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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퍼피 Nov 07. 2020

함부로 동정할 수 없어. 알 수 없잖아.



친구와 함께 '청각장애 부모의 육아'를 주제로 서비스를 만들어 유니버셜 디자인 공모전에 지원한 적이 있다.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 청각장애 부모님들의 육아 환경과 페인 포인트, 니즈를 알 필요가 있었다. 서울권에 있는 청각장애인 복지관에 인터뷰 요청 전화를 돌렸고, 다행히 한 복지관이 승낙을 해주어 건청인(소리를 들을 수 있는 비장애인) 자녀를 육아하고 있는 청각장애인 어머님 세 분과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복지관 1층 로비에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 분 중 한 분은 구화인(입모양을 읽을 수 있으며 소리 또한 낼 수 있는 사람)이셨고, 두 분은 수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구화가 가능하신 어머님 덕분에 두 분과도 원활히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30분가량 인터뷰를 하고 감사선물을 드린 뒤 헤어졌다. 헤어진 후에 인터뷰 스크립트를 정리하며 여러 페인 포인트를 뽑아냈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 니즈를 발견하게 됐다.


'아이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


친구와 나는 페인 포인트를 해결하고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기능을 넣은 서비스를 기획하고 디자인해 공모전에 제출했다. 우리의 서비스는 특선작으로 뽑혔지만, 나는 우리의 서비스가 '아이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는 어머님들의 니즈를 완벽히 충족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어딘가 개운하지 않았다.








공모전은 끝났지만 어떻게 하면 청각장애인 부모와 건청인 자녀가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모색하고 싶어 여러 논문을 찾아보았다. 서칭 도중 '청각장애부모를 둔 건청자녀의 성장경험에 관한 질적 탐색'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견했다. 이 논문의 연구결과 중 심리적 성장경험 측면에서 건청자녀는 부모와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어릴 때 부모님과 상호작용이 많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겉으로 필요한 소통은 하였으나 마음속으로 상의하고 싶었던 것들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어려웠던 숙제였다. ... 의사전달을 하면서 이해시켜야 하므로 수화의 반복과 다양한 소통방식을 활용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스트레스로 대화의 문을 닫게 되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례 중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결국은 청각장애 부모도, 건청 자녀도 원활한 의사소통을 원한다. 논문의 결론에서는 의사소통 문제 개선을 위한 제언을 제시하는데, 수화통역 서비스에 초점을 둔다. 이용자 중심의 수화통역 서비스가 확대되어야 하고, 제도적으로 근무 외 시간에 수화통역사가 탄력적으로 배치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복지관에서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구화인 어머님은 우리와 다른 두 분 사이에서 수화통역사 역할을 하셨다. 우리는 주로 구화인 어머님과 하나의 기둥질문에서 여러 개의 가지질문을 할 수 있을 만큼 깊은 인터뷰를 진행했고, 다른 두 분과는 -구화인 어머님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의 한계로 짤막한 기둥질문밖에 할 수 없었다.


수화통역사가 부모와 자녀의 소통을 온전하게 도울 수 있을까? 부모와 자녀 사이에 소통을 도와주는 매개가 있는 게 진정한 소통일까? 이 또한 완벽한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 동안 검증된 정보를 찾아보고 깊은 고민도 해보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내릴 수 없었다. 마음 한 켠이 안타까웠다.








어느 날 영화 '벌새'를 봤다. 주인공 은희가 한문 학원 선생님 영지와 길을 걷는 장면이었다. 컨테이너 집을 뺏기지 않으려 현수막을 걸어 놓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현수막을 보며 은희는 "불쌍해요. 집도 추울 거 같은데" 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영지는 이렇게 답한다.


"그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마. 함부로 동정할 수 없어. 알 수 없잖아."


그 순간 영지의 말이 나를 아프게 때렸다. 청각장애 부모와 건청자녀의 의사소통 문제를 안타까워했던 내 감정이 불쑥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안타까움. 그 감정은 위험한 판단으로 인한 어리석은 감정이었다. 그 가정은 깊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도 다른 방면에서 그걸 채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들이 아닌 이상 정확하게 알 수 없고 함부로 판단할 수도 없다.


 나는 영지의 대사를 듣고 한동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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