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
1. 리마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객들
2. 동갑내기 친구 은
3. 리마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싶다
1. 리마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객들
와라즈로 가면서, 아주 멀고도 낯선 나라에서의 초행길이 두려워 버스터미널에서 동행을 구해 가긴 했지만 한 명이였고 숙소도 각자 이미 구해 놓은 데가 있어서 한 끼 정도 밥을 같이 먹었던 것이 다였다. 리마에서 내가 머물기로 한 숙소는, 게스트하우스인데 거의 한국인 숙소라고 불릴 만큼 은 한국인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리마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할 생각이었던 것만큼, 여기서 한국인들을 만나고 조금 정보를 얻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가 지냈던 방에는 2층 침대가 3~4개쯤 들어갔던 거 같다. 그리고 같은 방에 부러 다 같은 국적을 넣어 주는 건지 우리 방엔 한국인들밖에 없었고 이 먼 곳에서 이렇게 많은 한국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그다음부터 계속 생각했다. ‘한국인은 어디에나 있다.’
이 친구들을 만나고 처음 느낀 건, 정말 이 먼 곳까지 여행 온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것이었다. 대학생, 휴학생, 취준생, 온갖 휴가를 이어 붙어 일주일을 이 먼 곳까지 온 회사원, 이직 중간에 온 사람, 프리랜서, 그리고 나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온 사람.. 비행기를 타고 거의 하루를 날라 온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낯선 곳에서 같은 말을 쓴 다는 것 자체가 어찌나 반갑던 지, 무척 정이 가고 좋았다.
여행을 나오면서 내 주변엔 아무도 이 먼 곳까지 여행을 오는 사람이 없었다. 남미는 너무 멀고, 낯설고, 위험한 곳이었다. 게다가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세계일주를 나온다는 것이 책에서나 보는 미친 짓 같이 느껴졌다. 누가? 대체 누가 이러고 사나 했는데 여기 오니 나 같은 사람들이 한가득 이였다. 대한민국에선 그들도 평범하지만 나와서는 당연하게 몇 달씩 여행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남미와 아프리카 오지 곳곳을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한 낯선 선택을 같이 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동질감이 느껴지고 마음이 편안했다.
2. 동갑내기 친구 은
내가 여행을 오기 전에 제일 많이 알아본 도시는 리마일 것이다. 첫 랜딩 도시이자 아주 낯선 남미의 나라, 페루의 수도. 그리고 내가 아주 놀랐던 사실은, 리마가 알아주는 미식 도시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맛집을 미친 듯이 검색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삼았던 내가 이걸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배낭여행객의 입장에서 너무 비싼 음식점은 무리였고, 어떤 곳은 아얘 2인부터 받아주는 곳도 있었다. 너무 비싸지 않은 선에서 fancy 한 레스토랑을 한 번쯤은 가고 싶었다. 이왕이면 같이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기면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머물던 숙소에서 좋은 친구를 만났다.
은이는 일본에 사는 한국인으로 나와는 동갑이었다. 주변에 친한 언니 동생보다 동갑 친구가 많았던 나는, 동갑에게 조금 더 호감을 느끼고 금방 친해지는 편이었는데 은이도 동갑인 것을 알게 되자마자 금방 말을 트고 친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둘 다 일을 하다 와서 자금 사정이 다른 친구들보다는 조금 여유로웠기 때문에 은이를 꼬셔서 같이 가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흔쾌히 같이 가자 해주어서 우리는 제법 그럴듯한 식당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세비체나 그 집의 시그니쳐 음식을 시키고, 와인과 페루 전통 술인 피스코도 마셨다. 여러 명일 때 보다, 일대일로 있을 때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가 쉽기 마련이다. 우리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지난날의 연애나, 어떻게 일하며 살아왔는지를 동갑내기 시선의 수평선에서 나눌 수 있었다. 우리가 안지 얼마나 됐는지, 앞으로 또 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그 순간에는 정말 서로에게 좋은 친구였다. 세상 멀리 날아와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었다.
*은이는 가명이다.
3. 리마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싶다
리마는 생각보다 굉장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리마에는 거의 쿠스코로 가기 위한 관문 수준으로 여겼기 때문에 3일 정도밖에 있지 않았는데 나의 선택을 굉장히 후회했다. 그때는 첫 도시라 눌러앉을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아마 남미를 브라질부터 시작해 페루로 올라오는 경로였다면 분명 리마에서만 몇 주는 있었을 것이다.
리마는 바다를 끼고 있는 해양도시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내가 있는 신시가지는 생각보다 발달됐고, 쇼핑몰, 멋진 식당들, 극장들이 있다. 그리고 구시가지는 조금 더 노후되고, 유명한 성당 관광지 같은 것들이 있었다.
나는 이런 곳들이 좋다. 파인 다이닝과 길거리 음식이 공존하는 곳. 유기농 마트와 동네 슈퍼가 공존하는 곳. 잘 닦여진 도로 조금 뒤로 가면 있는 후미진 골목골목이 있는 곳이 좋다. 지내기에도 깔끔하고, 저렴하게 음식을 구할 수 있으며, 또 언제든 한 번씩 기분을 내고 싶으면 쉽게 고급진 곳을 찾을 수 있는 곳. 이런 곳이 오래 있기 좋다.
특히 다른 것 보다 식당 때문에 다시 가고 싶다. 어차피 엄마를 모시고 다시 마추픽추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다시 가면 다양한 식당들을 조금 많이 가고 싶다. 다시 간다면 한 한 달 정도는 머물고 싶다. 천천히 있으면서 도시의 이곳저곳도 구경하고, 바다에서 서핑도 타고, 못 가본 다른 구도심도 가보고..
생각하다 보니 리마는 부산과 좀 닮은 거 같다. 바다를 끼는 부근에는 굉장히 비싼 쇼핑몰과 음식점들, 바다 전망이 펼쳐진 높은 집들이 있고, 내륙 안쪽으로 가면 벽화 마을이라던가, 달동네가 있다는 점들. 바다를 끼고 있어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고 맛있는 음식점들이 많다는 점. 바다가 있으니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무척이나 취향저격이다. 언젠가 내가 리마에 머물고 있으면 엄마가 놀러 와서 함께 마추픽추로 여행을 갔다 오는 상황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