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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톤 Oct 28. 2020

평범해서 행복한 하루

늦잠자기 좋은 계절입니다

+ 긍정일기 매거진에서 이동한 글입니다.


해가 많이 짧아졌습니다.
아직 깜깜한 창밖을 보며, 늘 같은 시간에 울리는 알람을 괜히 의심해봅니다.
일어날 시간이 맞네요.
연차, 월차, 오전 반차, 병가 등을 떠올렸습니다.
따뜻한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래서 겨울밤은 유난히 잠에서 깨기 어려운가 봅니다.

덜 마른 머리를 털며 출근길을 나섭니다.
은행나무에서 밤새 떨어진 은행을 피하며 지그재그로 걸었습니다.
까딱 밟기라도 하면 신발에서 풍기는 은행 냄새로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누군가 밟아 으스러진 은행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상쾌한 마음으로 출근했을 텐데 안타깝네요.

여유로운 마음으로 통근버스를 기다립니다.
비싸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탑니다.
무료가 아니냐고요?
저는 협력사 직원이라 돈을 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좋아하는 클래식을 들으며 한숨 자고 있으면 어느새 사무실 앞 까지 태워주니까요.
가격이 올라도 괜찮습니다. 야식 안 먹고 더 열심히 일하면 되죠. 살도 빼고 좋잖아요.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맨 앞자리가 비어있네요.
푹 자라고 불까지 꺼주시는 좋은 기사님입니다.

어느덧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연하게 탄 아메리카노를 좋아합니다.
늘 아침마다 들리는 카페인데 오늘도  조금 진한 커피를 타 주었네요.
사람마다 ‘연하게’라는 기준이 다를 테니 내일은 조금 더 자세하게 주문해야겠습니다.

‘샷은 반만 넣어주세요. 연하게. 이게 커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연하게요. like 보리차처럼요.’

커피를 마시고 일을 시작합니다.
일도 하고 담소도 나누고 싸우기도 하며 어느덧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언제나 즐거운 퇴근길.
오늘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월급 도둑은 안되었으니 성공적인 하루를 보낸 셈입니다.
부지런히 집으로 향합니다.
지금은 11시, 조금만 늦게 나왔어도 내일 퇴근할뻔했네요.
당일 출근 + 당일 퇴근이라니 정말 저는 운이 좋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물에 가볍게 샤워를 하고 나왔습니다.
책상과 침대를 번갈아 쳐다봅니다.
한 시간도 놀지 못하고 자는 것이 일하는 기계가 된 것 같아 못내 아쉽지만
오늘은 피곤하니 침대로 향했습니다.

턱 밑까지 이불을 끌어올렸습니다.
기분 좋은 라벤다 향이 납니다.
마지막까지 켜 두었던 조명을 끄고 몸을 옆으로 돌려 창문을 바라봅니다.
달이 송편처럼 생겼네요.

보름달이 되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송편을 떠올리니 배가 고파집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먹을 게 있겠나 싶어 체념합니다.
그래도 혹시나 배달어플을 살짝 켜봤습니다.
화개장터네요.
있어야 할 건 다 있군요.
위험해 보여 서둘러 휴대폰을 내려놓습니다.
오늘도 야식을 먹는다면 입을 수 있는 옷이 점차 줄어들 것 같습니다.
속옷만 입고 출근할 수는 없으니 참아봅니다.

목소리 좋은 성우가 읽어주는 고전소설 팟캐스트를 켰습니다.
늘 비슷한 부분에서 잠이 들어 주인공이 왜 사랑에 빠졌는지 아직은 모릅니다.
오늘은 기필코 주인공의 달콤한 사랑이야기를 들어보겠다고 다짐하며 눈을 감습니다.

코끝 시린 바람과 포근한 햇살이 공존했던 오늘.

당신은 어떤 하루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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