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에는 소금사막 우유니가 있다. 해발 5,000m에 달하는 고산지대에 사막이라니. 멀미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도시였다.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14시간을 깨지도 않고 기절해서 자고 일어났는데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배탈이 계속되더니 물만 마셔도 설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막에 화장실이 있을 리도 만무하고 이런 상황에 어떻게 투어를 나가느냔 말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계속 있는다고 상태가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도시가 매우 작고 볼거리도 딱히 없는 데다가 숙소 컨디션도 별로였다.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다음 도시로 빨리 넘어가는 것이 상책일 거 같아 바로 투어를 신청했다. 시작은 사막의 낮을 구경하는 데이 투어였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건 외국인이건 누가 옆에 있으면 말을 걸지 않고는 못 배기는 파워 외향형으로 평소 같았으면 서로의 신상정보를 늘어놓고 친해지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멀미 왕이 고산지대에서 봉고차를 탔다? 그냥 좀비가 한 마리 탔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좀비가 바로 나예요. 재밌겠다는 기대보단 끝나는 시점까지 배가 안 아파야 할 텐데라는 생각뿐이었다. 친한 친구들이랑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선글라스 쓰고 조수석에 앉아 애써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고 뒷자리에서 사람들이 수다 떠는소리만 더 귀에 선명히 들려와서 더 서러워졌다. 나도 놀고 싶은데. 질문이 오갈 때 혼자서 머릿속으로 대답하고 질문을 던지면서 혼자 속으로 웃었다. 서러웠다. 나도 말 잘하는데! 하지만 자지 않으면 토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이미 극에 달한 고산병으로 인해 거의 탈진 상태였고 머리는 둥둥 울려서 괴로웠다.
휴게소에 들리거나 기념품점에 들리면서 잠깐 내릴 때 한 한국인 부부가 말을 걸어왔다. 말을 하게 됐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으나 기력이 없어 신나 하지도 못하고 통성명이나 조금 하고 말았다. 감질나게 잠깐 이야기 나누고 뒤에 사람들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더 고역이었다. 끼고 싶은데!!! 무지막지하게 한결같이 광활한 소금 사막의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다. 눈을 질끈 감고 봉고차를 견뎌 데이 투어를 겨우 마쳤다. 들어가서 라면이나 먹고 또 자야겠다... 하면서 차에서 내리는데 통성명을 한 부부의 B언니는 나에게 자신이 있는 숙소에 와서 같이 밥을 먹자고 초대해 주었다. 밥이라니.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했는데 식사 자리에까지 초대해 주다니... 천사가 분명했다. 내가 밥에 약해서가 아니다. 아파서 마음이 약해져 있었다. 나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고 숙소로 찾아갔는데 언니는 손이 큰지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대단해. 나는 언니만 찾아서 인사를 했는데 언니는 닭죽을 끓이고 있었다. 닭죽이라니! 나는 여기 와서 뽀글이 라면만 먹었는데.
닭죽은 맛있고 따뜻했다. 몸도 마음도 뜨끈해져서 꽁기 했던 낮의 마음도, 고산병도 싹 나았다. 몇 살 차이도 안 나는 나를 무슨 막냇동생 보듯이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잘 먹었냐며 더 먹으라고 했다. 그때 언니 등 뒤에 있는 날개를 봤다. 내 마음속의 천사. 역시 엄마가 먹을거 주는 사람이면 다 좋아한다고 걱정했던 게 괜한 걱정은 아닌 거 같다. 밥 한번 먹자고 해준 게 무슨 큰일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이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이가 꽃이 되듯이, 언니가 불러주고 먹여줘서 나는 고산병도 이겨냈고 괜히 혼자여서 서러운 기분도 물리치고 그 이후에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잘 놀 수 있었다. 나는 그 이후에 절대 혼자 있는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다. 누구라도 소외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지 않다. 한마디의 말이, 먼저 내민 손이 얼마나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