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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Oct 30. 2022

등가교환의 법칙을 깨는 법

나는 등가교환을 중요시 한다. 무언가를 받으면 그만큼 돌려주려고 한다. 그 마음이 강하다 보니 무언가를 받는게 선물이 아니라 갚아야 할 부채로 느껴진다. 이게 얼마지? 내가 이걸 갚을 수 있나? 내 경제적인 상황 등을 고려하다 보면, 좋은 것을 받을 수록 더 마음이 무거워 진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사랑도, 나에게 부모님과 마찬가지인 이모와 이모부의 사랑과 지원도 부채감으로 다가와 오랜시간을 죄책감으로 보냈었다. 정점을 찍은 것은 캐나다에서 정희 이모에게 가방을 선물로 받은 일이였다.


쿠바 아바나는 살아보지도 않은 우리나라 60년대가 절로 떠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이건 아니였던거 같다. 결국엔 며칠을 지내면서 쿠바에 정이 많이 들고 지금도 그리워하시지만 첫인상으로 인해 스케줄을 조정하는 수 밖에 없었다. 대폭 쿠바 일정을 줄이고 다음 일정인 캐나다 일정을 늘렸다. 캐나다 토론토에는 엄마의 오랜 친구분이 살고 계셨다. 그 집으로 가는 일정으로 아무리 친구집이라고 하더라도 며칠씩 있는 것은 너무 민폐라고 생각이 들어서 길게 있기를 거부 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엄마를 보아 하니 일정을 다시 늘릴 수 밖에 없었다.


 기억엔 없지만 어릴 적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는 엄마 친구 정희 이모. 처음 보자마자 엄마를 보고는 본인의 아버지가 얼마나 자기관리를 잘 하시고 혼자서 정정하셔서 딸인 본인의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다. 항상 엄마의 건강에 안절부절 못하는 나로써는 엄마에게 잔소리도 아니고 조언도 아니면서 조언인 말을 자연스럽게 하시는 그 재치에 나는 정희 이모에게 첫눈에 반할 수 밖에 없었다.


몇날 며칠을 이모네 집에서 보내면서, 이모는 첫 인상 만큼이나 무척이나 편안하게 해 줬다.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친절하게 나를 챙겨주셨고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하느라 본의 아니게 지쳐있던 나는 이모의 케어로 쉴 수 있었다. 그러다 우리는 아울렛으로 쇼핑을 갔는데 거기서 이쁜 가방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모는 나에게 가방을 사줬다. 나는 지금까지도 가방을 10만원을 넘게 주고 사 본적이 없다. 그런데 태어나서 처음본 엄마 친구가 내가 엄마 친구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이쁘다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가방을 사주신 것이다.  나는 정말 어쩔줄을 몰랐다. 엄마는 기쁘게 받으라고 했지만 나는 영 그게 안되서 이모에게 돈을 내밀었다. 이모는 괜찮다고 이쁘게 쓰라고 부드럽게 말해 주셨지만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그러다가 선물 하나도 편하게 못받아들이는 나 자신과 여행동안 받은 많은 호의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원래 나는 많은 부분에서 예민하게 계산적이였다.  받은게 무거운 만큼 다시 나눠서 가볍게 만들려고 했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너무 많이 줘서 바닥에 뜰 정도로 가볍게 되지 않으려고 했다. 그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똑똑한 거라 생각했다.


여행을 하면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신세를 많이 졌다. 시간에 맞춰오지도 않는 버스를 초조하게 기다려야 할 때, 나는 온갖 사람들에게 내 버스에 대해서 물었고 주변 사람들은 다같이 내 버스를 찾아주었다. 자신의 시간을 할애 해 기다려 주었고 내 버스가 왔을 땐 다같이 기뻐해주고 떠날 땐 인사를 해 주었다. 더운 나라로 가는 친구들은 추운 나라로 가는 나에게 자신의 비싼 옷들을 건내 주었고, 가방을 건내 주었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갖기 보내는 친구들은 밥을 사줬다. 여기 저기서 많은 호의와 베품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중 일부에겐 이 은혜를 평생 갚을 수 없을것이다. 다신 볼일이 없을테니까 말이다.


너무 긴박한 상황에서 순식간에 도움을 받거나, 일정이 짧으니 스처가는데 좋은 것들을 나눠준 사람들, 다시는 만날일이 없는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으면서 때로는 똑같이 갚을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에게 다시 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움은 세상을 돌고 도는 거라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돌고 도는 도움들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게 아닐까, 돌고 돌아 결국엔 나에게 도움을 준 친구들한테도 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여행 이후로 ‘받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누군가 예상치 못하게 나에게 생일에 기프티콘으로 이런 저런 선물을 했을 때도 전에는 이게 얼마인지 찾아보고 똑같은 것을 똑같이 생일에 해 주려고 신경을 썼었다. 받아도 기쁨보다는 부담이 컸었는데 이제는 받았을 때 너무나 기쁘다. 온전히 그 기쁨을 누린다 나를 생각해서 선물을 고르고 보내고 했을 그 친구의 마음도, 이 선물을 쓰면서 그 친구를 생각하게 될 나도 감사하다. 그 친구의 생일에 꼭 선물을 갚진 않는다. 전엔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어떻게든 무리해서 선물을 비슷하게라도 갚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않는다. 대신에 내가 그 친구가 생각이 나고 무언가를 해주고 싶을 때면 선물을 건낸다. 생일이든 아니든간에. 나에게 선물을 준적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연이라도 하고 싶다면 선물을 건낸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 똑똑해 보인다는 건 결국엔 타인의 평가다. 나는 결국엔 타인의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아둥바둥 한 것 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 눈에 조금 바보가 된다고 할 지라도 내가 행복하다면 괜찮은 바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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