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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style Jan 21. 2024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회사문화 답사기 8

오늘처럼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비 오는 날 유독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나에게는 연인도, 친구도, 가족도 동료도 아닌 '고객님'이 생각난다.


95년 봄비가 내리던 3월이었다.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부산시교육청 장학사님이라고 하셨다. 본인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근무하시다가 교육청으로 와서 일을 하고 계셨다.


용건은 '교단선진화 사업'이란 과제를 맡았는데 컴퓨터와 대형모니터를 부산시내 전 학교에 보급하는 사업인데 컴퓨터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전화를 했다고 하셨다.

오늘은 비가 오니 편할 때 방문을 한 번 해 줄 수 있겠는지 물어 오셨다.


"장학사님. 지금 제가 방문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교육청으로 달려갔다. 고객으로부터 걸려 온 상담문의는 즉각 대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세일즈 경험으로 알고 있었고, 특히 비가 오는 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분해지는 경향이 커서  방문상담의 집중도가 높다는 것도 경험에서 배웠기에 '지금 바로! Right Now!' 움직였다.


●A4용지와 모나미 흑색볼펜을 꺼내다.

장학사님은 인자하고 미소가 많으신 50대 후반정도의 연배로 보이셨다. 눈망울이 크고 선명한 아이들의 눈을 지니셔서 누가 보아도 초등학교 선생님이심을 느낄 수 있는 분이었다.


"학교 선생님만 하다가 교육청에 와서 교단선진화 사업을 하라는 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컴퓨터나 대형모니터 등 제품의 기능이나 장점 및 활용방안을 설명드리기 전에 사업에 대한 성격과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에 대한 구조를 먼저 제안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꺼내놓은 A4용지에 사업에 대한 개요, 멀티미디어 학습도구의 개념과 활용기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단계적 진행 방법 등을  글과 그림을 그려가면서 천천히 설명하고 제안드렸다.


수요조사, 예산수립,  전시회, 기기선정 지침수립, 구매방안 수립, 구매지시 및 실적취합, 사업완료 결과 보고방법 등의 내용이었다.


큰 그림에 대한 이해가 되신 것을 확인하고 두 번째로 본격적인 제품설명을 드렸다. 5개의 컴퓨터 제조업체별 제품의 성능, 가격, 장점들을 비교하면서 제시하고 시장점유율에 대한 자료도 보여 드렸다. 당시 M/S 는 삼성전자, 삼보컴퓨터, 엘지전자, 대우전자, 현대전자, 세진컴퓨터 등 6개 메이커가 교육용 컴퓨터 시장에서 경쟁 중이었고 각각 30:40:15:5:5:5 정도의 점유율을 취하고 있었다.


교단선진화 사업에서 핵심은 컴퓨터와 대형모니터를 세트로 구성하여 초중고 각 교실마다 1세트씩  보급하는 사업이었고, 첫 해는 2, 3학년 교실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그 해 수요는 약 5850세트였다.


●백문이 불여일견, 서비스 강점으로 어필하다.

세일즈의 목표는 판매의 성공! 대량구매가 예상되는 프로젝트에서는 더욱 많은 구매 선택을 받아서 수주 점유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교단선진화 사업에서 삼성전자 컴퓨터 판매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특단의 승부수가 필요했다.


95년 당시는 삼성그룹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 시며 멀쩡한 오른팔에 깁스를 하고, 왼 손으로 오른손이 하던 일을 하시겠다며 그룹의 체질개선과 고객중심 경영을 선언하신 이병철 회장님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삼성전자의 고객서비스를 대대적으로 강화했던 시기였다. 무상보증기간을 2년으로 늘리고 가전과 컴퓨터 서비스를 통합한 서비스센터를 대폭 늘려 놓았고 친절서비스를 강조하여 고객 집안으로 들어설 때는 덧신까지 신고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장학사님께 두 가지 제안을 했다.


먼저 부산시내 초중고 정보교사 및 행정실장을 초대하여 모든 메이커별 교단선진화용 컴퓨터와 대형모니터 시연회를 개최하자고 제안드렸다. 당시 삼성전자는 프로젝션 TV 42인치를 출시하였고 컴퓨터는 절전기능이 있는 에너지절감형 기능의 장점이 있어서 시연회를 개최하면 경쟁사 대비 차별화 된 장점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교육청 입장에서는 모든 메이커에 동일한 기회를 주고 학교 관계자들에게도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기에 흔쾌히 전시회 추진을 받아들이셨다.


두 번째는 구매 시 참고사항을 공문으로 내려보내는 제안을 드렸다. 표준기능에 대한 사항, 예산집행 금액, 구매할 수 있는 제품 리스트 안내에 마지막으로 아래 사항을 덧붙였다.


'교단선진화 기기는 컴퓨터와 대형모니터 또는 TV와 연결하여 멀티미디어 학습을 하는 기기이므로,  고장으로 인한 학생들의 수업지장이 없도록 서비스가 용이하고 원스톱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확인할 것'


●M/S 94% 를 기록하다

한 달 뒤 동래중학교 실내체육관에서 부산시교육청 주관 교단선진화기기 시연회가 열렸다. 수백 명의 선생님들이 다녀 가셨고 시연회 장내에서 삼성전자 프로젝션 TV의 압도적인 큰 사이즈와 고화질을 본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호평을 하셨다.


시연회 2주 후 부산시내 500여 개의 초중고등학교에 구매지시가 하달되었다. 물론 구매 시 참고사항이라는 공문도 함께 붙임으로 배포되었다. 다시 2주 후 교육청에서 집계한 학교별 구매요청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삼성전자 5500대

삼보컴퓨터 200대

엘지전자 100대

기타 50대


영업의 결과는  총 5850대 중 5500대로 M/S 94%였다.


나의 세일즈 성과 중 가장 최고의 기록인 동시에 전국 지점 중 최고의 기록이기도 하였다. 이 성과로 인해 부산지역 모든 컴퓨터 메이커 직원들은 내가 누구인가 궁금해하고 업계에서 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세일즈 성공신화였다.

세일즈 성공신화의 탄생은 반드시 고객과 함께 써나가는 것이며,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간파하고 충분하고 완벽한 설루션을 제공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늘은 비가 참 많이 온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때 그 사람.

이학봉 장학사님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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