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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style May 01. 2024

[ 피 말리는 업무일지 ]

세일즈 에피소드 23

Lenovo 유통영업에서 Thinkpad의 몰락을 지켜보며 나만의 세일즈 능력으로 매출목표 당성을 어찌할 수 없어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월급으로 버티던 여름.


어느 헤드헌터분으로부터 경력 영업본부장 포지션 지원을 제안받았다. 국내 유수의 사무용품 제조기업의 계열사로 사무용품 유통회사의 B2B 영업본부장 자리였다.


세일즈의 자부심이 다운되고, 낮은 급여 수준과 조직 및 기업의 성장이 기대되지 않는 현직장이었기에 포지션 지원 제안을 수락하였다.


인터뷰가 잡혔다. 볼펜의 대명사 모나미의 계열사인 오피스플러스였다. 당시 CEO는 모나미 디자인부서 출신으로 모나미 대표이사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며 승승장구한 여성 CEO였다.


직무는 B2B신규영업팀을 지휘하며 사무용품 통합구매 아웃소싱을 기업대상으로 제안을 통하여 신규고객을 확보하는 구매대행서비스 수주영업이었다.


2000년대 초부터 국내의 경영트렌드에서 '아웃소싱'을 통한 경영 생산성 제고 붐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상담업무를 위한 콜센터 아웃소싱, 건물시설관리 아웃소싱, 단순직무 종사자 인적 아웃소싱에 이어 구매아웃소싱 또한 전개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업의 소모성비품 구매총비용(Total Cost)을 세분화하면 '부자재비용, 상품 또는 용역비용, 노무비, 운반비용' 등 구매직접 비용 외에 '구매 담당자의 인건비, 구매업무 행정비용(시간)' 등의 구매 간접비용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기업의 소모성 자재나 비품의 경우 상품의 단가는 상대적으로 낮으며 구매상품의 종류가 수천, 수만 개에 이르기에 단가관리나 협상을 통한 단가인하는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 실현하기에는 애로와 한계가 분명한 특성이 있는 구매 카테고리이다.


오피스플러스는 해외에서 먼저 시작된 'Total Office Supplies Outsourcing'을 국내에서 일찌감치 시작을 했고 매출 300억 정도를 달성하고 있어서 국내 사무용품 아웃소싱 서비스 업체로서는 리더기업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CEO로부터 한 시간 남짓 사업소개와 직무설명을 듣고 나의 세일즈 커리어에 대한 몇 가지 질문으로 마무리한 후 입사가 결정되었다. Lenovo 기대월급 대비 연봉은 자연스럽게 올랐다. 숨 쉬고 살만했다.


B2B신규개척 영업팀 멤버는 총 5명으로 사무용품 영업 5명과 PC를 중심으로 IT H/W 영업을 하는 2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일즈 프로세스를 정립하다

연간 사업계획 목표를 확인하고 타깃고객 리스트와 영업 중 고객 및 영업진척사항 등에 대한 점검을 하였다. 대부분의 중소기업 영업팀이 안고 있는 '하던 대로 한다'는 세일즈 프로세스가 만연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그것도 강도를 높여야 했다.


두 가지 새로운 룰을 만들었다.


1. 월요 아침 조회

한 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 08시 50분에는 영업본부 소속 직원 전체가 대회의실에 모였다. 지난 한 주간의 영업성과 및 금주 추진사항에 대한 브리핑과 본부 구성원의 마인드셋 한 방향 정렬을 위한 '좋은 글'을 낭독하고 해석해 주었다. 주로 세일즈 리더십 고취를 위한 내용들이었고 내 입장에서는 좋은 글이었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나쁜 글이었을 수도 있으나 개의치 않고 전달했다.

조회 마무리는 내가 지명하는 한 직원이 전체의 사기를 돋우는 한 마디를 발표하고 다 함께 크게 박수 세 번에 파이팅! 한 번 외치고 마무리하였다.

사내에 온라인영업본부, CS본부, 재무회계본부 등이 있었으며 영업본부만 내가 퇴직할 때까지 계속 월요조회 전통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고 보험회사 같은 분위기 까지는 아니었다.


2. 세일즈맨 10분 단위 업무일지 작성하기

세일즈맨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글쓰기'다. 그중에서 업무일지 작성에 대한 트라우마는 단연 최고이다.


기존의 업무일지 작성 양식을 바꾸어 버렸다.

-고객등급 부여 (가능성 중심 ABCD)

-상담자 역할 기록 (구매자, 사용자, 영향력자, 결정권자)

-경쟁여부 기록 (Y, N : 잠재적 경쟁사)

-연간 구매 Capa (예상금액 기준 SABC)

-10분 단위로 이동, 상담, 대기 및 내용 적기


매일 퇴근 시 내 책상 위에 '10분 관리 업무일지'가 올라왔고 모든 일지를 체크하고 피드백을 한 후에 다음 날 아침에 돌려주었다.


세일즈맨들의 각이 잡혀 나가기 시작했다.

눈치를 보던 멤버들도 새로운 영업 룰 세팅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세일즈 성과예측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보고하고 토론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중간 관리자였던 최팀장은 다행스럽게 나를 잘 따라주었고 팀원들의 분위기나 애로사항도 솔직하게 전달해 주어 본부의 팀워크는 개선되어 나갔다.


한 달쯤 지나자 세일즈맨들의 하소연이 들렸다. 수주를 더할 테니 '10분 단위 업무일지'는 그만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버스 타러 걷는 시간, 탑승 소요시간, 고객 사무실 방문시간, 순상담 시간, 전화통화 시간, 대기시간, 쉬는 시간 식으로 1시간을 10분 단위로 쪼개어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밀린 여름방학 일기 쓰기보다 괴롭다는 것.


사실 처음부터 의도된 세일즈 기본기 강화를 위한 조직화의 전략수단이었고 한 달만 운영 후 세일즈 프로세스와 정보입수 및 대응전략 중심의 업무일지로 바꾸려고 계획하였던 것이었다. 흔쾌히 업무일지 양식에서 10분 단위 작성이 아닌 방문고객별 단위 작성으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다만, 그동안 작성한 한 달간 업무일지에서 고객과 순상담 누적시간을 계산해 보도록 했다. 그리고 매출확보 금액과 차후 수주 포텐셜 매출액을 판단해 보도록 했다.


그리고, B2B 매출볼륨과 고객 순상담시간과의 상관관계를 의식하고 모든 세일즈 활동에서 가장 확대해야 할 것은 방문건수나 계약건수 이전에 '각각의 고객과 공유한 순상담시간 늘리기'임을 명심할 것을 주문했다.


우리들의 어머니는 '엄처시하' 전통 하에 모두들 제2, 제3의 신사임당 같은 역량을 갖추었듯이 본부 세일즈맨들에게 의도적인 엄한 시어머니 노릇을 다 하였고 그들에게서 세일즈 기본기의 성장을 보았기에 더 이상 '쪼는 관리기법'에서 '세일즈 동기부여'와 체계적인 시간관리 쪽으로 전환하였다.


매 월 신규고객은 증가하였고, 규모가 큰 입찰 건은 제안서 작성에 심혈을 기울이며 내가 직접 PT를 하면서 수주 후 공은 세일즈 담당자에게 돌리며 그들과 함께 B2B세일즈 현장을 신나게 돌아다녔다.


기업의 구매 Cost절감에 기여하는 오피스용품의 통합구매 아웃소싱 서비스 시장이라는 독특한 영역에서 '구매를 세일즈 하는 신기한 영업' 경쟁력을 다져 나간 이 시절의 경험은 다음에 이직한 기업에서 활짝 꽃을 피우는 기반이 되었다.


년 육 개월 뒤 자발적 퇴직을 하면서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세일즈 경험과 역량을 다지게 해 준 오피스플러스에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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