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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스테이지 Oct 03. 2021

영화 스태프로 회귀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내 커리어

기본적으로  여유 있는 삶에 동경 하지만 실제에선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불안한 사람이다.

편하고 안정감이 지속되면 행복감을 느껴야 하지만 뭔가 지체되고 뒷처진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내 마음이지만 알다가도 모르겠다.


회사생활이 적응이 되니 내 근본적인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코로나 19로 공연업이 힘들고 나서 더 불안감은 커지기 시작했다. 내 주요 업무였던 해외투어는 끊기고 국내의 일도 줄어들어 사원으로서의 회사생활은 전반적으로 여유 있어졌다. (물론 윗분들은 애가 타겠지만)

감사하게도 해고 없이 지금껏 월급을 받으며 아무런 문제 없이 회사로 출근했다.


하지만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디자이너의 생을 살면서 작업이 줄어들고 내 포트폴리오가 적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 위기를 느끼곤 한다. 회사 출근으로 채울 수 없는 무언가는 나에게 다시금 작업을 하게끔 환경을 바꿔야만 다시 내 디자인에 활기를 넣을 수 있겠다 싶었다.


정규직의 회사원. 이 메리트를 뛰어넘을 만큼의 매력적인 작업이 무엇일까 근 두 달을 고민했다. 내 실력을 마음껏 뽐내면서 적당히 쉼이 있는 그런 직업을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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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회생활은 영화미술팀의 막내였다.

영국에서 무대디자인을 전공하고 한국에 돌아오니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던 그때 눈에 들어왔던 건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였다.

각 공간들의 내러티브를 한 컷에 담아낼 수 있는 그 직업이 무엇인가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는 영화미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박훈정 감독의 영화 마녀 미술팀에 합류하여 내 첫 필모그래피를 만들었다. 그때 당시에는 작업도 그렇고 사무실 생활도 그렇고 너무 어려운 지점들이 많았다. 체력적으로 기본 12시간 이상의 고강도 컴퓨터 그래픽 작업과 현장에서는 휴일 없이 계속된 이동과 세팅이 우리 팀 모두를 지치게 했었다. 대략 7개월을 미술팀으로 근무하면서 얻었던 것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하더라도 끝낼 수 있는 집념과 끈기, 그리고 버티면 내 이름이 박혀있는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영화를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말하듯 시간이 지나니 그 순간들은 모두 미화되고 추억이 되었다.

손이 부르트고 잘 자지 못해 눈이 벌겠던 많은 날들 그 이유에선지 나는 정직원을 버리고 다시 그것을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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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 번째 퇴사를 했다.


영화-인테리어-콘서트 공연 이렇게 세 개의 다른 분야와 다른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퇴사를 했다.

전에 내가 쓴 글에선 구직에 열심히 노력해서 프로면접러가 되려나 싶었다. 그런데 이제 돌아보니 난 프로퇴사러가 아닌가 싶다. 입사와 퇴직을 반복한 지 이제 5년째, 다시 돌아 영화 미술팀에 자기소개서를 내밀었다.


떠났던 분야를 다시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도전정신과 자신감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깨닫게 됐다. 새로운 분야와 직장의 사람들을 만나 나를 소개하는 순간에는 왜 다른 직장을 포기하고 다시 이 분야에서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는지 하나하나 설명하고 내 선택의 당위성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나의 선택에 후회가 없음을, 선택과 동시에 열정이 다시 타오르고 있음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남들에겐 이전에 경력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나의 모습이 바보같이 보일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말한 동료도 있다. 이 힘든 걸 알면서도 다시 막내가 되는 걸 선택한 너는 참 바보 같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선택에 후회는 없다.


성장의 단계는 계단의 형태라고 한다.

일자 형태의 눈에 띄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하는 구간을 지나다 보면 급격히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계단 하나가 앞에 놓인다. 그 하나의 계단을 만들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다른 환경에 데려가 보기로 한다. 그렇게 접한 새로운 환경에서 다음 계단을 만나기 위해 또 일자 형태의 노력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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