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10월 13일, 경쟁법학회에 참석했다. 사실 한국 학회는 늘 뭔가 좀 딱딱하고 눈치보고 평가받는 느낌이 들어서 무섭고 가는 게 꺼려졌는데, 이번에는 같은 연구실 박사님 발표도 있고 또 다음번 학회 때는 내 발표가 있기도 해서 응원도 하고 마음의 준비도 할겸 겸사겸사 용기를 내게 되었다. 망설이다 참석한 모임이 늘 그렇듯 막상 가서 공부도 많이 했고 업계 분위기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래도 집에 와 대자로 뻗으며 역시 나같이 내향적인 사람에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이런 큰 오프라인 학회는 잘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ㅋㅋ 작은 스터디 그룹이나 온라인 세미나가 많았던 시절이 그리운 것은 나뿐인지...ㅠㅠ 예전처럼 작은 혹은 비대면의 모임들이 좀 많아졌으면 했다. 아무튼.
이번 학회는 크게 1부와 2부 세션으로 나뉘어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기업결합 이슈가 다뤄졌고 2부에서는 불공정거래행위 관련 이슈가 다루어졌다. 둘 사이 어떤 일관된 주제 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각 부 각 세션마다 개별 이슈들이 독립적으로 다뤄졌다.
1부 첫 번째 순서에서는 김경연 변호사님이 Illumina/Grail 사건(내 메모)을 중심으로 수직적 기업결합 심사의 강화 또는 경직화 경향을 다루어주셨고, 김규현 변호사님과 안석우 사무관님이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함께 생각해 볼 사건들과 아이디어들을 공유해주면서 한층 더 내용을 풍성하게 해주셨다. 개인적으로 (Illumina/Grail 사건과 비슷한 시기 함께 나온 Towercast 사건을 떠올리면서) 경쟁 정책적 관점에서 신고기준 미만의 기업결합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기업결합 심사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 공동행위 금지 등 다른 수단들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등을 생각해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발표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순수하게 학문적 관점에서) 공정거래법 제5조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을 TFEU 제102조처럼 신고기준 미만의 기업결합 인수에 적용하면 안되는 이유가 뭔지 그리고 구조적 시정조치가 안되는 이유가 뭔지 계속 고민하게 되었는데(참고로 최근 EU는 6월 구글의 광고 관련 사업행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구조적 시정조치 가능성을 밝힌 바 있다. 내 메모) 언젠가 연구해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어 두 번째 순서에서는 주진열 교수님이 (매우 강한 논조로) "킬러 인수(Killer acquisitions)"론에 대하여 비판적 검토를 해주셨고, 이상규 교수님과 조혜신 교수님이 이에 대해 토론해주셨다. 발표를 들으며 한편으로 "킬러 인수"처럼 별칭(epithet) 중심의 접근법이 갖는 위험성에 공감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법의 위법성 평가에 내재하는 오류 가능성(false positives and false negatives)과 정책적 선택(choice) 문제를 고민하면서 현대 주류 경쟁법(주로 미국)이 그동안 너무 긍정 오류를 경계하는 데에만 집중해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현대 경제의 구조적 불평등과 집중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과연 '아직 실증 증거가 부족하므로 나서지 말라'는 접근이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지 약간의 회의감이 들었다. 앞으로는 경제학이나 법학뿐만 아니라 ‘공공 문제 해결’이라는 현대 행정의 시각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부에서는 김혁용 박사님의 가맹사업법 이슈를 포함하여 불공거래행위와 관련된 문제들이 다루어졌다. 먼저 황태희 교수님의 불공정거래행위 체계 개선방안에 대한 발표가 있었고, 이어 박세환 교수님의 EU의 SCI 운용 경험을 참고한 불공정거래행위의 자율규제 방안에 대한 발표가 뒤따랐으며, 마지막으로 김혁용 박사님의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손동환 교수님, 송선 사무관님, 장품 변호사님, 한종연 변호사님의 토론. 개인적인 사정으로 토론 때 자리를 비워 잘 듣지 못하였지만ㅠ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발표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아래).
앞의 두 교수님의 발표는 비교적 친숙한 주제라 편하게 들었다. 발표는 편하게 들었지만... 늘 똑같은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잘 바뀌지 않는 법 현실에는 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불공정거래행위 제도가 정부 주도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도입 운영되어온 규제로서 그동안 성공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불공정성'이라는 모호한 비난에 기초한 주먹구구식 제재를 멈추고 합리적 접근을 취할 때도 되지 않았나... 최근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형사 집행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검찰을 보면서 이러한 아쉬운 마음은 더욱 강하게 들었다. 한국은 왜 이토록 유별나게 긍정 오류보다 부정 오류 위험성을 극도로 경계하는 걸까. 앞으로 연구를 계속하게 된다면 현대 경쟁법에서 벗어난 한국의 제도 설계 배경도 괜찮은 주제가 될 것 같았다.
김혁용 박사님의 발표는 개인적으로 잘 몰랐던 주제라서 흥미로웠다. 내가 이해한 한도에서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박사님의 연구는 (공정거래법의 원칙에 대한 예외로) 가맹사업법이 허용하는 영업지역에 관한 법익이 디지털 플랫폼의 등장으로 침해받는 현실에서(예컨대 깃발꽂기 이슈) 적절한 법적 대응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큰 줄기였는데 공정거래법이라는 매우 한정된 상자에서 벗어나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앞에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요즘 나는 프랜차이즈를 포함한 공정거래의 많은 이슈들이 경제적 효율성이나 법적 제재보다는 공공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이뤄지면 좋겠다고 생각에 꽂혀 있는데 김혁용 박사님이 제기한 이슈는 이런 나의 생각을 더욱 강화해주었다. 앞으로 공정거래법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도를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폭 넓게 접근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학위를 마치고 나면 원래 이러는 건지 아니면 내가 특이한 건지... 요즘 참 아는 것은 없고 괜히 마음은 바쁘기만 하고 잘 해낼지 자신도 없고 그렇다. 이상하게도 지금보다는 박사 과정생일 때가 훨씬 더 마음에 여유도 있고 자유롭고 아는 것도 많은 느낌이고 자신감도 있고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왠지 평가를 받는다는 느낌 때문인지 괜히 더 긴장하게 되고 경계하게 되고. 그래서인지 괜히 학회 참여나 발표도 더 꺼려지고 그렇다. 내 잘못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다른 것일뿐)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이렇게 참여해서 배우고 동향도 살피는 것도 견딜만 한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이따금씩 후기도 남기고.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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