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은 다르게 살아보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할 수 있을까

by 소요

매년 새해 목표는 ‘열심히 하지 않기’,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않기’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었고 늘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좌절하고, 소진되는 일상을 반복했다. 늘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더 노력해서 나를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고 거기서 얻는 보상에 만족감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내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버려질 것 같다는 생각, 사회에서 도태되어 낙오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더 열심히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이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남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은 더욱 강화되었다.


나에 대한 높은 기준에 대해 심리상담에서 참 오랫동안 다루었다. 나는 선생님께 높은 기준을 깨버리고 싶다고, 그래서 압박감에서 자유롭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니 선생님은 과연 내가 그것을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것이 맞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실제로 나는 높은 기준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서 얻은 결과에 꽤나 만족감을 느끼고 살았다. 낮은 자존감과 높은 기준은 서로를 강화하고 상승시켜서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실제로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을 그만두었을 때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더니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모습일까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만약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을 그만둔다면,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생길 텐데, ‘유능한 사람’이라는 평가에서 멀어질 수도 있는데 내가 그것을 마주할 용기가 있을까 두려웠다.


상담선생님께서는 내가 이미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거기서 벗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보상이 크기 때문에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하셨다. 나의 내밀한 속내를 들여다보면,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수용할 용기 없이, 그저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바뀌기만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정말 변할 용기가 있느냐고, 있는 그대로의, 조금 부족한 나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잘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지 않는다면 내가 살아갈 가치가 있는지, 사랑받을 이유가 있는지 스스로 대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채찍질해서 얻은 보상이 나 스스로를 사랑하게 하는 자양분이 아니라,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전제의 확실한 근거가 되어버려 나를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를 그만 갉아먹고 싶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가 가장 무의식이 살아 있는 시간이라고 하던데 나는 늘 자책하며 잠을 깬다. 어제 그러면 안 됐었는데, 오늘은 실수하지 말아야지, 더 친절하게 대해야지, 나는 왜 그 사람만큼 사교적이지 못할까. 하는 자책들이 밤새 머릿속에 떠다닌다. 너무 무의식적이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자책들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어 우울에 빠지고 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나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딱히 안 좋은 일이 있는 게 아닌데도 자주 우울에 빠지는데, 숨 쉬듯이 이루어지는 스스로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 때문인 것 같다. 짧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몇 번이나 나를 다그치고 비난을 했는지 모르겠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나를 비난하여 나를 작아지게 하는 내 속의 자아를 그만 놓아주고 싶다. 정말 남은 인생은 다르게 살아 보고 싶다. 올해만큼은, 조금 달라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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