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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ffyeon Dec 31. 2023

2023년 12월 31일

2023년 12월 31일 오후 9시 50분

 오늘 아침까지 L과 H와 같이 술을 마셨다. 오후 세시쯤 일어나 시오콘부를 넣어 계란말이를 했고 전 날에 만들어 둔 미역국과 같이 먹었다. 코테츠에 출근했고 매니저 동생이 가위바위보에 이기면 퇴근시켜준다 했다. 걔는 보를 냈고 나는 가위를 냈고 1시간 일찍 퇴근했다. 바로 앞에 있는 이리카페로 넘어와서 자음과모음 겨울호를 읽고 있었다. 누군가의 글을 읽으니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져 아이패드를 꺼냈다.

두 시간만 지나면 2024년이다. 올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2023년은 이상한 해였다. 1월을 생각하면 지독히도 먼 과거같이 느껴진다. 자꾸 용서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고 도무지 용서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제원이를 보러 도쿄에 놀러 갔고 다음에 도쿄에 간다면 도쿄의 모든 공원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약 70권의 책들을 병렬로 읽었고 개중에는 끝내 읽지 못하거나 읽었다는 사실을 까먹었거나 읽을 수밖에 없거나 읽으면서 울었거나 슬펐거나 고마웠거나 진심으로 사랑했다. 로퍼에서 만난 나래 언니가 운영하는 뉴스레터 필진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점점 글의 호흡이 길어지는 게 느껴진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좋은 글이 무엇인지는 정말 잘 아는데 쓰기가 너무 힘들다. 언젠가는 타인이 주어인 글을 쓰고 싶다. 인아영 평론가의 <진창과 별>을 읽고 있다. 더 많은 평론집을 읽고 싶어졌다. 지금 읽고 있는 자음과모음에도 평론이 많아서 즐겁다. 그들이 꾹꾹 눌러쓴 문학을 향한 사랑을 읽으면 나의 것도 점점 커져가는 느낌을 받는다. 좋아함은 좋아함으로 확장한다. 나의 좋아하는 마음이 자꾸만 커진다. 그게 좋다.


 3년 전 이맘때쯤에 지금 살고 있는 상수집으로 이사 왔다. 그때까지는 정말 텅텅 비어 있던 동네였는데, 지금은 동네를 걷기만 해도 자꾸 누군가와 인사하기 바쁘다. 담배 피우러 나갈 때마다 봤던 H와 친해졌다. 친해지기 전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마음이 맞는 친구가 될 줄은 몰랐다. 나는 H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H는 취할 때 정말 함박 웃는다. 누군가의 웃음은 같이 따라 웃게 된다는 것을 그녀 덕분에 알게 되었다. 나는 자꾸만 H에게 강한 척하게 된다. H가 더 많이 웃었으면 좋겠어서. 나랑 있을 때에는 더 편했으면 좋겠어서. 너의 외로움을 몰라서. 그리고 나도 외로워서.


지금은 오후 10시 14분이다.

새해 첫 곡을 신경 써 본 적도 없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문득 일하다가 2024년의 새해 첫 곡으로 betcover- noboru를 듣고 싶어졌다.


いかれた世界に気をつけて

정신 나간 세상을 조심하며

真面目になるよ

정직해질 거야

わたしは歌う

나는 노래해

どうしてもいきたいのか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은 걸까

かまわれたいなら哀れなふりをしていなよ

관심을 받고 싶다면 불쌍한 척하고 있어

私は不意に窓から手を伸ばして

나는 돌연히 창문 밖으로 손을 뻗어

ひかりを掴んでいたよ

빛을 붙잡았어


いかれた世界に火をつけて

정신 나간 세상에 불을 지르고

君といたいな

너와 함께 있고 싶어

あなたが笑う

네가 웃어

どうしてもいきたいのさ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어

かまわれたいから哀れなふりをしていたよ

신경 써줬으면 해서 불쌍한 척을 하고 있었어

私は不意に君の手を離し

나는 돌연 너의 손을 놓고

あの空を抱いていたよ

저 하늘을 껴안았어

 


2024년에는 정신 나간 세상 속에서 더 정직해지고 싶다.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다. 네 손을 붙잡고 함께 웃으면서.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불쌍한 척하는 내 모습을, 그런 나의 결핍을, 그리고 이 세상을 껴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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