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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Oct 30. 2022

여권 없이 국경 넘기

여권 없이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해 본 사람이 있을까? 나는 그 쉽지 않은 시도를 해 봤다. 브라질로 향하는 아르헨티나 국경에서였다.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일정이자 브라질의 첫 번째 일정은 이과수 폭포 관광이었다. 이과수 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경에 있는 폭포로 보통 어느 쪽에서 시작하건 반대편으로 넘어가 양쪽을 다 보는 것을 선택한다. 자동차를 타면 바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볼리비아의 라파즈에서부터 알게 된 Y와 이과수 관광을 같이하기로 했다. 역시나 같은 도시에서 처음 알게 된 H는 우리보다 하루 먼저 일정을 소화해서 먼저 브라질로 넘어갔다. 관광을 하는데 모든 짐을 다 지고 이고 갈 수 없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숙소에 짐을 맡기고 브라질 이과수를 보고 다시 돌아와 짐을 찾아 브라질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인 코스다. 우리는 중요한 짐은 숙소에 맡기기 찝찝하니, H에게 먼저 브라질로 가져가 달라 부탁하고 가벼운 짐으로 관광을 시작했다.


이과수는 참 거대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서도 그 안에서 물이 보이고 계속 보였다. 제주도의 천지연 폭포 300개 정도 합쳐놓은 거 같았다. 나한텐 천지연 폭포가 다였는데. 거대하고 웅장했다. 브라질 쪽의 이과수를 보기 위해 택시를 타서도 한참 동안 흥분감을 감추지 못한 우리는  창원 출신의 Y의 사투리가 옮아 어느새 나도 “이야 진짜 멋지다!! 죽인다!!” 을 연신 외쳤다. 그러던 중 갑자기 Y가 심각한 얼굴로,



“언니야 근데 브라질 이과수 가는데 여권 필요하나...?” 라고 했다.  뭐 이렇게 당연한 소리를 하니 친구야.


“...? 당연하지, 나라를 넘어가는데.”


갑자기 Y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언니야 나 어떡하지 나 여권 H언니한테 맡겼다.”


“미쳤나 진짜. 바보가!!!”


나는 서울 태생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창원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사투리로 소리를 질렀다. 한참 제정신이냐 어떡하려 그러냐? 소리를 한참 지르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H에게 맡긴 가방에 여권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바보천치 두 명은 ‘이과수’ 라는 단어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한데 묶어 버려서 이곳은 ‘두 나라'고 그러니 ‘국경’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거기서 다시 아르헨티나 이과수로 넘어와서 큰 짐을 챙겨서 다시 나가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잠깐 보고 오는 거로(?) 생각을 한 것이었다.


이럴 수가. 두 바보는 생각도 없고 로밍도 안 했고 스페인어도 포르투갈어도 못한다. 둘이 당황해서 난리 치고 있는데 택시 기사는 꿈에도 모른다. 이 외국인 두 명이 여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국경 앞에 가서 손짓·발짓하면서 상황을 설명하는데 택시 기사의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도 항상 갖고 다니는 것이 너네는 왜 없니... 그러게, 말입니다.



짐을 가진 H가 와이파이 없는 지역에 있었으면 우리는 국경에서 밤을 새워야 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H에게 연락이 돼서 그 친구는 국경까지 우리의 여권을 들고 달려와 줬다. 그 친구도 국경으로 친구 여권 들고 달려오기는 처음일 거다. H는 5분 만에 도장이 3개가 찍히는 일을 만들게 되었고 우리는 여권이 없어 국경으로 친구를 부르는 웃지도 못할 일을 만들었다. 긴장이 폭발할 것 같던 시간이 흐르고 택시를 타고 달려 국경을 넘어 우리에게 오는 H를 보는 순간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우리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만나기만 하면 그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지금도 모이면 저것보다 좋은 안주가 없다. 모든 실수는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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