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타국에 오면 모든 것이 새롭겠지만, 제일 감각적으로 낯설다고 빠르게 인지하는 건 아마 음식이 아닐까 싶다. 모양새, 냄새, 맛, 질감. 굳이 한번 더 생각하지 않아도 가장 기본적인 감각 그 자체로 ‘익숙하다’ 혹은 ‘다르다’를 단번에 구분할 수 있을 테니.
강경 한식 파인 나로서는 동남아의 음식에 적응하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깔끔하고 얼큰한(내가 생각하기에) 한국 음식에 비해, 일단 대부분 동남아 음식은 향부터 코끝을 찔러버리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되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가뜩이나 더운 나라에서 야외 푸드코트 개념인 호커센터에서 밥을 먹는 문화는 더더욱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왕 이 나라에서 거주하는 것이 확정된 이상, 음식이 해결되지 않으면 많은 것들이 불편한 법! 익숙하지 않다고 고개를 돌리고 있으면 결국 나만 손해다. 야채가 싫다고 입을 굳게 닫고 고개를 돌려봤자 영양소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키가 크지 않는 건 결국 편식하는 당사자에게 일어나는 일과 같은 것처럼. 하지만 로컬 음식에 도전하고 싶어도 어느 호커센터 음식이 맛있는지, 어느 식당의 어느 메뉴가 맛있는지 모른다면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곳의 음식에 마음을 열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역시 이곳에서 사귄 싱가포리언 친구들 덕분이다.
하필 내가 새 학교에 입학한 시기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이다. 가뜩이나 학사도 3년밖에 안되는데 그중에 2년은 코로나 때문에 온*오프라인 혼합 수업으로 날려버렸다. 다행히 학교에 갈 때마다 몇 번 마주한 친구들과는 금세 사귀기는 했지만, 그때는 영어도 짧아서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수업이 끝난 후에 밥을 같이 먹는다고 해도 대화를 이어갈 자신이 없어서 바로 집에 간 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역시 오래 버티면 승리한다던가? 3년 정도 꿋꿋이 버티다 보니 영어가 조금 트인 후 비로소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적어졌다. 여전히 엉망진창인 실력의 영어지만, 그래도 꿋꿋이 친구들과 hang out 한 게 나에게 도전이라면 도전일 것이다. 비록 91%의 내향성을 가진 슈퍼 내향형 인간이지만 밥 먹고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또 다른 세계의 확장이다. 어쨌든 친구들에게 최근에는 로컬 음식에 관심이 많이 가고 Try 해보고 싶다고 말하니 수업 후 숨겨져 있던 로컬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요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여전히 낯선 언어, 여전히 알아야 할 것들이 넘치는 새로운 문화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음식들이지만 만약 내가 두렵다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나의 세계는 몇 년 전 과거에 그대로 고여있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 본디 오래 걸린다.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편인데 내 마음이 진정으로 열리기까지는 참으로 오래 걸리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지만, 타국 생활 4년 차 - 드디어 내 마음이 조금은 이 나라를 향해 열렸다. 도전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흥미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이왕 마음이 열린 김에 조금 더 도전하는 자세로 이 나라에서 지내려고 한다. 이곳의 모든 생활에 적응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만 혹시 모르지. 도전을 한 두 개씩 늘리고 성취하다 보면 먼 훗날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 나에 도달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