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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톤 Jan 03. 2021

동계훈련 : 1년 농사의 시작

새로운 시즌을 준비합시다

어김없이 한 해가 밝았다.

후배가 카톡으로 이모티콘을 보냈다.

귀여운 소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드는 이모티콘이었다.


‘소고기?? 사달라고??’


2021년은 소의 해란다. 그것도 하얀 소의 해.

요일도 잊고 살았는데 그런 것을 알리가 없었다.

새해에는 으레 하는 다짐들이 있다.


ㅇㅇ하기, ㅇㅇ 하지 않기, ㅇㅇ 열심히 하기, ㅇㅇ절대 하지 말자, 제발 ㅇㅇ좀 하자


매년 수첩을 쓰고 있다. 휴대폰에 메모 어플이 있지만 수첩에 적는 것을 좋아한다.

개인 일정과 업무 스케줄, 체크할 것을 메모하고 수시로 들여다보며 줄을 긋는다.

작년까지 썼던 수첩이 너덜너덜 해진 것을 보면 일 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다.

올해는 부드러운 가죽커버에 내 이름을 새긴 수첩을 장만했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수첩을 바라보고 있으니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수첩에 명함을 꽂고, 1월을 펼쳐 스케줄을 적었다.

새 노트도 그렇지만, 수첩도 첫 글자 적기가 망설여지곤 했는데, 매월 고정된 스케줄을 한참 적다 보니 수첩이 제법 손에 익는다.

12월까지 스케줄을 다 적고 ‘올해도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1~2월에는 벌써 매주 빼곡하게 스케줄이 적혀 있다. (연예인인 줄....)


프랭클린 플래너 수첩(문구류 욕심이 좀 있는편^^)



선수들은 1월에 전지훈련을 간다.

흔히 동계훈련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축구선수였을 때 1월에는 전국에 따뜻한 곳을 골라 전지훈련을 다녔다. 주로 제주도였고, 늘 서귀포였다. 제주도를 많이 가봤다고 해도, 관광을 해본 적은 없다.

한라산은 뛰어올라갔고(어쩐지 입구에서 스트레칭을 엄청 시키더라) 도깨비 도로도 연습 경기하러 지나가다 잠시 공을 굴려보곤 ‘와~’ 하고 다시 차에 탄게 전부다.

삶을 농사에 비유하곤 한다. 축구도 그렇다.

1년 농사의 꽃은 동계훈련이다.

졸업생이 나가고 신입생이 들어오며, 팀의 전력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동계훈련에서 익힌 기술과 체력을 바탕으로 한 시즌을 버텨야 한다. 동계훈련에서 부상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꽃이 피기도 전에 줄기가 꺾이는 셈이니 늘 조심해야 했다.

첫 시합은 보통 3월에 열린다. 그러니 1월은 시작하는 달이 아니다. 12월에 이어 준비하는 과정이니, 12월은 끝이 아니었고, 1월은 시작이 아니다.  

그런 습관이 들어서인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연말에 긴장이 풀어지지 않았다.

한 해가 저물었다는 아쉬움도, 새해가 밝았다는 설렘도 없다.

그저 아직 나의 시즌이 시작되지 않았으며, 지금이야말로 2021년을 준비하는 동계훈련인셈이다.

동계훈련은 주로 체력을 중심으로 기술, 전술에 특화된 훈련을 한다. 연습경기도 많이 한다. 따뜻한 곳을 골라 전지훈련을 온 팀들이 모여 리그 경기를 한다. 상대 전력을 미리 가늠해볼 수도 있고, 평소 연습경기 상대가 부족한 여자축구다 보니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어 매우 중요하다.

동계훈련의 노력은 곧 그 해 성적과 이어진다.

올해는 새로운 팀원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다.

내가 직접 면접을 보긴 했지만 30분 남짓 짧은 면접만으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다 보니 불안과 기대가 번갈아가며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내가 채용했고, 내일이면 출근을 할 것이고, 뚜껑은 열어봐야 알 수 있다.

동계훈련을 거쳐봐야 팀의 1년 농사가 판가름 나듯, 우리 팀도 새로운 팀원과 1,2월을 잘 버티면 올 한 해도 잘 지낼 수 있겠지.

역대급 X고생 프로젝트는 온몸으로 잘 막았으니, 이제 새로운 전력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준비하는 일만 남았다.


‘21 시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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