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늘 Oct 30. 2022

누가 마추픽추를 안가?

이번 여행으로부터 5년 전에 멕시코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칸쿤에서 치첸이사라는 마야 문명 유적을 본 적이 있다. 마야 문명에 대해 잘 아는 게 없어서 그랬는지 내 눈엔 거대한 돌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책도 읽고 다큐멘터리도 챙겨 보는 등 공부를 했는데도 영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게다가 마추픽추를 가는 게 저렴하지 않다. 봉고 버스, 트래킹, 기차로 가는 방법이 있는데 버스가 제일 싸긴 하지만 멀미가 심해 절대 가고 싶지 않은 방법이고, 의미 있게 고생하며 트래킹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하기엔 우기여서 가는 길이 녹록지 않았다. 그럼 기차를 타고 갔다 오면 되는 것인데 그 가격을 지불하고 갈 정도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탓이다. 그래 놓고 마추픽추에 갔다. 너무 쉽게 도발에 넘어간 걸까?



마추픽추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쿠스코라는 도시를 거친다. 쿠스코는 작은 도시로 마추픽추로 가기 위한 온갖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역시 고산지대로 처음에 스페인에서 온 DJ 와 둘이 방을 썼는데 그 친구와 나 둘 다 고산병을 심각하게 앓아서 둘이 번갈아 가면서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고 거의 며칠을 침대에 쓰러져 있었는지 모르겠다. 고산병 동지였다.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한 후에는 기운이 없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화장실을 갔다 와서 눈만 마주쳐도 서로 알겠단 표정을 짓곤 했다. 나의 동지는 나보다 빠르게 회복이 되어 삼일 정도 후에 마추픽추로 떠났다. 그 방에 혼자 남아 고산병과 싸웠다. 매일 과호흡과 몸살과 복통에 시달렸다. 매일 아침의 내 일과의 시작은 방을 나와 프런트로 가서 ‘하루 더’를 외치는 거였다. 나중엔 머쓱해져서 ‘이틀 더’로 늘린 적도 있지만 매일 나와서 ‘하루만 더’를 이주째하는 보면서 프론트 직원은 웃었다.


조금 나아지고 나서도 기운이 없어서 매일 마지막 잎새처럼 누워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고 조금 기운이 나면 시장엘 나가서 우리나라 삼계탕처럼 고아서 만든 닭죽 한그릇을 먹고 나니 기운이 났다. 슬슬 이제 이제 관광해야 할 때다. 광장 뒷쪽 산에는 하얀색 예수님상이 있는데 일단 거기를 올라가는 게 관광 코스였다. 하지만 올라가는 길은 무조건 택시를 타야 하므로 바로 남미 단톡방에 글을 남겼다. 



‘오늘 저녁에 화이트 블랑코 보러 가실 분?’ 



화이트 블랑코에서 내려와 수다를 떠는데 다들 마추픽추를 갔다 왔거나 갈 예정인 사람들이었다. 나는 갈 생각이 없다고 했더니 다들 놀랐다. 그중에 한 명은 마추픽추를 안 갈 거면 쿠스코에 왜 온 거냐며 빈정거리기까지 했다. 마음이 굳건했기에 별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 빈정거렸던 친구는 이미 마추픽추를 다녀왔기 때문에 금방 떠났고 남은 사람들끼리 금방 친해져 계속 모여서 수다도 떨고 같이 근교도 놀러 다니면서 무척이나 친해졌다. 그렇게 친해지다 보니 마추픽추라는 이박삼일의 여행을 함께 떠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마추픽추에 갈 생각은 없었는데 이 친구들이랑 여행하러 간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가고 싶어졌다. 내 의견을 번복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있었지만 그래도 함께 하고 싶어 동행을 결정했다.


막상 예약해 놓고 나니 너무나 신나는 것이었다. 여행에 와서 갑자기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과 또다시 떠나는 여행 안의 여행이 돼버리자 너무 설레였다. 큰짐을 두고 작은 가방을 또 챙겨 떠나는 그 설렘이 엄청났다. 우리는 신나서 라면에 귀하고 비싼 소주까지 사서 야무지게 챙겨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먹고 마시고 늦게까지  놀다보니에 맞춰 올라가야 할 시간을 놓쳐 버렸다. 우리는 그냥 우리끼리 천천히 놀면서 올라가자며 가이드를 돌려 보냈다. 늦장이 오히려 호재가 될 줄은 이때는 몰랐지만.



그 마을에서 우리는 시간을 맞춰 기차를 타고 마추픽추로 올라갔다. 기차는 우리나라 기차와 별 다별다른 것이 없었다없었다.  매번기나 타고 아주 높은곳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의 이 굵은 산맥들을 가까이서 느끼자니 그 자연의 장엄함이 너무 거대해서 그저 그거를 온 몸온몸으로기에 바빴다. 스위스의 산맥과는 느낌이 달랐다. 얇은라면 더 두껍고 거칠었다. 마주 보고 자리로 맞은 편에는 모녀가 앉아있었다. 엄마가 생각이생각이 안 날 없었다. 나도 언젠간 엄마랑 다시 와야지.


내려서 또 버스를 타고 한참을 올라갔다. 멀고도 먼 곳이어라 마추픽추. 어차피 가봤자 돌덩어에 산덩이인 것을... 기대도 없어 별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늦잠을 자고 올라온 터라 아주 이른 아침 아니면 주로 안개가 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더 기대가 사라졌다. 아니나 다를까 안개가 한가득 껴 있었다. 워낙 높은 곳이라 내려서 우리는 마추픽추 첫 봉우리로 올라 올라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탄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첫 봉우리 끝에 딱 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히면서 마추픽추의 전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그 순간 눈물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자연의 장엄함. 인간의 위대함. 문명의 역사가 온몸으로 다가왔다. 너 이런데도 나 안 보려고 했어? 마추픽추가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걸 느낀 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다들 눈물을 터트렸다.


변죽이 좋은 우리들은 그사이에 껴서 한국인 가이드분이 하는 설명을 들을 수가 있었다. 몇 년 전에 감동을 못 받은 건 영어 가이드의 설명을 다 이해하지 못했던 걸 지도...? 영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은 어째 매번 드는데 매번 이렇게 안 하는지.



걸어 내려오던 길들은 한국의 산들이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스케일이 조금 더 컸다. 사람도 없고 공기도 좋은 곳에서 우리는 노래도 부르고 크게 웃고 가끔은 뛰기도 쉬기도 하면서 그곳을 내려왔다. 우리가 탔어야 할 기차는 놓쳤고 우리는 이제 내려가는 마지막 기차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우리를 앞쪽으로 안내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오히려 늦어서 업그레이드를 받아서 기차 일등석에 앉게 되었다. 자리에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코스요리였다. 이게 무슨 일인지. 게다가 일등석에는 테라스가 있었다. 그 산맥을 테라스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바람을 맞으면서 내려오는 그 길은... 정말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도 그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 바람, 그때 흩날리던 내 머리카락 뭐 하나 잊을 수가 없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일찍 올라갔던 다른 일행들은 안개가 껴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심지어 우리 앞의 기차는 1시간 이상 연착이 되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들이 가는 그곳이어서 갔었다면 실망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가야 하는 시간에 움직였다면 조급함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여행으로 가고 나니 여행 속에 유명 유적지를 잠깐 갔다 온 기분이다. 인생도 여행도 나만의 이유로 나만의 속도로 간다면 언제든 어느 곳이든 분명 즐거운 여정이 되지 않을까?

이전 08화 이제 내 손을 잡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