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Overreach or a Striking Balance?
* 아래 내용과 관련하여 최근 제가 쓴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혹시 관련 내용을 활용하시는 분들은 아래 문헌이라도 인용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Sangyun Lee, 'Lessons from Korea’s Roller-Coaster Ride Toward Platform (Non)Regulation' (Truth on the Market Sep 25, 2024) https://truthonthemarket.com/2024/09/25/lessons-from-koreas-roller-coaster-ride-toward-platform-nonregulation/
2024년 9월 9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존의 플랫폼 규제 도입 계획을 접고 대신 플랫폼 관련 이슈 대응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의 입법적 시도로는 2020년 9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과 2023년 플랫폼 경쟁촉진법 추진에 이은 세 번째 시도다. 후자의 경우 지난 2월 추진을 보류했다가 5월 다시 추진 계획을 밝힌 것을 나누어 본다면 이번 시도를 네 번째로 볼 수도 있겠다.
이번 시도가 전처럼 좌초될지 혹은 실제 개정으로 이어지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보이고, 이쯤에서 한번 생각을 정리해 둘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먼저 이번 계획의 방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이번 발표의 핵심은 플랫폼 이슈 대응을 기존의 "사전 지정" 방침에서 "사후 추정"으로 변경했다는 점이다. 즉, 새로운 특별법으로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 지정(designation)해서 이들에 직접적인 행위 의무들(self-executing obligations)을 부과하겠다는 기존 계획을 철회하고, 대신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지배적 플랫폼을 위한 별도의 시장지배적 지위 추정(presumption) 기준을 마련하고 이들의 일정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항변을 보장하는 방법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이 골자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세부 내용은 제쳐두고, 나는 일단 위와 같은 방향 전환이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이슈 대응 방식을 '예외'에서 '원칙'으로 선회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또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번 강조했듯이, 경쟁법(competition law)은 '시장의 경쟁기능 회복'으로 공공 문제를 해결하는 법으로서 '사후 집행(ex ante enforcement)'이 원칙이다. 당국이 이러한 원칙을 버리고 예외적인 '사전 규제(ex ante regulation)' 방식을 채택할 때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EU가 DMA를 도입하면서 그 이유로 시장 메커니즘의 실패와 경쟁법 집행으로 그러한 실패의 회복이 어렵다는 판단을 제시한 것이 좋은 예다. 잘못된 규제는 사회적 비용 증가, 진입장벽 상승, 혁신 감소, 비효율성 증대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만약 시장의 경쟁 메커니즘이 여전히 유효하거나 왜곡이 있더라도 미시적인 경쟁법 집행으로 회복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면, 원칙으로, 즉, 시장 메커니즘과 경쟁법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규제와 경쟁법의 차이는 예전 글 참고).
이런 틀에서 볼 때 한국은 어떤가? 나는 한국의 플랫폼 시장은 아직 사전 지정과 같은 예외적인 규제를 둬야할 정도로 망가졌다고 볼 만한 근거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앱스토어처럼 세부 시장에서는 경쟁 메커니즘이 과점으로 마비되었다고 볼만한 경우도 없지 않지만(그런 이유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규제가 전기통신사업법 제50조 제1항 제9호부터 제11호다), 유럽처럼 '플랫폼' 형태의 비즈니스가 나타나는 모든 시장에서 경쟁 메커니즘의 실패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사전 지정과 관련해 참고할 만한 제도라면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 제도 정도가 있을 텐데(공정거래법 제31조) 현재 한국에서 플랫폼 사업자들이 대규모 기업집단, 즉, 과거 재벌들과 같은 수준의 심각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시장 메커니즘 측면에서도 그리고 사회적 측면에서도 (다른 문제와 견주어볼 때) 특이성을 찾기 어렵다면 변칙인 규제보다는 원칙인 경쟁법 집행으로 해결해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나는 이번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가 이러한 인식과 방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입법자는 위와 같은 시장과 법의 원리·원칙적 측면보다는 효과적인 문제 해결을 더 우선 순위에 두고 이런 입법, 저런 입법을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빨리 빨리 문제를 해결하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원리·원칙은 무시하고 구체적 타당성만을 강조한 도구적 입법이 계속 반복되다보면, 결국 정부가 책임지지도 못하는 과잉 규제로 법적 불확실성과 사회적 비용만 증가되고 진입 장벽만 높아져서 중소 사업자들의 성장과 소비자들의 편의는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상기할 필요가 있다. 조금 논점을 벗어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입법자든 누구든 플랫폼 규제 도입을 주장하려면 이전에 이미 비슷한 논리에서 도입된 규모유통업법,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대리점법, 그리고 수많은 행정형벌 규정들이 과연 한국 사회를 균형있게 성장 발전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해왔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둘째로 집행 효율성(administrability)과 정확성(accuracy)의 균형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이번 발표에서는 단순히 원칙(경쟁법)으로의 복귀, 방향성의 전환만 선언된 것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집행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몇 가지 방안들도 함께 공개하였다. 핵심은, 일부 플랫폼 서비스 분야에 한하여 정량 지표에 근거한 별도의 지배적 사업자 추정 기준과 (원칙적) 금지 대상 행위를 도입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규율 대상 플랫폼 서비스 분야로는 중개, 검색, 동영상, SNS, 운영체제, 광고 분야가 제기되고 있고, 지배적 지위 추정을 위한 정량 지표는 CR1 60% 및 이용자수 1천만명 이상, 또는 CR3 80% 및 각 이용자수 2천만명이 제안되고 있다. 금지 행위는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요구로 기존 플랫폼 심사지침에서 대표적 행위 유형으로 제시된 것과 같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지만 사업자가 "경쟁제한성이 없는 경우"를 입증하는 경우 제재를 받지 않게 된다. 그리고 과징금 상한 상향과 임시중지명령 제도 도입 계획도 추가로 제안되고 있다.
위와 같은 제안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앞선 방향성에 대한 평가와 다르게 이들에 대해서는 논자에 따라 좀 더 다양한 평가가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국내 경쟁법 교수님들은 위 같은 제안에 각기 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예컨대 홍대식 교수님(서강대)의 경우 위와 같은 입증책임의 전환은 플랫폼 사업자들의 사업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실제 방어권 보장이 얼마나 제대로 이뤄질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았다. 이봉의 교수님(서울대)은 더 나아가 위 금지 행위들도 경쟁촉진 효과나 효율성·혁신 증대 효과를 가질 수 있는 행위들로서 입증책임 전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한편 이황 교수님(고려대)은 입법 목적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접근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오히려 과거 부당공동행위 합의 추정 제도가 법원의 지나친 항변권 보장으로 유명무실해진 사례를 제시하고 위법성 추정 제도가 형해화될 우려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이들 중 어떤 평가가 맞고 틀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실 이 문제는 경쟁법 집행의 효율성과 정확성의 균형에 관한 오래 된 문제로서 절대적인 정답이 정해진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가 긍정 오류(false positive)와 부정 오류(false negative) 중 어느 쪽 오류를 감수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정책적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경쟁법 집행이 좀 과하게 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오류는 감수하고 효율성을 도모할 것인지, 아니면 제재 대상들을 좀 놓치게 되는 경우들이 있더라도 최대한 억울한 사례가 없도록 좀 더 높은 법 집행 정확성을 추구할 것인지, 사회 구성원들이 둘 중 무엇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는 것이다. 만약 집행 정확성을 선호한다면 이봉의 교수님 코멘트가 타당하다고 여길 것이고 집행 효율성을 선호하는 입장에서라면 이황 교수님의 견해가 좀 더 타당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홍대식 교수님은 그 중간 쯤에 있는 걸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는 어느 쪽일까? 긍정 오류 회피와 부정 오류 회피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하고 있을까?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사회학적인 연구들을 살펴봐야겠지만 아직 기존 연구를 살펴본 적이 없어서 당장은 모르겠다. 다만 과학적 근거 없이 그냥 개인적인 느낌만 적어보면,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공정거래법의 형사적 집행의 역할까지 강조되면서 한국 사회는 대체로 긍정 오류는 쉽게 용인하면서도 부정 오류는 극히 경계한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즉, 몇몇 억울한 놈이 생기더라도 갑질하는 나쁜 놈들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특히 플랫폼 관련 이슈들에 있어서는 부정 오류를 더욱 경계하는 듯한 인상이 강한 것 같다. 즉,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확신할 순 없지만, 이번 플랫폼 규제 도입 계획이 철회될 수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물론 실제 한국 사회가 무엇을 선호하는지는 연구를 해봐야 알 것이다.
한국 사회의 선호는 차치하고 내 생각을 얘기해보면, 규제가 아닌 경쟁법 집행의 활성화 이슈에 한정해서 말할 때, 이번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안한 내용들을 보면 플랫폼 이슈 대응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필요했던 법 집행의 효율성을 보완하면서 정확성과의 균형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플랫폼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생활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제공되고, 제한된 합리성을 지닌 개인들은 특정 서비스에 쉽게 종속되는 경향이 있으며, 또한 플랫폼 서비스는 확장성이 매우 높아서 이러한 고착 상태가 쉽게 해소되기도 어려운 특성이 있다. 그리고 유력 플랫폼 사업자들은 이러한 가두리 양식 같은 비즈니스로 초과 이윤을 내면서 이로써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더욱 강화해 나간다. 이러한 자기강화적 피드백 루프(self-reinforcing feedback loop)는 유력 플랫폼 사업자들이 갖는 힘의 원천으로서 분명 기존의 힘과는 다른 점이 있다. 나는 이러한 플랫폼 사업자들의 지배력 판정과 남용 행위의 제재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기존과 차별화 된 좀 더 유연하고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기존 체제에서의 정확성만 고수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경우 적어도 플랫폼 시장에 한정해서는 과소 집행, 즉, 부정의 오류가 지나치게 높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내가 생각했던 방안은 집행 효율성 문제와는 결이 조금 다른 상대적 지배력 개념의 도입이기는 하지만, 이번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장지배적 지위와 위법성의 추정, 그리고 임시중지명령 제도 도입같은 방안들도 기존 체제의 집행 효율성을 끌어 올려서 부분적이나마 플랫폼 이슈 대응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기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평가 프레임워크에서는 발생하는 플랫폼의 지배력과 경쟁제한성에 관한 다툼의 여지를 어느 정도 경감시켜서 플랫폼 이슈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더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추정 제도는 한국 법원의 지나치게 경직된 경쟁제한성 판단 방식, 즉, 관련 시장과 지배력 그리고 경쟁제한성 문제를 마치 별개의 문제처럼 취급하면서 단계별로 접근하는 방식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번과 같은 '특별대우'가 플랫폼 시장에 한정될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것일 수 있다. 마치 파킨슨 법칙처럼, 규제는 더 많은 규제를 불러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특별한 규율 대상이 플랫폼이지만, 내일은 그 대상이 AI가 될 수도 있고, 그 다음은 또 다른 기술이 될 수 있다. 이런 무분별한 팽창을 미리 경계하기 위해서라도, 집행 효율성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앞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을 구체적인 개정안의 합리성을 비판적인 눈으로 계속 지켜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다만, 일부 언론이 하는 것처럼 '반쪽짜리 플랫폼법'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무조건 당국의 노력을 폄훼하는 식의 비난은 정말 지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은 애초에 인앱결제 강제행위에 대한 규율 권한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닌 방송통신위원회에 잘못 부여한 데 있다. 대체 어떤 합의로 2021년 방송통신위원회가 규제 권한을 갖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잘 해오던 것을 방송통신위원회로 넘긴 것은 아무리 봐도 큰 실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로 권한이 넘어갈 것이었으면 해당 규율은 아예 인앱결제에 한정해서 금지 대상이 분명한 사전 규제 방식이 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새로 도입된 규정은 마치 경쟁법 규정처럼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한 행위를 제재하는 방식을 취해버렸는데(전기통신사업법 제50조 제1항 제9호) 이런 방식으로는 규제의 효율성조차 도모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참 '웃픈' 일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언제쯤 위원장 리스크에서 벗어나 구글과 애플을 제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급적 빨리 정상화되어서 규제가 효과적으로 작동된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앱결제 강제에 대한 실효적 제재가 이뤄지고 공정거래법 집행이 잘 보완된다면, 그럼 두 기관간 규제 권한 다툼으로 불거진 이 난데 없는 플랫폼 규제의 바람도 좀 잦아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