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한 일기장에 담긴 초등 2학년의 진심
"초콩이가 이 영화를 재미있어할까? 졸려할 것 같은데.."
겨울 방학 내내 아이들과 극장에서 재미있는 영화를 보자고 했지만, 막상 회사일과 육아 사이에서 방황하다 보니 어느새 개학날이 코 앞이었다.
아이들 개학 전에 볼만한 영화가 없을까 하고 근처 극장 홈페이지를 보다가 마음을 굳힌 뒤였다.
사실 이 영화는 초등 6학년이 된 초롱이와 꼭 보고 싶은 영화였다. 개봉 후, 입소문에 어느덧 1000만 아니 1200만 관객을 넘어선 "왕과 사는 남자" 영화를 삼일절 연휴에 보러 가자고 했더니 남편이 나에게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었다.
"괜찮아, 12세 이상 관람가니까 너무 어렵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평을 보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일단 웃음도 있고 감동도 있다고 하니까."
나 역시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초등 2학년이 된 둘째는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는 초등 저학년이 보기에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었다.
하지만, 나도 잘 몰랐던 어린 단종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고, 삼일절 연휴에 그저 동네 카페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과 사는 남자
나는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국사, 지금의 한국사를 전혀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외워야 할 사회 과목 중의 하나였다. 그 당시의 사건에 대한 이해도 없이 그저 연혁대로 일어난 사건대로 외워서 점수를 따야만 하는 과목이었기에 재미도 없었고, 흥미도 없었다.
그런 내가 한국사가 이렇게 재미있는 과목이었나? 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첫째인 초롱이가 한국사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였다. 이전까지 조카들이 보아왔던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을 물려받아서 우리 집 책장으로 옮겨놓으면서도 그냥 아이들이 재미있게 보는 학습만화라고만 생각했었다.
'나중에 초롱이, 초콩이가 다 읽어야 할 책들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책장에 꽂아만 두고 아이들이 꺼내어 읽도록 할 뿐이었다. 그런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오디오북에서 최태성 선생님의 벌거벗은 한국사를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졌다.
역사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는 '이야기'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니 너무나 재미있는 사건이고 이야기들이었다. 이제는 아이가 물어볼 때 당황하지 않으려 책을 펴는 엄마가 되었고, 그 관심은 자연스럽게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이어졌다.
영화를 보러 간 날은 삼일절 연휴이다 보니 가족단위 관객이 많은 것 같았다. 대부분 초등 고학년이상 중고생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 부부가 함께 온 관객도 많았다.
어린아이로는 둘째가 제일 어려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학습 패드에서 한국사 영상을 보기 좋아했던 아이이기에 믿고 보기로 했다.
둘째와 나는 달콤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둘째는 처음에는 영화 속 시작 부분에 집중하면서 팝콘을 먹기 시작했다. 달콤 팝콘을 다 먹을 때쯤부터 시작된 어린 단종의 궁궐 이야기가 둘째에게는 약간 무서웠는지, 영화 속 장면이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자리를 뒤척이더니 결국에는 남편과 첫째의 고소팝콘까지 다 먹고 난 후에야 안정을 찾은 듯했다.
이후부터는 단종의 유배생활이 시작되었기에 이 부분부터는 둘째가 보기에도 때로는 재미있는 부분이 많이 나와서 집중을 잘하게 된 것 같다. 중간중간 무서운 장면에서는 나와 손을 꼭 잡고 웅크리면서 영화 속 장면에 집중하기도 했는데, 사실 나는 아이가 이 영화의 장면을 이해할 수 있을까 라기 보다는 내가 더 영화 속 이야기에 빠져들어서 손을 잡는 것으로 달래었던 것 같다.
단종의 유배 생활이 그려지며 영화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영화적 각색이라 해도 그 어린 왕의 고독과 상황들에 가슴이 미어졌다. 손을 훔치며 울고 있는 나를 보며 아이들은 "엄마 또 운다"며 소곤거렸지만, 그 순간 나는 아이들이 이 장면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좋은 영화를 접하며 세상을 보는 결을 넓혀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나의 경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니까.
오래전 나의 기억이 소환된 것은 삐뚤빼뚤한 둘째, 초콩이의 일기를 보고 나서였다.
아직 맞춤법이 틀리고 삐뚤빼뚤 글씨인 일기이지만, 이 일기를 보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왕과 사는 남자 영화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할아버지가 돼도 이 영화는 안 잊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 속상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초콩이의 진심이 가득 담긴 이 문장은 나의 모든 걱정을 사라지게 해 주었다.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게 영화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영화의 내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함께 보지 않았다면, 아이가 느낀 이 감정을 만날 기회는 아주 먼 훗날로 미뤄졌을 것이다.
내가 초등 4학년쯤 겨울, 엄마는 동생과 나를 데리고 퇴근 후에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셨다. 우리는 엄마와 셋이서 영화를 본다는 설렘에 들떴던 날이었다. 한파로 너무나 추웠던 날, 우리는 신사동의 시네하우스에서 본 영화는 '아마데우스'였다.
지금도 명작이라 불리는 아마데우스는 그 당시 나에게는 이제까지 접하지 못했던 영화였기에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된다. 다만, 그 당시 초등 2학년이었던 동생은 영화를 보내는 내내 엄마에게 화장실이 가고 싶다며 몇 번이나 밖으로 다녀오곤 했다. 그 당시의 엄마는 영화를 좋아했던 분이셨다. 늘 우리와 함께 극장에 가는 것을 즐겨하셨고, 지금같이 편하게 예매를 할 수 없었고, 직접 가서 표를 사야 했지만 늘 아무런 불평도 없이 영화를 예매하고 같이 보러 가자고 하셨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어느 여름, 엄마와 주말에 을지로에 있는 명보극장에서 '늑대와 함께 춤을'을 보고 나온 후에는 재미있게 본 영화 속 장면과 대사보다는 극장 앞을 나오자마자 바로 눈앞에 펼쳐진 최루탄을 던지는 대학생들의 데모현장에 우리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근처 작은 슈퍼로 가서 치약을 눈과 코 밑에 발랐던 웃기지만 웃지 못했던 장면들이 생각난다.
아이들과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어느덧 4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버린 그 시절의 추억이 아직도 내 눈앞에 그려진다. 그러면서 그 영화 속 이야기, 영화 속 주인공과 명대사가 더불어 생각나는 것은 덤이지 않을까.
늘 해외 출장 중이었던 아빠이었기에 엄마 혼자 육아를 하면서 회사일까지 병행해야 했으니 지금보다도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바쁜 직장 생활 중에서도 엄마가 우리와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보러 다녔던 것은 단순히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아름다운 이야기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워킹맘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예전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극장의 어둠 속에서 세상을 알아갔듯이, 이제 나는 아이들과 또 같지만 다른 듯이 엄마가 걸어왔던 그 길을 걷고 있다. 훗날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영화의 상세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팝콘을 나누어 먹으며 누군가의 삶에 공감하며 함께 웃고 울었던 그 시간의 공기만큼은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