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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인 jiin mia heo Jan 14. 2022

은은하게 도라이 같지만 묵직하게 서글픈

미란다 줄라이의 영화 '카조니어(Kajillionaire)'

 우리는 가끔 어떤 영화에 아낌없이 마음을 내어주고 만다. 작품의 만듬새 같은 걸 따질 겨를도 없이 유독 우리를 녹아내리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나한텐 '카조니어(Kajillionaire)'가 그랬다. 대체 어떤 점이 나를 무너뜨렸는지 모른채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또 봤다. 웃기고 이상하고 도라이 같은데 서글픈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시나리오까지 읽었다. 그래도 여전히 몽골몽골하고 묵직한 공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사운드트랙만 들어도 심장을 부여잡게 된다. 뭐라도 생각하고 써야 이 영화를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노트북을 열었다. 이건 감상평도 비평도 뭣도 아니고 그냥 사랑가다.


한국에선 '카조니어'라는 이름으로 들어왔다. 그냥 '카질리네어'였어도 생소한 영어단어라 좋은 제목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카조니어'는 무슨 연유로 탄생한 건지 모르겠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매우 있어요


 첫 장면부터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질 거라는 걸 알았다. 차갑고 시리게 푸른 우체국 앞에 샛노란 버스가 지나간다. 그러고는 뭐가 뭔지 파악이 안 되는 이상한 동작을 하는 올드 돌리오(Old Dolio). 나는 아직도 주인공 이름이 '올드 돌리오'라는 게 길을 걷다 혼자 웃을 정도로 웃긴데, 그러다가도 올드 돌리오가 왜 올드 돌리오여야 했는지를 떠올리면 한없이 먹먹해진다. 이 점이 'Kajillionaire'를 관통하는 기이하고 독특한 매력이다.


트레일러 썸네일부터 이상한데 그만큼 흥미롭다.


 15살이라고 해도, 25살이라고 해도, 35살이라고 해도, 여성이나 남성이라고 해도 혹은 둘 다 아니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는 올드 돌리오. 나이나 성별에 대한 경계가 없는 캐릭터지만 누구보다 좁은 세상에 갇혀 살아왔다는 점이 슬프게 뻐렁친다. 동물인지 타잔인지 사람인지 애매모호한 올드 돌리오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안타까우면서도 새롭고 참신해서 미쳐버리겠는 거다. 멜라니가 올드 돌리오한테 호기심을 느끼는 게 너무 잘 이해된다. (근데 올드 돌리오가 멜라니한테 반하는 것도 매우 이해가고요? 나같아도 지구 던지고 달려간다.)


멜라니는 지금까지 봐왔던 지나 로드리게즈의 모습이랑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랐다.

 여지껏 내가 본 지나 로드리게즈의 모습은 다 'the girl next door' 같은(근데 현실에 없는) 친근한 이미지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누가 봐도 날씨 좋은 동네에 사는 쏘쏘쏘핫핫핫 라티나 미국인이다. 새삼스레 배우란 얼마나 변화무쌍한지를,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끌어낼 수 있는지를 떠올렸다.


 올드 돌리오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멜라니가 묻는다. "in what sense are they your parents(어떤 점에서 그 사람들이 네 부모인데)?". 그러게 말이다. 우리는 어떤 지점에서 부모를 부모라고 받아들일까. 유교문화와 함께 자라서 그런지 이런 류의 생물학적 가족은 개나 줘버리는 이야기에 유독 쾌감을 느낀다. 'Kajillionaire'의 멜라니는 내가 본 영화 중에 가장 평범하지만 슈퍼 히어로 같은 캐릭터였다. LA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스타일의 젊은 여성이 세상을 구하는 영화는 별로 많지 않다. 시나리오에도 쓰여있듯 멜라니는 로버트와 테레사가 싫어할 만한 예쁘고 핫한 '평범한' 사람인데, 이런 캐릭터가 올드 돌리오의 삶을 바꾼다는 게 너드들을 더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사실 총알을 다 튕겨내는 슈퍼 히어로보단 멜라니 같은 사람이 우리의 하루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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