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모작 Jul 22. 2023

괴이함의 기준과 정도? 그저 사랑의 깊이 <구의 증명>

너를 먹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할 거야.

소설 <구의 증명>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사람들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할까?


나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먹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괴이하게 느껴지겠지.


 <구의 증명>에서 연인 담에게 한 구의 대사다.


이 책은 2015년 출간했지만 최근 리커버 북이 역주행을 하며 출판시장에 이변을 낳았다고 한다. 1분기에만 5만 부가 팔리면서 상반기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9위를 차지한 소설. 막강한 인기인 <불편한 편의점>의 뒤를 이어 한국소설로는 2위를 기록했다고.


<구의 증명>은 ‘구’와 ‘담’의 엽기적이지만 처절한 사랑 이야기이자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삶의 모든 부분을 공유하며 연인이 된 두 사람. 구는 가난을 피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희망도 없이 일만 한 청년. 가난과 죽음으로부터의 위협은 늘 구를 쫓았다. 그런데 어느 날 집안 대물림으로 사채업자에게 거액의 빚을 진 구가 길바닥에서 처참히 살해당한다.


담은 이전에 구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 구의 장례를 치르면 구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 생각한 담. 살아서도 지독하게 외로웠던 구를 먹어 자신의 안에 두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존재하게 한다. 그녀만의 '애도 방식'으로.


저자 최진영은 '먹는 행동'은 사랑의 깊이와 절대성을 보여주는 은유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보기에 야만적인 행위일 수 있지만 사회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더 야만적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고. 가난을 약점이나 잘못으로 여기고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는 가치관이 식인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선과 사회통념이란 무얼까? 구를 먹은 담의 행동이 괴이한 건지, 아니면 구의 존재 가치가 미미하도록 방치한 사회가 괴이한 건지 모르겠다. 주변에게로 건네는 관심과 사랑이 절실한 요즘. 나라도 어딘가 존재하는 또 다른 구와 담에게 위로를 건네야겠다.


책의 한 구절

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 죽은 구는 꼭 술에 취해 곤히 잠든 사람 같았다. 나는 길바닥에 앉아 죽은 구를 안고서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쇄골까지 내려온 구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니 푸석한 머리칼이 한 움큼 빠졌다. 손에 쥔 그것을 가만히 보았다. 버릴 수 없어서 돌돌 말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죽은 구를 안고 있었지만 그와 죽음이란 개념은 전혀 연결되지 않았고 같은 극을 띤 자석처럼 강렬하게 어긋났다.
작가의 이전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당신은 쓸모 없지 않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