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로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이 공기 중으로 감쪽같이 증발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크리스마스 기적이란 게 존재한다면 크리스마스 전에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봤지만 오늘까지도 여전히 행방불명이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매년 가족과 친구가 있는 한국과 독일로 선물을 보냈었건만 이런 일은 겪는 건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에 사는 동생이 12월 초에 한국으로 잠깐 들어간다 해서 부랴부랴 가족들 선물을 모두 사서 독일로 보낸 게 이 사건의 시발점이었다. 부지런을 떤 게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엄마 선물부터 제부 선물까지, 소포는 말 그대로 종합 선물 세트였다.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칠 때 아주 잠깐 ‘만약 이 소포가 사라진다면’이라는 생각에 아찔했지만, 여태까지 별일 없었는데 하며 빨간 등을 켜고 신호를 보내오는 직감을 외면했다. 지금까지도 가장 후회하는 게 하나 있다면 그때 우체국 보험을 들어놓지 않은 것이다.
소포가 독일에 도착했다고 우체국에서 메일이 왔다. 보낸지 3일만 이었다. 여태껏 이렇게 빠른 속도로 도착한 적은 없었는데 모든 게 계획보다 더 순조로웠다. 돌이켜보면 거기서부터 수상했다. 이제 동생은 트렁크에 이 모든 선물을 잘 챙겨 넣고 인천행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 내 대신 산타가 돼서 선물을 나눠주면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기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뭐 어떤가. 가족들이 기뻐하고 행복해할 모습에 모습에 신이 났다. 단 한 가지 걸리는 건 연락이 없는 동생이었다. 떠나기 전에 바빠서 그런가 싶었지만 받은 다음 날에도 연락이 없었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받았으면 말을 해야지.’ 평소 동생 같지 않은 모습에 놀라는 한편 괘씸한 마음도 살짝 들어서 연락을 했더니 동생에게서 예상치 못한 답변이 왔다. ”소포? 아무것도 안 받았는데. “ 무슨 말이야. 받았다고 우체국에서 메일도 왔는데. 그때부터 길고 긴 추적이 시작되었다. 동생이 송장 번호로 독일 우체국에 연락해 확인하니 전혀 다른 사람이 수취인으로 나와있었다. 심지어 우체국 직원은 소포가 잘 배달되었는데 무슨 문제냐며 동생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소포를 보낸 프랑스 우체국을 찾아가자 국제 우편이라 담당 부서에 전화해 분실 신고를 하라는 답변만 들었고, 전화로 분실 신고를 하자 조사를 시작해 40일 이전에 결과를 알려준다는 말뿐이었다. 잔뜩 망가진 기분으로 회사에 가서 이 얘기를 하니 프랑스 동료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크리스마스 전에 소포 도난은 굉장히 자주 있는 일이야. “ 속으로 내심 예상은 했지만 믿지 않으려 했던 일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프랑스에는 우체국 소포 도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분실된 소포의 양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일일이 조사를 할 수도 없어 대부분 해결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 끝난다.
그렇다. 내 소포는 분실이 아니라 도난을 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찾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했다. 체념을 하려는데 3일 만에 연락이 왔다. 소포를 찾았으니
프랑스로 다시 되돌려 보낸다는 통지였다. 내가 보낸 소포가 다시 돌아온 다는 건데 마치 산타에게 선물을 받는 것처럼 기뻤다. 소포가 돌아오면 이번에는 한국으로 부쳐야지. 그러면 크리스마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생각보다 예기치 못한 해피엔딩에 안도하며 소포를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사건의 급작스러운 전개 역시 불안한 조짐이었다.
프랑스에 도착한 소포는 집에 사람이 이틀 연속 없었다는 이유로 우체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우체부가 집에 들렀다는 날짜는 내가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던 날이었고, 누구도 벨을 울리지도 전화를 하지도 않았다. 우체국에 소포가 있다고 해서 그나마 일말의 희망을 갖고 갔더니 직원은 찾아도 없다고 했다. 낙담한 내 표정을 본 직원은 심지어 일반인은 출입 불가능한 창고로 나를 데려가 직접 찾아보라고까지 했지만, 거기 쌓인 수 백 개의 비슷비슷한 소포를 보는 순간 엄두가 나지 않아 조금 찾다 말았다.
우체국 직원은 내 전화번호를 따로 종이에 적으며 찾으면 연락을 준다고 했다. “기다릴게요.”라는 내 말에 빈번하게 겪는 일인지 안쓰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표정에서 그냥 포기하는 게 좋을 거예요,를 읽을 수 있었다. 그 후로 이삼일에 한 번 꼴로 우체국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을 하곤 했다. 혹시 나가 역시나로 변하는 순간은 늘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기로 다짐했어도 씁쓸하긴 매한가지며, 정체 모를 누군가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아니 도대체 어떤 놈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훔친다는 말이야! 꼭 벌 받을 거야 ‘
하지만 오늘 모든 미련을 버리려 한다. 분실이라면 언젠간 돌아올 것이고. 모든 사람들의 예상처럼 도난이라면 이제 그를 용서할 것이다. 그의 동기가 절박함에서 비롯된 행위였는지 아니면 단순한 탐욕과 욕심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얼굴도 모르는 그를 원망하고 미워하며 저주하는 것도 오늘부로 멈추겠다. 도둑이 벌을 받기를 기도했지만 어쩌면 내가 벌을 받은 건 아닌가 생각도 했다. 한 해 동안 알게 모르게 가졌던 이기적인 마음에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기는커녕 내 선물도 빼앗은 게 아닐까 하고.
비롯 잘못된 수취인이라도 기쁨을 주기 위해 준비했던 선물이 크리스마의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 연말마다 이쯤이면 마음을 담아 작은 기부를 하고 있다. 노숙자 분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곳에 후원금을 보내는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나만의 연례 의식이다. 나와 우리만 잘 먹고 잘 살자고 바쁘게 한 해를 보낸 것에 대한 일종의 반성이기도 하고, 행동하는 모든 사랑에 대한 비루한 변명이기도 하다. 세상의 사랑은 결국 돌고 도리라 믿으며. 이 글을 읽는 이들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친애하는 도둑에게도 메리크리스마스, 행복한 성탄절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