걸을 때는 감히 여자 친구의 손을 잡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스무 해가 지나고 우리가 합법적으로 결혼하고, 사진까지 넣은 결혼 알림글을 지역신문에 게재하여 세상사람 모두가 볼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못했지요. 우리가 이 책에서 헌정한 두 어린 아이가 이제 성인 여성이 되었다는 사실도 믿기 힘듭니다. 사실 그중 한 명은 자신이 영감이 되어 만들어진 이 책을 대학에서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이십 년 전에는 고등학교에 ‘동성애자-이성애자 연합Gay Straight Alliance[학생 주도 단체로, 주로 북미 지역 고등학교 및 대학교에 있다. LGBT 청소년 및 청년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이성애자를 돕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고자 힘쓴다-옮긴이]’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지요. 오늘날에는 그런 단체들이 3,000 여개가 넘습니다. 우린 참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시민의 권리를 위해 싸우다 보면 세월이 참 빨리도 지나갑니다. 진보적이고 다양성을 관용하며 레즈비언도 많이 거주하던 도시, 매사추세츠 노샘프턴 메인스트리트를 걷고 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그때 한 여성이 저를 세우고는 엄마가 둘인 아이에 관한 책을 써달라고 했습니다. “딸아이한테 보여줄 책이 한 권도 없어요. 우리 같은 가족을 보여주는 책 말이에요. 누군가는 그런 책을 꼭 써야 해요.”


저는 제가 그 누군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곧 책이나 영화, TV에서 자기 가족과는 영 딴판인 가족들만을 보면서 자란다는 게 어떤 건지를 직접 경험하여 알고 있는 사람 말입니다. 저는 유대인 가정에서,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주변에서 접하는 가족들은 우리 가족과 비슷했습니다.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음식을 먹었지요. 그런데도 저는 부모님께 곧잘 묻곤 했습니다. “왜 우린 크리스마스트리 하면 안돼요?” “왜 우린 부활절 계란 줍기 놀이하면 안돼요?” 전 책, TV, 영화 어디에서도 갈색 곱슬머리의 어린 유대인 소녀가 나와 할머니와 금요일 밤에 마쪼 볼 수프[matzo ball soup 유대인이 유월절에 먹는 무교병無酵餠으로 만든 수프-옮긴이]를 먹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분명 우리 가족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림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본 어떤 가족과도 같지 않았지요. 우리 가족은 달랐습니다. 그리고 이상했습니다.


물론 어렸을 때 저는 미디어의 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책이나 텔레비전 같은 데서 우리와 비슷한 가족을 보고 싶은 제 동경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지요. 뿐만 아니라 이런 욕구를 분명히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제 다 자란 여성으로서, 또 공교롭게도 유대인 레즈비언으로서 저는 미디어에서 나 자신에 관한 긍정적 이미지, 아니 어떤 이미지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느끼고 있습니다. 만약 어린 시절에 그런 이미지와 역할 본보기 들을 경험했더라면 제 자존감은 훨씬 높아졌겠지요.


저는 『헤더는 엄마가 둘이야』를 오십여 곳의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어린이 책 출판사들은 레즈비언 출판사에 보내 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레즈비언 출판사들은 어린이 책 출판사에 보내 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꼬박 일 년이 지나갔지만 운은 따르지 않았고, 자녀를 둔 레즈비언 친구 티제이비어 고버Tzivia Gover와 저는 직접 책을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린 십 달러 이상을 기부하면 책을 드리겠다는 내용의 모금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천 달러가 모였습니다.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레즈비언 어머니들과 그 자녀를 긍정적으로 그리는 책을 간절히 바라온 열정적인 독자들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1989년 12월 『헤더는 엄마가 둘이야』 초판이 발행되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반응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요. 자식을 둔 레즈비언들이 정말 감사하다는 편지를 몇 통 보내왔고 타샤Tasha라는 여섯 살 아이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헤더는 엄마가 둘이야』를 써 주셔서 감사해요. 딱 저를 위해서 써 주셨다는 걸 알아요.” 생일선물로 이 책 세 권을 받은 꼬마 소년에 관해서도 들었는데 매일 밤 베개 밑에 두고 함께 잔다고 했습니다. 한 이성애자 여성은 아이가 이 책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밤마다 책을 읽어달라고 해요. 그리고 자기한테는 왜 엄마가 하나뿐인지 물어요.” 레즈비언 엄마와 엄마의 파트너와 함께 사는 조숙한 아이는 이렇게 물었다고 했습니다. “왜 헤더는 엄마가 둘이고, 저는 엄마 하나뿐인 거죠?” 엄마가 둘인 또 다른 아이는 모든 게 어리둥절한 모양이었습니다. 엄마들이 책을 읽어 주고 생각을 묻자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개랑 고양이 키우면 안돼요? 해더처럼요?” 저는 아이가 이 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결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인들과 관련해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1990년에 앨리슨 퍼블리케이션즈Alyson Publications(앨리슨 북스Alyson Books의 전신)는 게이 및 레즈비언 부모를 둔 아이들을 위한 책들을 내는 앨리슨 원더랜드Alyson Wonderland를 시작했습니다. 앨리슨은 『헤더는 엄마가 둘이야』의 판권을 샀고 『아빠의 한방친구 Daddy’s Roommate』도 출간했습니다. 그 즈음 이 책들이 관심을 좀 더 받긴 했지만 조용하고 별 탈이 없었다. 하지만 1992년까지였습니다. 『헤더』와 『아빠』를 둘러싼 큰 갈등 셋이 발생했습니다.


첫 번째 갈등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일어났습니다. 론 메이본Lon Mabon이 반동성애자 캠페인을 벌여 온 곳이었지요. 그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허락되도록 주州헌법 개정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끄는 단체 오리건시민연합Oregon Citizen Alliance(OCA) 회의에서는 『헤더』와 『아빠』가 회람되었습니다. “호전적인 동성애 의제”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는 증거로 제시되었죠. 1992년 11월 3일 오리건주에선 투표가 실시되었고 OCA 법안은 무산되었습니다.


『헤더는 엄마가 둘이야』와 『아빠의 한방친구』를 둘러싼 두 번째 논쟁은 전국의 학교및 공립도서관에서 일어났습니다. 마치 전방위 활동이 전개되는 듯 미 전역의 도서관 선반에서 책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파악한 앨리슨 퍼블리케이션즈는, 요청한 도서관 오백여 곳에 책들 보냈습니다. 소식은 거의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추가로 오백여 곳에서 요청해왔습니다. 사서들은 대부분 힘을 모아 이 나라의 기본 원리인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습니다. 일부 도서관들은 책을 성인 섹션으로 옮겼고 일부는 특별 요청 섹션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일반 열람 선반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공연한 소동에 어안이 막혔고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제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게이가 나오는 책을 한 권이라도 읽으면 어쩌나 하는 겁에 질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부모들은 자녀가 그런 책에 노출되면 레즈비언이나 게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설명을 해도 보통은 별무소용입니다. 대다수의 레즈비언과 게이가 이성애자 부모에게 양육되었고, 또 어린 시절에 이성애자가 나오는 책들을 보며 무수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해도 말입니다. 두려움은 비합리적인 것입니다.


세 번째 논쟁은 뉴욕시에서 일어났습니다. 쟁점은 레인보우 커리큘럼the Rainbow Curriculum, 곧 모든 유형의 가족에 대한 존중을 가르치고자 제작된 443쪽 분량의 관련 서적 목록이었습니다. 이 443쪽의 분량에서, 동성애자가 등장하거나 동성애자를 주제로 삼은 책을 언급한 부분은 세 단락입니다. 이 책들은 법에 의해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읽을 것이 요구되거나 지시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다른 수백여 권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한낱 권고였습니다.


당시 뉴욕시 교육감이던 조셉 페르난데스Joseph Fernandez는 레인보우 커리큘럼의 든든한 지지자였습니다. 그는 1992년 9월 6일 <데일리 뉴스 Daily New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를 단결시키려면 이런 증오의 문제들을 다뤄야 합니다. 아이들이 우리에게서, 어른에게서 편견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린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관용을 가르쳐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페르난데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퀸즈Queens 카운티의 24학군School District 24의 총장 메리 커민스Mary Cummins도 포함되었죠. 그녀는 1992년 4월 23일 <뉴욕 뉴스데이 New York Newsday>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레인보우 커리큘럼에는 교사들이 모든 가족이 이성애자 가족인 건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우린 일학년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의아했습니다. 왜 안 되지? 일학년 아이들이든 다른 학년이든 그 진실을 알려주는 게 왜 안 되는 걸까?



길고도 격렬한 싸움 끝에 레인보우 커리큘럼은 수정되었고 『헤더는 엄마가 둘이야』『아빠의 한방친구』는 삭제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유형의 가족에 노출되길 바라지 않는 이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학급이나 도서관에 앉아 있는 모든 아이들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가족에 속해 있다고 어떻게 가정할 수 있나요? 레즈비언이나 게이 부모, 형제, 이모와 고모,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웃과 친구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단 한명도 없다고 어떻게 추정할 수 있나요? 오직 한 가지 유형의 가족만이 존재하는 척 하고 나머지 다른 가족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 때 모든 아이들에게는 어떤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는 걸까요?


요즘에는 『헤더는 엄마가 둘이야』를 둘러싼 논쟁들이 예전처럼 자주 일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헤더』는 여전히 곧잘 미디어에 등장하곤 합니다. 딕 체니Dick Cheney 전前부통령의 레즈비언 딸이 파트너와 함께 부모가 되었을 때 한 만평은 딕 체니가 다음과 같은 제목의 책을 읽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헤더는 엄마가 둘이야 그리고 참 고약한 할아버지”. 이 책은 <로 앤 오더 Law and Order> <더 데일리 쇼 The Daily Show> <윌 앤 그레이스 Will and Grace> 같은 TV 프로그램, 영화 <베스트 쇼 Best in Show>에서 언급되거나 패러디되었습니다. “헤더는 엄마가 둘이야”는 동성 부모 가족을 언급하는 문구가 되었고 전 세계에서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십 년 전 감히 어떤 출판사도 출간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책으로서는 나쁘지 않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보여주는 책들이 더 많이 출간되면, 레즈비언 및 게이 부모의 자녀들을 포함해 모든 아이들에게 오직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장성한) 자녀들이자 컬라지COLAGE(도처에 있는 레즈비언 및 게이의 자녀들 Children of Lesbian and Gay Everywhere)[LGBT의 자녀들을 연합하고 지원하는 단체-옮긴이]의 공동책임자들인 스테판 린치Stefan Lynch와 에밀리 오메르Emily Omer는 1994년 1월에 <텐 퍼센트 매거진 Ten Percent Magazine>[게이 및 레즈비언 잡지-옮긴이]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대안적인 가족에서, 특히 레즈비언 및 게이 가족, 길러진 우리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기분을 느끼며 자랐어요. 이유도 모른 채 말이죠.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자라면서, 뉴먼의 책처럼 자신의 모습이 반영되고 그에 따라 인정되는 책, 영화 등을 접하게 될 거에요.”


저는 두 번째 세대의 아이들에게 새로워지고 나아진, 또 재능이 탁월한 다이애나 수자Diana Souza의 컬러 일러스트레이션이 함께한 『헤더는 엄마가 둘이야』를 전하게 되어 자랑스럽습니다. 어느 누구도 출판하지 않으려 했던 이 책은 이제 하나의 고전이 되었고 이 책의 “호전적인 동성애 의제”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이 책의 진정한 메시지는 헤더의 현명한 선생님 몰리가 하는 말에 담겨 있습니다. “가족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말이야, 가족이 모두 서로 서로 사랑하는 거란다.” 저는 어느 누구도 그런 생각을 논란거리로 여기지 않는 그런 날을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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