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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ffyeon Jan 13. 2023

プカ プカ プカ プカ

 햇빛은 따사롭고 공기와 바람은 살갗 틈 사이사이에 스민다. 오늘은 12월 29일. 올해 최고 한파는 지나갔지만 아직 많이 춥다. 여전히 이상한 악몽을 많이 꾸고 있다. 저번에는 어떤 남자가 내 배에 공책을 넣는 꿈을 꿨다. 쫓기는 꿈이 지겹다는 생각이 반영되었는지 이제는 한층 더 괴랄한 꿈을 꾸고 있다. 내 악몽에 대해 친구에게 들려주니 “출판업계 사람이 글을 쓰는 종이를 잉태.. 길몽 아님?”이라고 답장 왔다. 역시 꿈보다 해몽이라고.. 악몽도 해석하기 나름이다. 내 방이 많이 추워서 제대로 잠에 들지 못하는 것 같다. 느지막이 점심때 일어나 밥을 차려 먹고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를 간다. 아직 일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아서, 편의점 일도 식당 일도 미숙하지만 아등바등 따라가고 있다. 부드러웠던 손이 점점 거칠어지고 건조함에 쩍쩍 갈라지고 있다. 귀찮은 성격 그리고 굳이 바르지 않아도 괜찮았던 핸드크림도 필수가 되었다. 아직 공부는 제대로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그 덕분에 쉬는 날이 귀해졌고, 쉬는 날에는 일찍이 일어나 낮시간에 몸을 움직이고 싶어졌다. 오늘은 작년 이맘때에 A와 왔던 연희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글을 쓰고 있다. 그 당시 A는 곧 독일에 가야 하는 사람이었고, 한국을 떠나기 전에 처음으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종종 A가 운영하는 카페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지만, 오래 시간을 함께 보낸 적은 처음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아주 불안정했다. 일 년 가까이 짝사랑하는 사람의 불분명한 태도와 나를 사랑하지 않기에 주는 상처에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고, 오랜 취준 생활로 인해 불안함에 매일같이 졌다. 불면증이 생겨 새벽마다 감정에 견디지 못해 트위터에 배설물들을 조금씩 토해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구독계지만, 실제로 아는 사람 중 유일하게 서로 팔로잉을 하고 있는 사람이 A였다. A는 내가 트윗을 올리면 트위터 메시지로 음악을 보내주었다. 어떤 날에는 계피가 보컬이었던 브로콜리너마저의 1집 앨범 2009년의 우리들을 보내주었고, 또 어떤 날에는  keith jarrett가 연주한 over the rainbow를 보내주었다. 눈을 감고 들으라는 추신과 함께. 나는 이불 안으로 들어가 소리를 최대한으로 올렸고 눈을 감고 그 음악을 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A의 다정함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찾아볼 수 없던 것이었다. 그 피아노 선율이 너무나 유약하면서 반짝이는 소리라서, 연주자의 굽은 등이 다정해서, 그리고 어떤 말도 없이 나에게 음악을 보내주는 A의 다정함에 자꾸만 기대고 싶어서, 그렇지만 기댈 수가 없어서, 조금 울었다. 


 우리는 그렇게 새벽마다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가 쓴 시를 보여주었고, 서로의 취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가 무생물 같은데 그 안에 동물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듣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는 거겠죠?

-네. 오히려 숨어있다고 하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아요. 


 만나게 된 계기는 영화 <컨택트>때문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서로 물었고 둘 다 컨택트라고 말했다. 어느 부분이 좋았는지, 원작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나누게 된 대화의 끝에 그가 말했다. “독일에 가기 전에, 연 님을 친구로 만들고 가야겠어요.” 그리고 우리는 바로 약속을 잡았다.

“서로 좋아하는 것들 속에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말을 껴안고 나는 그와의 약속을 기다렸다. 



 사실 A를 만나러 가기 직전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취향도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단단해 보였고 특히나 아는 게 참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 사람에 비해 나는 멋없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와의 대화를 그가 만족할 수 있을까, 낯을 많이 가리는 나와 고요해 보이는 A와의 만남에 기나긴 침묵과 어색함이 있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을 했다. 그리고 A와 만나기로 하기 바로 전 날 나는 최종적으로 차였고, 기나긴 짝사랑이 끝났다. 엉망이 된 마음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나는 그 겨울날을 오래도록 더 세세하게 기억하기 위해서 이따금씩 떠올린다. 어떤 계절은 누군가의 걸음걸이로 기억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A는 사람의 걸음걸이를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A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보았다. 조금 들떴을 때 A는 살짝 사선을 향해 걸었고, 내 이야기를 집중할 때에는 보폭이 조금 줄어들었다. 나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멀지도 않게 나의 보폭을 맞추며 내 옆을 걷는다. 사람의 걸음걸이를 본다는 A의 말을 듣고 나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걸음걸이를 신경 쓰게 되었다. 걷는 걸 정말 싫어하는 내가 연희 끄트머리에 있는 카페에서 상수까지 끊임없이 걸었다. 그와의 대화 속 모든 것들이 좋았다.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그의 태도가 느껴졌다. 나는 그런 걸 바랐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정하더라도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욕심을 부리던 나에게 지금까지 많이 애썼다고 다독여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것들. 우리는 많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 공백이 편안했다. 어떤 침묵은 겨울의 햇빛처럼 느껴진다. 온몸으로 그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타들어가지 않고, 미세한 빛줄기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아주 고요한 따뜻함. 나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누군가를 사랑해 버렸고, 그 사람의 사랑을 바랐고, 그 욕망이 나를 다치게 했다. 그는 항상 나를 앞지르고 저 멀리 가있었다. 나는 너의 등을 바라보는 것이 주특기가 되었고 너의 뒷모습이 점이 될 때까지 그리고 그 점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그리고 너는 정말로 떠나가버렸고 나는 다른 사람과 길을 걷고 있었다. 너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던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너는 종종 내 꿈에 나오지만, 그때마다 너는 도망간다. 그게 정말 너 다워서 웃겼고 나는 어쩌면 네가 계속 도망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너를 향한 내 감정은 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라서 무서웠다. 너는 내 감정의 속도를 평생 따라올 수 없을 거야.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이 불가해한 감정은 나만의 것이라는 걸. 



 A와 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는 곧바로 독일에 가버렸다. 기약 없는 헤어짐이었다. 멀리서 바랐다. 그가 유쾌한 걸음걸이로 오래오래 산책하기를. 그곳에서 그와 닮은 고요한 풍경을 긴 시간 동안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다. 언젠가는 그가 트윗에 좋아요를 누르면 자신이 오늘 본 풍경을 선물해 준다는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눌렀다. 그는 그와 닮은 풍경을 보내주었다. 나는 그 사진이 정말 그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고 내 바람이 조금은 이루어진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2023년 1월 8일. 며칠을 걸쳐 쓰게 된 이 글은 아직도 제대로 쓰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지나간 인연들을 골몰히 생각한다. 그들을 붙잡고 싶지만 잡을 수 없다. 그렇기에 아주 작은 파편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싶다. 자꾸만 묻고 싶은 안부가 있다. 이메일을 보낼까 고민만 하다 멈춘다.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이 너무 반짝이는 것들이라 놀랄 때가 많았다. 내 문장보다 더 견고해 보이는 당신의 문장을 읽으면 마음이 환해지면서 자주 부러워했다. 



 오늘은 2023년 1월 13일.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c를 만났다. 이렇게 단둘이 만나는 거는 20대 초반 이후로 처음이었다. 술에 취한 너는 여기 오는 게 조금 무서웠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고 말했다. 

우리가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옛날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아. 

있잖아, 나는 너랑 멀어지는 게 어떤 연인과의 이별보다 힘들었어. 

너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그래서 네 모든 행동들이 이해가 되어서, 정말 많이 미운데 미워할 수 없었어. 


 결국 말해버린 마음도 있었지만 끝내 전하지 못한 말도 있었다. 


 지울까 말까 고민했던 문장들이 많다. 

결국에는 지우지 않았다. 저 문장들을 지우면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라서이다. 요즘 챠토몬치 노래 染まるよ에 빠졌다. 푸카 푸카 푸카 푸카- 이 부분이 좋아. 귀엽잖아, 푸카 푸카 푸카. 나도 노래 가사처럼 뻐끔 뻐끔 뻐끔 차가운 공기에 입김을 불어 본다. 



煙が雲になって朝焼け色に染まる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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