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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예 Jul 12. 2023

보고싶어

그 문제적인 말

‘보고싶어’라는 말은 ‘사랑해’보다 강력하다고. 연애라는 걸 해본 이후로 줄곧 생각해 왔다. 연인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으응..? 진짜? 그게 뭔데..?’ 이런 느낌이었다면, 연인에게 ‘보고싶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나도-‘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 후 수없는 ‘보고싶어’를 다양한 온도로 주고받았다. 이제는 연인이 아닌 이에게도 보고싶다는 말을 곧잘 건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보면 이 말은 언제나 묘한 구석이 있으며, 상대에 대한 내 마음의 척도가 된다. 그 최초의 일화는 네팔에서였는데...


잘생긴 셰르파가 계셨다. 내 첫 히말라야 산행을 가이드해 주었던 분이다. 당시 나는 네팔에서 일하던 NGO의 기관장님과 함께였다. 그의 잘생김 앞에서 조금 뚝딱은 댔지만, 그냥 ‘와, 잘생겼다’ 혼자 생각하고 말았던 것 같다. 별 생각 없었.. 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진짜다).


이후 혼자 다시 히말라야를 찾았을 때, 페친이었던 그에게 연락해 다시 한번 가이드를 부탁했다. 그때도 ‘그냥 아는 사람이면 좋으니까-‘라는 생각이었다(진짜다 2). 네팔에 아는 사람이 있다니. 뭔가 멋지고 좋잖아? 우리는 적당히 어눌한 서로의 한국어와 영어와 네팔어를 섞어가며 즐거운 우정의 산행을 마쳤다. 타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아주 든든하고 편안한 경험이었다.


하산 후, 그가 포카라의 다른 관광지도 가이드 해주겠다는 고마운 제안을 해주었다. 포카라는 큰 호수를 중심으로, 호숫가를 따라 산행 준비를 하는 여행자 거리가 형성돼 있는 휴양도시다. 늘 바라보던 평화로운 호수에 그 덕분에 처음으로 배를 타고 나가봤다.


우리는 노젓기 대회에 출전하는 사람처럼 뱃머리를 보고 나란히 앉았다. 둘 다 해를 등지는 방향이라, 합리적인 자세였다. 그런데 배가 호수 중간에 다다르기 전, 그가 갑자기 나를 향해 뒤돌아 앉았다. 뜨거운 햇빛에 눈이 따가운지 미간을 찌푸리며. 나는 갑자기 대면한 얼굴에 당황해 물었다.


”왜요?“


”보고싶어서“


앗•••


그가 덧붙였다.


“얼굴•••“


그래, 모름지기 두 관광객이 배에 탔으면 마주 보고 앉는 게 인지상정•••이긴 하다. 나도 안다. 그의 한국어는 완벽하지 않다. 그의 발화 의도는 ‘(얼굴을 마주) 보고 (앉고) 싶어서요’였다. 나도 안다고(진짜다3)!


하지만 그의 도치법 때문에 난 이미 뚝딱 인형이 되었고... (혼자만)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갔다.




그러니까 난 그에게 설렜던 게 맞다. 그러지 않았다면, 시니컬하게 ‘서툰 외국어란 게 참 오묘하군‘ 하며 일기에 적어두었겠지.



’I miss you', '그리워‘


’보고싶어‘는 '본다‘는 구체적인 설렘과 ’그립다‘는 추상적인 애틋함이 뒤섞인 말인가보다. 그래서 ‘사랑’은 잘 모르겠을 때에도, “내 니 얼굴이 보고 싶다!”는 알겠고, “널 마주보고 뛰어가 안기는 상상을 하면 환희가 가득찬다!”는 건 직관적으로 꽂혔던 거겠지.


-


이제는 부끄러울 것도 없고 눈물도 많아져서 ‘보고싶다’는 말을 꽤나 자주, 누구에게든 스스럼없이 하곤 한다. 사는 건 대체로 외롭고, 그래서 진짜 자주,  당신들이 너무 보고 싶으니까.


그러나 이 말의 일상화에도 불구하고, 독점적 관계(연인)의 온도를 바라는 사람에게 듣는 (그러니까 사랑하는 이에게 듣는) ‘보고싶다’는 여전히 다르다. 누군가에게 ‘보고싶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 나의 반응. 을 돌이켜보면 내가 이 사람을 어느 정도의 온도로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내가 혼자만 좋아했던 이에게 들은 ‘보고싶다’는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그는 친구로서 건넨 ‘만나고 싶다’는 뜻이었단 걸 아는데도 말이다. 반면, ‘보고싶다’는 말을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썸을 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내 쪽에선 그런 말을 주고받았는지 조차 기억이 안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냥 ‘오래 못 봐서 보고 싶었나 보다...’ 싶었을 테니까. 그래서 나도 보고 싶었겠지, 그 친구가.


이전 연인들과 주고받은 ‘보고싶어’를 하나씩 톱아봐도 조금씩 다른 결이 느껴진다. 다 같은 헤테로 독점 연애였음에도 때마다 상대를 어떻게 다르게 사랑했는지. ‘보고싶어’는 내게 어떤 척도가 되는 말인 것 같다.


-


그리고 지금, 나는 태국의 외딴섬에 와있다. 일상이 도망치고 싶은 것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고 느꼈던 순간 저질렀던 비행기표였다.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혼자 밤바다 소리를 들으며 하늘 가득한 별을 보고 있을 땐 돌아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아마도 예상치 못하게 강렬히 닥쳤던 어떤 ‘보고싶다’는 말 때문인 것 같다.




‘I miss you'

‘나는 당신을 놓쳐요’ / ‘보고싶어요’


그리움의 몽글한 애틋함은 두려움으로 완성된다.


놓칠 가능성이 희박해진 관계들. 이제는 서로의 삶에 아마 오래오래 남겠지 싶은 소중한 사람들. 그들과 주고받는 ‘보고싶다’는 더 단단하고 덜 위태롭다. 장기전 인생에서 그 소중함을 매번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래서 함께 나이 먹어가며, 그런 마음을 서로 표현하고 잘 가꿔나가는 데에 힘을 쏟는다. 그 ‘보고싶어’는 강인하다.


그러나 강렬한 건 ‘새로운’ 파동이다, 어쩔 수 없이. 새롭게 알게 된 마음 가는 사람에게 듣는 ‘보고싶어’라는 말. 아직 ‘놓칠’ 위태로움이 크게 공존하는 ‘보고싶어’라는 말.


그래서 친구들에게 그런 강렬함이 오는 시기가 생기면 같이 기뻐해준다. 장기전은 우리 같이 찬찬히 가면 되는 거고, 네가 지금 이 순간의 환희도 놓치지 않길 바라니까. 강인한 보고싶다와 강렬한 보고싶다. 둘 사이를 바지런히 오가며 산다.


애당초 예정한 이 글의 결론은 없었고, ‘뭐라도 써야지’와 ‘아무거나 써서 뭐하나’사이에서 고통받다가 가장 감정적이고 유치한 메모를 골라서 쓰기 시작했다. 다 쓰고보니 가장 어려운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몇시간 동안 써내려간 이 모든 글자들을 뒤로하고, 단순한 말이 떠오른다. ‘나도’.


그러니 일단은, 조심히 우당탕탕, 천천히 빨리,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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